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꾼 꿈은 절대 헛되지 않음을 – 연극 알앤제이 [공연]

글 입력 2019.08.2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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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학, 역사, 성경 학습 그리고 고해성사가 주된 일과인 엄격한 가톨릭 남학교 규율과 규칙에 지친 4명의 소년이 금단의 책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난다. 늦은 밤 이 책을 역할극으로 펼치며 극 속 인물들의 삶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더 그들의 삶을 투영하게 된다. 소년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겪는 장벽과 위험을 자신들의 장벽과 위험들과 동일시하며 감정 이입하며 극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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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의 대사들은 가톨릭 교리에서 발췌되거나 <로미오와 줄리엣>뿐만 아니라 <소네트>, <한여름 밤의 꿈> 등의 대사로도 구성되어 있어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운 시적 언어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대사로 표현하면서 더 그들의 감정이 풍부하게 다가온다.

그들에게는 금서를 읽으면서 서로 대사를 치고 극을 따라 하는 행위 자체가 도전이었고 이에 그들은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평소에도 금기를 깨기 위한, 깨는 행동들을 자주 했던 학생 1의 주도 아래 점점 극에 빠져들면서 재미를 넘어 희로애락을 모두 느끼며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에 흠뻑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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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은 무대 장치가 많이 변하지도 않고 소품도 별로 없다. 빨간 천, <로미오와 줄리엣> 책, 손전등, 촛불, 의자뿐이다. 어설프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점점 과감해지고 익숙해지는 그들의 액션과 조명, 배경음악, 무대장치들이 그들의 연극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한정된 소품을 가지고 그들은 충분히 연극을 완성해낸다. 단단한 텍스트와 멋진 연출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극 속 인물들의 삶 속에 자신들의 삶을 투영하다



투영; 어떤 상황이나 자극에 대한 해석, 판단, 표현 따위에 심리 상태나 성격이 반영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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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역할 이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학생 1, 2, 3, 4라고만 되어있다.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 줄리엣, 존 수사, 캐풀렛 부인, 로렌스 신부 등 등장인물들을 4명이서 연기한다. 학생 고유의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1, 2, 3, 4라고 되어있는 것은 누구나 그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도 그들이 될 수 있고 고등학생들도, 회사원들도 그들이 될 수 있다.

현실의 한계를 느끼며 좌절하거나 금기를 깨기 위해 노력하는, 자유를 위해 달리는 누구든. 그렇기에 어린 학생들이 어설프게 따라 하던 연극이 능숙해지고 점점 그들의 삶을 투영해가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도 자신들의 삶을 이 극에 투영하게 된다. 본인들이 느끼는 한계와 유리 장벽은 각자 다르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을 둘러싼 금기와 위험들과 동일시하며 그 경계를 넘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학생 1과 2의 노력에 몰입하고 극이 끝난 뒤 극장을 나오며 학생들이 ‘한여름 밤의 꿈’을 꾼 것처럼 복잡한 감상에 젖게 된다.

학생 3, 4는 학교생활에 재미를 주는 단순한 역할극으로 이 놀이를 대했지만, 학생 1, 2는 이 극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면서 자신들의 한계, 규율을 깨닫고 이를 깨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친구들에 학생 3, 4도 진지하게 이 극에 임하게 된다. 그전까지 학생 3, 4는 학생 1, 2의 연극을 방해하고 장난을 거는데 순간순간 그들은 교칙에 어긋난 이 역할극을 중단한다.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 결혼식 장면에서 실수로 학생 3이 학생 1의 머리를 치니까 당황하면서 극에서 빠져나온다. 이 역할극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숨기고 싶었던 모습들이 조금씩 드러날 때, 극이 중단된다. 학생 3은 극 내내 누구보다 제일 규율을 중시하면서 세뇌된 사고관이 잘 나타난다.
 
그래서 극이 진행되는 동안 무언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처럼 교칙에 어긋난 성질이 나타나고 그런 행동을 할 때, 잠깐 극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고유한 복잡한 감정들을 느낀다. 아무도 감시하고 있지 않고 그들끼리 진행하는 역할극에서조차 교칙, 규율을 지키기 위해 극을 중단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학생의 모습에서 얼마나 그들이 세뇌된 가치관을 키워오고 자기검열을 강하게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를 깨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진실된 눈을 뜨는 희열을 느낀다.

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깨고 위험에 도전하는 학생 1은 갈수록 정말 자신의 평소 감정과 자신이 만나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며 더욱 폭발한다. 이 기회가 아니면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는 감정들. 그래서 이 깊은 밤의 연극을 끝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와 비슷하게 학생2도 이 역할극을 진심으로 대한다. 줄리엣을 연기하는 학생 2가 던지는 대사 하나하나가 ‘학생’이 연기하는 줄리엣이 아니라 가로막힌 현실에 힘들어하는 본연의 줄리엣의 진심 어린 대사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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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이 만나는 장면에서 학생 1과 2 모두 심장이 뛰며 새롭고 낯선, 그렇지만 나쁘지는 않은 감정을 느낀다. 처음 키스는 한 척하고 다시 일어나서 ‘그 죄를 다시 돌려줘요.’하면서 키스하는 도중 이를 보고 놀라는 학생 3, 4와 이미 흠뻑 빠져든 학생 1, 2의 모습을 보며 이들을 비교하며 연극을 보게 된다. 학생 4는 그 장면을 멈추기 위해 어머니가 찾는다고 하면서 그들을 부른다.

이런 식으로 학생 1, 2는 역할극에 빠지며 자신의 신분, 가톨릭교 학생 명분에 맞는 행동, 생각들이 옥죄었던 그들의 감성을 되찾는다. 하지만 그들을 보며 놀라는 3, 4는 계속 극을 방해하고 중단한다. 아마도 중반까지 그들은 단순히 기숙사에서의 재밌는 놀이로 이 연극을 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극에 동화되는지 보는 것도 인상 깊다.

그들의 삶을 역할극에 투영한 학생들을 보며 나도 감정 이입되었다.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흐느끼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슬픈 감정이 느껴진다. 울부짖는 그들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 그 순간, 눈물이 났다. 내가 그들을 보며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기에, 죽음으로 끝나는 사랑 이야기임을 알기 때문에 느끼는 그 감정과 학생들이 책을 처음 읽고 이 희곡 대본에 따라 연기하면서 이 사랑의 결말을 알게 되는 감정이 딱 맞아떨어질 때, 더욱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내가 혼자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느낀 감정들의 폭보다 이 연극을 만들어가는 학생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의 폭이 훨씬 넓어서 여운이 더 오래 갔다. 전혀 공통점 없어 보이는 1500년대의 유럽의 이야기에 지금의 나를 투영할 수 있었던 그 원동력은 아름다운 텍스트의 고전이 가진 힘이다. 그리고 덧붙여 연극 <알앤제이>만의 창의적인 연출과 적절한 각색이다.



빨간 천을 만난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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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책과 빨간 천으로 대부분의 극을 진행한다. 학생 5라고도 부르는 빨간 천은 기대 이상으로 그의 몫을 해낸다. 이 천 하나만으로도 칼, 단도, 독약, 침대, 옷 심지어 감정까지 모든 것을 표현한다. 부드럽고 유연한 천에서 날카롭고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다. 티볼트와 머큐쇼의 싸움에서의 천은 무엇보다 세련되고 날카롭다. 이 천은 조명과 배경음악과 합쳐져 완벽하게 베로나의 이야기를 표현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나누고 평생 사랑을 맹세하는 장면에서 천 사이 보이는 그 사랑스러운 연인이 아름다웠고 몽환적이다.

맵여왕이 등장할 때 학생들을 쫓는 색색의 조명과 펄럭거리는 천이 만들어내는 위압감과 학생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 줄리엣이 솔직한 사랑의 감정을 외치는 발코니 장면에서의 창문 모습과 아름답게 떨어지는 빗물까지. 천을 어설프게 다루는 학생들이 점차 능숙하게 천을 다루며 멋지게 역할을 소화해가면서 나도 더 이상 학생들이 엉성하게 따라 하는 연극이 아니라 베로나의 이야기를 바로 만나는 순간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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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만난 고기처럼 천을 만난 학생들의 액션은 내가 이 극을 기다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몬태규 가문과 캐풀렛 가문의 싸움은 웅장한 배경음악과 어우러져 심장이 절로 뛰며 배우들의 칼싸움은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극이 진행될수록 그들의 옷은 흐트러지며 땀으로 흠뻑 젖게 된다. 그들의 땀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현실에서 해방되어 극에 빠져들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내가 본 연극 중에 감히 제일 기억에 남은 연출과 연기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텍스트가 가진 힘



그대를 여름날에 비교한다면

그대는 그 어떤 여름날보다 사랑스럽고

그 어떤 날보다 온화합니다.

아무리 거친 비바람이 사랑스러운 꽃망울을 흔든다 해도 이 여름은 너무나도 짧습니다.

때론 태양의 눈이 뜨겁게 타오르고 또 때론 그 황금빛 얼굴이 금세 어두워집니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시들기 마련이니까,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니까.

하지만 당신이란 영혼은 결코 시들지 않고 그 아름다움은 영원할 것입니다.

죽음도 그대를 가두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서로를 볼 수 있는 한

이 서약은 우리에게 생명을 줄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할 것이니 심판의 날까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 소네트 18



학생 1과 2가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 나누는 이 대사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비극적이다. 그들의 사랑을 막는 억압에도 불구하고 서로 진심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아름답게도, 슬프게도 다가온다. 학생 1과 2의 현실이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정도의 가혹함이라 더 이 극에 매달리는 것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 그들을 가로막는 규율과 장벽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그들이 연기하는 이 연극 속 사랑을 가로막는 것들에 대해 더 저항하고 싶어 더욱 이에 집착하고 서로 사랑하고 싶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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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는 게 단지 꿈에 지나지 않아도 이를 이루면서 자신의 현실에서의 억압을 풀고 이겨내는 성취를 조금이라도 느꼈다면, 이 극은 절대로 절망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극이 끝날 때까지 그들은 셰익스피어의 아름답고 단단한 텍스트를 외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느끼는 감정과 변화를 향한 욕망을 전달받을 수 있었기에 절대 절망적이지 않았고, 나는 이 연극을 보면서 텍스트가 가진 힘도 몸소 느꼈다.



죽음으로 끝나는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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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과 로미오가 죽음으로 끝맺는 사랑 이야기는 새벽이 되고 동이 트자 정말로 끝이 난다. 학교 종이 울리자 학생 1을 빼고 2, 3, 4학생들은 현실을 부딪쳐 깨닫고 자신들의 교복을 빨리 꺼내 입고 다시 학교의 규율과 기도문을 외우면서 각선 동작을 한다. 극이 시작될 때 그들의 각진 모습과 칼같이 입은 제복이 마치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규율을 나타낸 것처럼 한밤중에 했던 금서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역할극이 깨고 있던 이러한 규율이 그들이 다시 옷을 입으면서 다시 견고해진다. 여기서 학생 1은 자신이 밤 동안 느꼈던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힘들어하고 깨지고 있던 규율과 자신의 한계에 대해 계속 의문점을 가지고 해결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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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1은 자신이 느끼는 부정적인 면의 현실을 찢을 수 있는 이 역할극을 진심으로 임했다. 그도 당연히 처음에는 학교에서 읽는 것을 금지한 금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자기들끼리 연극을 한다는 것에 재미를 느낀 것이었겠지만 그 상황에서 현실에서 부딪힌 한계를 깨면서 연극에 더 몰입하고 설렘을 느끼고 비통한 마음을 진심으로 느끼게 된다.

그렇게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느끼면서 현실도 그렇게 이겨 나가고 싶어 했지만, 아침이 되자 손을 잡고 한계를 깼던 친구들이 다시 현실에 복종하니 더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절망한다. 다른 학생들을 보며 ‘지금은 깊은 밤. 지금은 깊은 밤..!’이라며 다시 극으로 돌아오길 외치지만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 책을 떨어트리고 쓰러진다. 그런 그를 두고 학생들은 다시 극 중 대사를 외친다.


만약 니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이렇게 생각해.

어떤 환상이 보이는 동안 잠들었던 거라고.

그럼 괜찮을 거야.

그리고 끝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꿈처럼 헛된 일이라고 절망하진 마.

 

우리가 친구라면 손을 잡아.

이 아침은 우울한 평화를 가져오네.

이 슬픈 사건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자

 

왜 그러고 서 있어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냐. 이 세상은 크고 넓으니까.

사랑은 거센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것이니.



아름다운 연극 속 텍스트들을 외치는 가운데 학생 1도 다시 교복을 차려입고 용기 내어 로미오와 줄리엣 책을 들고 선다. 절망했던 학생 1 곁에는 든든한 친구들이 있음을 느끼며 나 또한 가슴 뜨거워진다.



어젯밤에 꿈을 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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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1은 이 대사를 계속해서 외친다. 그 한마디가 점점 희망을 확신하는 감정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이 대사와 함께 빨간 천을 하늘 높이 던진다. 그 천을 이용했던 모든 동작과 이야기들이 생각나고 그 빨간 천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한 그들이 보였다. 맨 위에서 세상에 천을 던지면서 자신을 억압했던 세상에 도전장을 던지며 자유를 원하며 변화를 이끌어 오고 싶어 한 그들 말이다.

그들이 한 연극이 단지 꿈과 환상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나는 이를 비극적으로 여기고 싶지 않다. 초연 때 봤었던 알앤제이는 굉장히 슬프게 다가왔었다. 배우들에 따라, 그날의 분위기, 나의 감정에 따라 이 극의 끝이 아름답게도 슬프게도 느껴지는 것이 무대 예술의 매력 중 하나이기에 무엇이 나쁘고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나에게 지금은 적어도 비극이 아니다.

그들이 한 짧고도 긴 연극이 그들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모른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 정해진 역할을 하며 그 사회에 순응하며 살지도 모른다. 아니라면 그 사회를 깨기 위해 어떤 일로든 행동으로든 노력하며 살 것이다. 그래도 이 역할극을 하며 그들은 틀을 깬 생각과 도전을 할 수 있었다. 이 자체만으로도 가톨릭 교리에 얽매인 그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성취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관객으로서 혹은 그들의 연극에 이입하면서 그들과 함께 가슴 뜨거움을 느꼈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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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학생들은 입었던 교복을 다시 벗으며 자유롭게 빗방울을 맞으며 규율, 한계, 세상에 존재하는 부당함을 벗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이러한 결심이 연극이 끝난 후에도, 그들이 학교생활을 할 때도, 잃지 않고 계속될지는 모른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미래가 궁금하며 가끔 학생들을 떠올리며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한 건 누구보다 용기 있고 진실한 학생들의 ‘죽음으로 끝나는 사랑 이야기’는 절대 죽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한 번 고전은 지금도 유효한 ‘삶의 물음’을 던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정말 유명한 작품이고 모두가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고전이지만 이번에 다시 원서를 읽고 이 연극을 보니 그 전엔 느끼지 못했던 풍부한 감정을 만났다. '현실의 한계와 규율에 도전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는 학생들은 역할극에서 현실의 부당함을 느끼고 괴로워하며 저항한다. 이 학생들은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 다른 나라에 살고 있지만, 그들도 이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현실의 편견, 금기와 억압, 부당함을 느낀다. 우리도 각색된 고전을 만나며 현실에 존재한 유리 장벽, 억압을 돌아보고 이에 저항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이 연극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운 텍스트, 언어를 내가 모두 이해할 순 없어도 이를 통해 많은 걸 배울 수 있기에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우리는 150분이라는 긴 극이 끝나고 극장에서 나오면서 그 달콤한 ‘한여름 밤의 꿈’에서 깨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정말 꿈을 꾼 것 같다는 생각에 허황한, 텅 빈 마음과 어딘가 내 마음속 숨 쉬고 있는 희망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내가 연극을 보는 이유도 이와 같다. 연극을 통해 다른 세상을 꿈꾸고 다시 우리 세상으로 돌아와 작은 희망을 맛보는 것. 그리고 학생들의 역할극 속에 투영했던 우리의 삶의 도전이 결국 실패한다고 해도 괜찮다는 위안을 얻는다. 이 연극은 우리를 이렇게 토닥이기에.


만약 니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이렇게 생각해. 
어떤 환상이 보이는 동안 잠들었던 거라고.
그럼 괜찮을 거야. 
그리고 끝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꿈처럼 헛된 일이라고 절망하진 마.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냐. 이 세상은 크고 넓으니까.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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