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대로 이루어낸 환희 - 연극 '환희, 물집, 화상'
물집과 화상을 넘어 환희로
글 입력 2019.04.3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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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지금, 여기를 가로지르는 물결이다. 막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하나의 조류다. 어렵고 복잡한 학문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나의 삶과 우리의 사회에 걸쳐 있는 생활의 영역이다. “나는 페미니스트 아닌데?”라며 팔짱을 끼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럼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하고 취업에서 배제당해도 괜찮다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터다. 페미니즘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한 적은 없더라도 성차별과 가부장제에 찬동하지는 않을 터다.페미니즘은 생활이다.하지만 이제 우리는 조금 더 알 필요가 있다. 앎의 과정이 꼭 고통스러울 필요는 없기에, 연극 ‘환희, 물집, 화상’은 유쾌하고 가볍게, 하지만 깊이 있게 앎을 전달한다. 최초의 여성해방운동부터 급진주의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 안티 페미니즘까지, 작품은 렉쳐 퍼포먼스라는 장치를 활용해 관객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킨다.하지만 서사의 무게는 가볍고, 가볍다. 유쾌한 스토리 속에 날카로운 뼈를 숨기고 있기에 서사를 좇는 것이 전혀 버겁지 않지만, 극이 끝나고 나면 진한 여운을 느낄 수 있다.원시성과 주체성
캐서린과 그웬은 대학원 룸메이트였다. 캐서린은 자신의 꿈과 커리어를 위해 런던으로 떠나는 반면 그웬은 캐서린의 전 애인이었던 던과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린다. 이후 저명한 여성학자가 된 캐서린은 어머니 앨리스의 심장발작 소식을 듣고, 자신을 사랑해줄 누군가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에 캐서린은 결혼을 택하지 않았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갈등에 빠진다.극의 배경은 주로 캐서린의 방이다. 그웬과 그웬의 베이비시터였던 에이버리, 이 둘을 학생으로 캐서린은 강연을 진행한다. 그 속에서 20세기 여성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대척점에 위치했던 베티 프리단과 필리스 슐레플리의 주장이 주된 토론을 이끈다. 이들의 주장, 즉 여성의 고정된 성역할과 주체성의 문제는 비단 강연에서만 드러나지 않고 인물의 삶 속에도 간접적으로 비추어진다. 구시대적 성 관념을 버린 에이버리, 주체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온 캐서린은 베티 프리단의 이론을, 결혼이 여성에게 중요한 의미가 된다는 생각을 가진 앨리스와 그웬은 필리스 슐레플리의 이론을 주로 대변한다.하지만 이 극에서 중요한 것은 이론적 대립이 아니다. 페미니즘의 핵심은 갈등이 아니라 연대다. 작품 속에서 캐서린과 에이버리, 그리고 앨리스는 결국 여성의 주체성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연대한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성장하는 주체적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이다. 언뜻 보기에 부족함 없이 완벽해보이던 캐서린이야말로 극 속에서 가장 많이 성장하는 캐릭터이고, 페미니즘과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에이버리는 캐서린의 성장을 돕는 단초가 된다. 아울러 조금은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앨리스의 입에서 “너희 참 소질 없는 페미니스트들이다!”라는 말로 이들의 갈등과 성장을 종결시킨다. 세대를 넘어선 연대와 성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반면 작품 속 유일한 남성 캐릭터인 던은 원시성을 표방한다. 마약과 술, 포르노에 중독된 채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가지 않고 가정에 수동적으로 귀속된 인물이 바로 던이다. 던은 외부의 자극에만 몰입한 채 끝까지 내면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 환경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던에게 사랑은 관계(relation)의 의미라기보다 성관계(sex)의 의미에 더 가깝다.하지만 한 가지 씁쓸한 사실은, 이렇게나 한심한 원시적 인물이 무려 ‘교수’라는 점이다! 심지어 승진까지 보장되어 있는 인물이다! 중년이 되어서도 학업에 의지를 가지고 있던 그웬은 가정에 들어가면서 학업과 커리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반면, 학업이나 업무에 아무 열정도 갖지 않았던 던은 경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러한 설정 모순이 불편한 이유는 비단 극 속에서만 일어나는 충돌이 아니기 때문이다.결혼과 커리어는 치환될 수 없다
결혼과 사회적 커리어가 동일 선상에 놓일 수 있는 가치라면 어째서 역사 속 남성들은 늘 후자를 선택했을까. 어째서 여성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전자를 (강제적으로) 택해야만 했을까. 어째서 사회는 남성성을, 가정은 여성성을 표현할 수밖에 없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환희, 물집, 화상’은 작품 초반에 그 방향을 제시하고 서사로 가시화한다.캐서린의 첫 강연에서 이들은 관계에 대해 논의한다. 어떤 관계이든 어느 한 쪽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문제의식을 환기한 후, 여성이 가부장제 안에 소속되면서 드러나는 여성의 희생을 서사로 보여준다. 이로써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왜 부부 관계에서 희생하는 사람은 늘 여성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은 캐서린은 결혼에 ‘실패했다.’ 커리어를 포기한 그웬은 결혼에 ‘성공했다.’ 그러나 남성인 던은 결혼과 사랑, 커리어를 모두 손에 쥘 수 있었지만 그는 주체성과 열정을 상실한 원시적 인물이다.시간이 흐르면서 극은 결혼의 실패와 성공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질문으로 심화된다. 과연 가정을 갖지 않았다하여 여성의 삶은 실패한 것일까.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필연적으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필리스 슐레플리의 주장이 어불성설이라고 느끼면서도 캐서린은 결혼 앞에서 갈등한다. 여성의 삶은 결혼으로 완성된다, 와 같은 구시대적 사고관 때문이 아니다. 외로움과 결핍, 불안과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 때문에 캐서린은 결혼과 가정을 원했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캐서린이 간과한 사실은, 외로움과 불안이 꼭 남성 동반자와 가부장제로만 채워야 하는 감정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커리어를 포기할 정도로 결혼이 가치 있지는 않다는 사실도.극의 막바지에서 캐서린은 던 대신 에이버리의 손을 잡는다. ‘소질 없는 페미니스트’들이 손을 맞잡고 건배를 외치는 장면이 감동적인 이유는, 이들이 결국 여성 간 연대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남성이 이룩한 사회에서 탈피해 여성들만의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것은 남성의 지지도, 가부장제도 아닌 여성 주체들의 의지와 화합이었다. 페미니즘의 앞길에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가 여성연대인 이유다.작품 속 인물들이 사랑과 결혼에서 받은 물집과 화상은 여성 간의 연대를 통해 환희로 변모했다. 연극 ‘환희, 물집, 화상’이야말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극이 아닐까 한다.환희, 물집, 화상- Rapture Blister Burn -일자 : 2019.04.17 ~ 05.05시간평일 8시주말 6시월 쉼*5월 1일 노동자의 날8시 공연장소 : 산울림소극장티켓가격전석 30,000원제작프로덕션IDA, 극단 기일게기획플레이포라이프관람연령만 16세이상공연시간110분[정지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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