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SF는 스타워즈만 있는 게 아니었다 中 [도서]

지구인과 외계인을 위한 다양한 상상.
글 입력 2019.08.3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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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 체험 제37516번째. SF 소설 관람기.



난 버스를 타고 어딘가를 가거나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었지만 만나기로 한 친구가 오지 않을 때, 잠들기 전에, 수업 시간에 상상한다. 버스에 서있을 땐 초능력자가 되어 앉아서 갈 수 있는 버스나 목적지까지 순간이동을 하는 상상을 하고, 짐이 무거울 때면 도라에몽의 주머니를 떠올리기도 한다. 지루하게 창밖을 바라볼 땐 지금 여기 다른 외계인이 침략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진지하게 시뮬레이션한 적도 있다.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외계인은 세계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상을 즐기는 것은 지구인의 체험을 하는 내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지구인의 사고방식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은 인간을 즐겁게 하고 나아가게 만든다. 수많은 귀엽고 깜찍하며 가끔은 소름 돋을 때도 있는 SF 장르의 이야기는 이런 사소한 상상에서 시작했다. 당신도 상상한 적이 있는가.


외계인은 지구인을 어떻게 생각할까? 화성에서 야구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지? 수학이 사람들에게 테러가 될 수 있을까? 3차원의 우리 세상에 4차원 사람들이 나타나면 무슨 일이 생기나. 부모와 자식이 이혼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끝도 없이 펼쳐진다.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상은 대부분, 적어도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 하지만 당신이 정말 대단히 몹시 해답이 궁금하다면 다른 지구인의 상상을 나눠줄 수는 있다. 지금보다 약 10년 전에 출간되었지만 여전히 다양한 상상력을 담은,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를 통해서.


인간의 상상에는 마지노선이 없어 보인다. 17명 모두 다른 상상을 다른 색채로 말한다. 우리 모두 놀랄 정도다. 어떻게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있지? 지금 이 순간에는 그저 소설일지 모르겠지만, 먼 미래에 정말 똑같은 일이 우연히 일어난 후 묵시록이 될 수도 있다. 누가 알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말도 있다.


책의 상상을 조금 구분해보았다. 당신이 이해하기 쉽게. 엑셀이 생기기 이전부터 구분은 인간의 본능 같은 거고, 요새 인간들은 긴 글을 읽기 싫어하니까. 구분해두는 편이 이 상상들을 정리하기 훨씬 수월하고. 그중 이번 차례에는 한 분류만 다뤄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구분, 외계인 존재의 유무다.


지구인이란 왜 이렇게 외계인을 좋아할까. 실제로 있다고 말하면 믿을 사람도 없으면서 말이다. 길 가다가 아무 지구인에게 나는 사실 외계인이에요, 말해본 적이 있다. 그들 중 반 이상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아마 일부러 무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수의 몇 명만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안 믿어요.”


어찌 되었건 긴 탐색과 고찰 끝에 지구인이 외계인에 집중하는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첫 번째, 이 우주에 유일한 존재가 자신이 아니라는 걸 확인받으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두 번째, SF라는 장르에서 우주와 외계인이 나오는 것을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여기기 때문에. 이 생각은 신빙성이 많이 떨어진다.


이미 우주로 보낸 보고서에는 적혀있지만 다시 한번 적자면,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에 나오는 몇 상상처럼 우주나 외계인이 나오지 않는 상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도 커다란 하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가설은 현재 지구인이 지구에는 미지의 구간이 없다고 생각해서다. 상상은 되도록 미지의 구간에서 해야 한다. 모두가 다 아는 화성인의 키를 2m가 넘는다고 상상한다면 아무도 그 상상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지구인의 상상이 얼마나 다양하게 외계인을 그리고 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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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 중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 ‘브라이언과 외계인’, ‘우주비행사가 될래?’, ‘외계인의 생각’,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 아서 스턴백이 화성에 변화구를 소개한 이야기’ 등은 모두 외계인이 나온다. 다른 존재라는 게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외계인이 나오는 상상은 다른 상상보다 가볍고 유쾌한 걸 보면 외계인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오직 폭력 전시를 통해 가학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SF 영화만이 외계인의 이미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다.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는 지성체 외계인 둘의 대화로 이루어진 상상이다. 그들은 고깃덩어리인 지구 생명체가 심지어 뇌까지 고기로 이루어져 있고 서로 말할 때도 고깃덩이를 친다는 걸 알게 되어 징그러워한다. 전파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 고깃덩이가 살아 움직이고 꿈틀대고, 떨어서 그 소리를 낸다는 건 역겹기까지 하다. 지성체 외계인은 고깃덩이가 자신을 지성체라 부른다는 사실을 다른 지성체 외계인이 안다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 짐작하고 지구의 모든 데이터를 지워버린다.


생각 자체는 좋지만 한 가지 말을 첨부하자면 모든 외계인이 이렇게 고깃덩어리에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여기 나오는 상상의 외계인이 고기로 이루어진 생명체를 만난 적 없기 때문에 생소하게 느낀다고 보는 편이 더욱 적확하다. 우주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고 이 모든 생명체 중 어느 무엇도 차별하지 않겠다는 것이 최근 외계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외계인의 생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외계인의 생각’은 외계인이 지구인을 제지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우주비행사가 될래?’와 유사하다. 외계까지 백신을 실어나르는 지구인 베르포드가 고양이를 학대하다 죽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외계인은 지구인이 다른 행성으로 돌아가는 약 이년의 시간 동안 잠을 자지도,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우지도 못하게 하며 고양이의 사료를 먹도록 조치를 취한다. 2년간 우주 비행선 안에서 고양이가 겪은 것과 똑같은 상황을 만든다.


베르포드는 외계인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불평하지만 보는 입장에선 짜릿하기까지 하다. 작은 생명체를 작은 공간에 가두어 학대하고, 망신을 주었다는 이상한 망상으로 죽이는 생명체에게 적당한 벌이다. 2년 동안 고통스럽고 외롭고 심심할 뿐이지 죽지는 않는다는 점도 현대적이다.


지구에서 살다 보면 이런 존재를 종종 마주치곤 한다. 자신보다 작고 하찮은 생명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화풀이는 하는 종족들. 실수나 살기 위한 살생과는 조금 다르다. 아무 감정 없이 죽이거나 심지어 쾌감을 느낄 때도 있다고 한다. ‘외계인의 생각’과 같은 방식으로 처단한다면 다시는 다른 생명체를 하찮게 여기는 일이 없을 것이다. 사실 이런 행동은 외계인보다는 지구인의 방식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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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비행사가 될래?’라는 상상은 인간의 모순을 짚고 있다. 상상 속에서 안토니오는 애스프라는 외계인을 격추하기 위해 우주로 나간다. 애스프가 지구에 도착하면 수만 명이 죽기 때문에 지구에 도착하기 전에 모두 죽인다. 애스프는 지구인이 외계로 나오지 않길 바란다. 공장 문을 닫고 석유 추출을 관두고 동물 사육과 농장 일을 멈추길 종용한다. 환경 오염을 멈춰 달라는 의미일 것이다. 몇 지구인은 애스프의 말을 착실히 따랐으나 대부분은 그러지 않았다. 애스프는 지구를 공격한다.


우주비행사는 그런 침략 때문에 피난민이 된 사람이나 부모를 잃은 아이를 지원하면서 그중 똑똑한 사람을 선발하여 기른다. 우주비행사로서 명예롭게 죽은 지구인의 이름은 후에 우주비행사가 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이름으로 사용한다. 아이들은 우주비행사의 이름을 딴 학교에 다니며 우주비행사를 존경하고,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 자라고, 배우며 안토니오처럼 우주비행사로써 기꺼이 목숨을 버릴 것이다. 그게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무턱대고 다른 행성을 침략하는 애스프 종족이 잘한 점은 결코 없으나, 우주비행사가 되어 목숨을 바치는 길만 펼쳐진 아이들의 교육 환경도 조금 괴상하다. 상상 속을 살펴보면 일부러 애스프에게 증오심을 가지고 있고 달리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살 수 없는 아이들만 모아 가르치는 느낌이 든다. 우주비행사가 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말한들 진실일 수 있을까. 애초에 애스프가 침략해서 지구가 망가진 건지, 아니면 환경 오염과 내전(여기서는 지구인과 지구인의 전쟁을 말한다.)의 피해를 애스프의 탓으로 돌린 것일까. 상황상 전자일 것이다. 그러나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후자의 상황을 자꾸만 의심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제 3자의 말이다.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의 말도, 아이를 우주비행사로 만들어 끊임없이 우주로 보내 지구를 지키게 만드는 사람들의 말도, 지구를 자꾸만 침략하는 애스프의 말도 들을 수 없으니 더 말을 붙일 수 없다. 잠깐. 애스프에게는 연락할 수 있지 않나. 어차피 인간의 상상 속 이야기지만,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은 던질 수 있을지도…. 애스프가 사는 행성은 몇 광년 떨어진 곳에 있으니 몇 년 뒤에 답이 돌아올 것이다. 답을 듣고 나면 이곳에 싣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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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과 외계인’에는 비빌자니아에서 온 외계인이 등장한다. 산소 대신 메탄으로 호흡하는 그들은 지구에 산소를 모두 없애고 메탄으로 채워 넣은 후 우주정거장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소년과 개가(실제로 개는 놀거나 먹거나 진흙탕에서 뒹구는 것 외에 별생각없지만.) 지구엔 지성체가 살고 있다며 저지한다. 비빌자니아인은 지구의 생명체와 모습을 바꿔 지구에 정말 지성체가 있는지 확인한다. 그 과정에서 경찰관들도 비빌자니아인과 몸이 바뀌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꼭 동화 같은 이야기다. 시끌벅적하고 가벼우며 유쾌하다. 누구나 즐길 수 있을 이야기다. 글을 잘 안 읽는 지구인이나 외계인도.


비빌자니아 외계인이 타 행성과 교류를 잘 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멍청하고 타지를 과거 행성 식민 시대의 구시대 외계인처럼 구는 종족은 아니다. 글을 쓴 사람은 비빌자니아인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만나서 대화를 했는데, 제법 유쾌한 비빌자니아인이 자신의 이름과 고향 이름을 기꺼이 빌려주겠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상상이건 이야기를 좋아하는 비빌자니아인은 기쁘게 받아들였을 테다. 어쨌건, 지구인에게 비빌자니아인의 존재는 상상이니까 그렇게 이미지에 해가 가지도 않을 테고.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는 좀 더 지구적이란 느낌이 든다. 고속도로 옆 음식점에서 일하는 샐리에게 외계인이 찾아온다. 그들은 놀라지만 놀라지 않는다. 외계인은 이미 TV에서 자주 나오는 존재다. 미국 대통령이나 일본 총리가 한국 TV에 자주 출연하는 것과 같다. 정부는 외계인과 만나 그들이 지구에 온 이유를 묻고 회담을 한다. 그런 외계인이 음식점에 도착했으니 놀랄 만도 하다. 음식점 주인 찰리는 당장 저놈을 내쫓으라고 샐리에게 화를 내고 같이 일하는 캐시는 외계인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곧 정부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외계인은 붙잡혀가듯 빠져나가며 지구인에게 우리의 호감을 보여주고 싶지만 조금밖에 할 수 없음을 슬퍼한다. 샐리에게는 모든 게 혼란스럽고 화나는 일이다. 그저 일상을 살고 싶을 뿐인데 외계인이 나타나 아름다운 음악 소리 같은 그의 본명을 말하고 나간 일이 불편하게 만든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당장의 일만 생각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게 한다.


현실이 급한 지구인에게 외계인이나 정부 같은 게 중요하지 않다. 되려 가끔은 그렇게 다른 일이 끼어들면 화가 날 때도 있다. 많은 생각을 한다는 게 때로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당장 내가 지구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지구인의 생활에 맞춰 돈 벌기에 급급해 지구인 체험 기획서나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상부에 올리는 것이 버거웠다. 그때는 정말 내가 상상 속 샐리 자체가 되어서, 레스토랑 아르바이트 외에 다른 걸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구인이 좋은지 나쁜지, 지구의 문화를 존중해야 할지 아닐지 그런 윤리나 도덕적인 생각이 피로하게 했다. 지구의 중력은 사고도 무겁게 만든다는 가설을 세웠던 때도 그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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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스턴벡이 화성에 변화구를 소개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 조금 다르다. 외계인과 다툼을 벌이지도, 지구 침략을 당하거나 물자를 수송하지도 않는다. 화성에서 외계인과 야구를 한다. 화성은 중력이 조금 다르고, 야구를 아는 사람이 잘 없기 때문에 야구를 할 줄 아는 지구인은 항상 환영받는다. 미국인 스턴벡은 화성인 그레고르에게 변화구를 가르쳐준다. 처음에는 소심하고 무뚝뚝하며 자신감 없는 성격의 그레고르가 화성에서 처음으로 변화구를 던지자,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인을 부탁한다. 스턴벡과 그레고르의 팀도 높은 점수를 따며 승승장구한다. 처음에는 투수를 못하겠다며 한사코 사양하던 그레고르는 차츰 자신감이 붙으면서 등이 펴지고 당당해진다.


스턴벡은 지구에 돌아가 그때를 자주 생각하며 행복해한다. 야구공에 팀원들이 모두 사인을 해줬지만 대부분은 유명한 미국 야구 선수 등의 이름이었다는 결말까지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가벼운 일상을 지구 밖에서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과학적 상상이 되고 읽는 지구인과 외계인을 모두 즐겁게 한다.


이 상상을 읽고 나서야 의문점이 들었다. 왜 아직도 누구도 화성에 가서 야구를 해본 적이 없는 걸까? 화성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야구가 무엇인지 모르고, 야구를 아는 지구인은 대부분 화성에 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화성의 야구는 올림픽의 태권도와 비슷한 느낌이 될 것이다. 룰은 다소 어렵지만 즐기기는 쉽다. 야구공이 화성에서 터지지 않고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가게 된다면 꼭 한 번 가져가 보도록 하겠다.


외계인이 나오지 않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상상도 있다. ‘태양 아래 걷다’는 달에 조난당한 트리시가 구조대를 기다리며 달을 한 바퀴 도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구조대를 기다리는 동안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트리시는 긴 시간 동안 태양 빛을 따라 달을 뛰어다닌다. 트리시의 모험은 달을 한 바퀴 도는 것이지만, 이야기는 달의 모험보다 그의 언니와 트리시의 이야기에 중점을 맞춘다. 트리시의 언니는 매번 그의 옆에서 말을 걸고, 그 덕에 트리시는 미칠 것 같으면서도 외롭지 않다. 트리시는 극적으로 구조되고, 언니의 환영을 달에 두고 온다. 긴 시간을 꿋꿋이 버티고, 참아내며 살아난 상으로 그녀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최초로 달을 걷는 명예를 얻는다.


마치 달에 갔다 온 것처럼 섬세한 설명으로 현실감 넘치게 푼다. 나까지 산소호흡기가 필요할 것처럼 상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혼자 우주를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광활하고 막막한 세계에서 오는 두려움을. 그 두려움은 트라우마와 상당히 유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어도 이겨내는 건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겨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주가 계속 움직이는 것처럼 삶도 지속하기 때문에, 그림자를 피해 걸어가는 트리시처럼 지구인과 외계인도 트라우마를 피해 계속 걸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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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17 지구인의 상상 중 외계인이 나오는 파트 7개를 살펴보았다. 그들의 상상은 실제 외계인과 다소 다른 점이 있으나 외계인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한 상상이다. 또한, 우주인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방식보다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이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넘치는 것을 보아, 앞으로의 교류를 이어 나가기에 암울해 보이지는 않는다.


또 다른 점을 들자면, 모두 외계인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외계인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지구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외계인은 일상에 흘러가는 하나의 점과 같다. 다음에 살펴본 다른 단편 상상들도 모두 초점은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과학적 공상 속에서는 그들은 누구인지, 무엇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타인보다 자신을 궁금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구인의 상상이란 언제나 완전히 새로울 수 없다. 현재와 과거에 기반을 두고 미래를 떠올리기 때문에 외계인이 나타난 후의 일상을 그리더라도 현재의 지구인 일상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사용하는 기계, 이동하는 배경, 만나는 인물이 다소 달라질 뿐이다. 외계인이기 이전에 SF 장르의 초보로써, 단편 SF 상상 대부분이 미래 세계, 외계인의 삶이 얼마나 지금과 다른지 세세하게 적어 뒀을 거로 생각했던 믿음이 사라진다. 그렇기에 상상에 감탄하고 말았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처럼 궤도 방위 등을 작성하거나 어떤 상황인지 세세하게 적지 않고 그저 현재의 일부터 사건을 풀어나갈 뿐인데 보고서 하나를 읽은 것처럼 상세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상상은 글에 잘 녹는 물질로 되어있는 듯하다.


현재와 인간의 내면을 담는 현상은 아포칼립스 시대를 다룬 다른 상상에서도 이어진다. 아포칼립스 시대는 이후에 떠들도록 하자. 같은 소설집이지만, 아포칼립스 시대를 다루는 만큼 나보다 지구의 사정을 잘 아는 지구인에게 맡기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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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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