[Opinion] 골판지로 만들어진 도시, 셀로판지로 만든 물. 수공예로 구성한 꿈의 세계 - 수면의 과학 [영화]

글 입력 2019.10.2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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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눈을 뜨면 사라지는 세계다. 이 때문에 우리는 종종 꿈을 가볍게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꿈은 현실의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악몽을 꾸고 일어나서 아침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던 기억, 좋은 꿈을 꾸고 일어나서 괜히 친구에게 꿈 이야기를 해보거나 복권을 사야겠다고 너스레를 부렸던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다양한 이유로 인해 깨어 있을 때는 억눌려 있던 인간의 감정들이나 생각들이 꿈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실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인간 심리 분석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는 꿈은 다양한 예술가들에게 주목받는 소재이기도 하다.

 

오늘은 이 꿈을 다룬 영화,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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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공드리는 프랑스 국적의 영화감독이자 극작가이다. 아이슬란드 음악가인 뷔욕의 뮤직비디오들로 연출계에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후 롤링스톤스, 다프트 펑크, 케미컬 브라더스, 라디오헤드 등 유명한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면서도 CF 제작에도 힘써 칸느 영화제 CF 부분 금상을 받는 등 영상계에서의 입지를 다져간다.

 

2004년에는 이터널 선샤인으로 찰리 카우프만과 함께 각본상을 받기도 하였다. 이터널 선샤인은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나 역시 이터널 선샤인을 통해 미셸 공드리 감독을 알게 되었다. 환상적인 영화의 화면구성은 물론,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이야기 전개가 흥미로운 작품이다.

 

수면의 과학은 이터널 선샤인보다 거칠고 투박하게 느껴졌다. 이야기 전개를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효과적인 컴퓨터 그래픽이 들어갔던 이터널 선샤인과 달리 수면의 과학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을 최대한 배제했으며 그마저도 때때로 엉성하게 느껴졌다.

 

*

 

그런데 이 거칠고 투박한 면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가장 크게 매력을 느낀 점은 공드리가 꿈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다소 엉성하게 느껴지는 특수효과를 메운 것이 수공예적인 연출이다. 영화 속 꿈에는 골판지로 만들어진 도시, 모형임이 뻔히 보이는 커다란 손, 셀로판지로 만들어진 물 등이 등장했다.

 

올 해 개봉한 ‘알라딘’에서의 원숭이처럼, 이제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등장하는 등장인물을 모두 컴퓨터 그래픽으로 생생하게 구현해 낼 수 있는 세계에서 이와 같은 아날로그적 기법은 오히려 새롭고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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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연출은 미셸 공드리가 꿈을 다루는 방식과도 잘 어울렸다. 기존의 초현실주의영화들에서 꿈은 현실에 영향을 받긴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로 그려졌다. 그 세계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무의식을 탐구하거나 자아의 각성을 맞는다.

 

수면의 과학에서 꿈은 현실의 연장선처럼 보인다. ‘기면증’이 있는 주인공 스테판을 따라 관객은 꿈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꿈으로 넘나든다. 꿈을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질료로 구성한 것은 꿈이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감각을 일깨워주는 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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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을 경계 없이 넘나들어 종잡을 수 없다는 느낌을 주던 스토리 역시 영화를 다 보고 나자 그 의미가 천천히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는 총 3개의 ‘꿈’이 나온다. 하나는 잠을 자면 꿀 수 있는 꿈, 또 하나는 주인공 스테판이 이루고 싶은 장래희망으로서의 ‘꿈’, 마지막은 이상형으로서의 여인 스테파니. 즉 ‘꿈’의 여인이다. 스테판은 이 꿈들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방황한다. 스테판이 방황하면서 느끼는 혼란스러움이 영화의 플룻에도 그대로 옮겨진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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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한 캐릭터의 감정을 스크린 너머에 있는 관객에게 실감 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감정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물론, 다양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공드리는 수면의 과학에서 꿈이라는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구현해 냄으로써 스테판이라는 인물을 관객에게 이해시키고자 한 것처럼 보인다. 공드리의 날 것 그대로의 감성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랑스러운 인물이 보고 싶은 날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권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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