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과학으로 장난 쳐본 적 있나요 [문화 전반]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글 입력 2019.04.30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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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가지 운명


90년대 출생자와 비슷한 연배라면 다음에 공감할 것이다.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알코올 램프로 실험을 하고, 로켓을 만들어 날리고, 물풍선도 만들었고, 방학 중에는 과학탐구 과제를 해서 냈던 일. 중학교 땐 어땠더라,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교과서로 배우고, 가끔 납땜도 하고 회로 실험도 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일반 과학을 배우고 나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너 이과 갈래 문과 갈래? 수학이나 과학 중 끔찍하게 싫어하는 과목이 있거나, 장래희망이 외교관인 친구들은 문과를 간다. 이렇게 문과를 간 친구들 중 다수는 합법적인 과학 공부 면제권을 얻어 고통에서 해방된다.

이 글은 100% 문과생의 입장에서 쓴다. 수학 과학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잘 하는 것도 아니었던 나는 문과를 택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동안 물화생지 중 어느 것을 배우든 교육과정을 착실히 따랐고 문과생 치고는 과학 탐구과목 수업들을 열심히 들었던 나도, 지금은 DNA니 고기압 저기압이니 하는 기초적인 내용마저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들다. 성적 잘 받으려고 한 공부니 당연한 것일까. 그나마 초3 때 꿈이 천문학자여서 흥미를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던 지구과학은 우주와 행성에 대한 나의 낭만을 공전 주기와 태양의 고도 등의 개념으로 대체시켜 버렸고, 실험도 도구도 없이 오직 교과서로만 과학 수업을 진행하는 고등학교 문과반에 진학하고 나서는 아예 탐구심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절대 과학 공부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었는데, 대학에 진학하고 나니 교양 과학이 필수인 것도 아니고, 1전공인 독일문화 전공 수업들에서는 과학의 과 자도 등장하지 않아서 과학은 내 인생에서 교과 과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흐지부지 잊혀졌다. 다행인지 불운인지 주변에 공대생이 많아 이것저것 주워들은 것을 때가 많았지만, 그 중 제대로 아는 건 한 개도 없었고 뭔가 낯선 이과 용어나 이론들에 대한 대화가 오갈 때 경기하지 않고 ASMR처럼 무덤덤하게 들을 수 있는 상태였다. 우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웹툰을 챙겨보며, 초등학교 3학년 때 꿈꿨던 천문학자가 되었다면 어땠을지 부질없는 공상을 해 보기도 했다.



2. 이야기로 배우는 과학


이렇게 과학이라는 분야는 나에게 한 입 베어먹고 놔둔 파이처럼 아주 일부를 맛보긴 했지만 나머지는 미지의 영역으로 놔둬도 무방한 존재였다. 그 안에 있는 수많은 분야와 종류를 무시하고 퉁쳐서 과학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마음에 걸리지만, 그걸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무관심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어쩌다가 듣게 된 ‘과장창(과학으로 장난치는 게 창피해?)’이라는 팟캐스트가 이런 나의 인식을 크게 바꿔놓았다. 말 그대로 과학으로 장난치듯 다양한 과학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팟캐스트인데, 이전까지 어떤 매체에서도 과학 관련 콘텐츠에 딱히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한 화를 듣는 순간 처음으로 해당 주제에 대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네셔널 지오그래픽은 길어서 못 보고 명료하고 쉽게 설명하는 지식채널 e도 5분이 넘어가면 인내심을 잃게 되는 나였는데, 한 화 당 에피소드가 40분을 넘어가는 과장창을 듣고 나서는 과학을 이렇게 재미있게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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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자연스럽게 진행자 궤도님의 유튜브 채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곧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추천하는 우리의 과학적인 빅데이터 시스템 덕분에 과학 관련 콘텐츠가 꽤나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관심이 없어서 못 봤던 건지 반대인지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 알고 있던 과학 관련 콘텐츠라고는 유튜브의 1분 과학이 다였다(그마저도 1분은커녕 10분이 넘는 영상이 대다수라서 보다가 말았다). 지금은 과학 쿠키, 안될 과학, 긱블, 과뿐싸 등 내가 아는 과학 콘텐츠 크리에이터만 해도 꽤 있는 것 같다. 그들 각각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 기반한 특색을 가지고 있어 콘텐츠의 폭이 넓고 다양하다는 느낌이 든다. 역사상 중요한 과학적 이론들이나 핫한 이슈들(예를 들면 앤트맨과 양자역학)은 겹칠 수밖에 없는 소재인데 어차피 한 번 봐서 이해 못할 가능성이 크므로 다양하게 볼수록 좋다. 웃긴 건 최근에 1분 과학을 다시 보니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과학 지식 설명에 10분 이상 집중할 수 있는 내성이 생긴 것이다.

과장창에서 마블이 교과 과목이 된다면, 마블 포기하는 학생이 분명 나올 거라는 말이 나온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 말이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나에게 과학이라는 과목이 결국 딱딱한 개념으로 굳어지게 된 것도 머리와 몸을 움직여서 결론을 직접 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나와있는 실험과 결과들, 이론들에 대해 달달 외우는 식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과학으로 장난을 치기는커녕 점점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되어갔다. 이론뿐만 아니라 이론을 세우게 된 배경, 과학자들의 사생활 등 과장창에서 들었던, 과학적 발견에 얽힌 다양한 세상사들을 수업시간에도 배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태양의 고도 부분이 어려워 결국 포기하기 전 유튜브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었다면. 아쉬우면서도, 지금 그런 콘텐츠들이 나와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3. 과학 커뮤니케이터


과학 커뮤니케이터란 기본적으로 과학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사람을 말한다. 처음 들었을 때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개념인 줄 알았는데, 그 기원은 훨씬 오래 되었으며 외국에서는 이미 하나의 직업으로서 인정받아 다양한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많다고 한다. 영국 왕립연구소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제안해서 열린 1825년 크리스마스 강연이 대중 과학 강연의 시초라고 하는데, 그렇게 보면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직업은 200여년 전에 발생한 셈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과학쿠키는 스스로의 직업을 이렇게 정의한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란 과학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서의 과학을 넘어 과학을 하나의 향유 문화로 만들기 위한 컨테츠를 기획, 제작하고, 과학 버스킹이나 강연 등 각종 엔터테인먼트 활동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사람입니다.” 과학 강연, 대중 과학 서적 저술, 과학 관련 콘텐츠 제작 등 대중과 과학으로 소통하려는 모든 시도가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의 활동인 것이다.

유튜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2세대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고, 우리나라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기반을 닦아 놓은 1세대가 따로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님이 있다. 그는 과학관을 교사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오고 싶은 곳,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실패도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직접 실험실에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꾸미는 등 기존의 ‘박물관’과 같았던 관람 시스템을 크게 바꿔 놓았다. “실패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이 정말 인상 깊다. 생각해 보면 과학의 기본도 실패, 실패로부터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어쩌다 성공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데, 짜여진 대로만 하고 이론만 달달 외우다 보니 과학 시간에 실패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과학을 근본부터 맛보게 해주려는 커뮤니케이터의 직업 정신이란 이런 게 아닐까.



4. 과학 문화 산업의 필요성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무섭다. 생활은 기술로 인해 점점 편리해지고 있고 그런 와중에 매일매일 새로운 연구 결과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지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삶이 편리해지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은 좋지만, 기술의 편리성만을 취해서는 기술에 대한 성찰 없는 사회가 될 것이며, 그럴수록 기득권을 가진 소수가 기술을 남용하는 경우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은 기술에 압도되어 버리거나. 극단적인 경우지만 2년 전 봤던 연극 ‘호모 로보타쿠스’의 내용처럼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찰이 필요하고, 성찰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대중을 알게 하는 것이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지만, 특히 좋다고 느꼈던 것은 그들 중 다수가 과학이 비전공자에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고 이해시키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단순한 지식 주입을 넘어 말 그대로 소통하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이는 과학을 산산이 쪼개서 하나씩 자세하게 보여주려는 식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시들과 문제 상황, 해결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베이스인 과학적 사고 자체를 이렇게 하는 거구나,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된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덕분에 고등학교 졸업 5년 만에 교과서 밖에서 본 과학이 정말로 흥미롭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과정이 더욱 다양한 플랫폼을 거치고 문화 콘텐츠 산업의 형태를 띄게 된다면 대중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고, 과학도 음악, 문학, 영화와 같이 대중문화로 받아들여지는 영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꽤 많은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양성되고 있다고 해도 다른 분야에 비하면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숫자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 일단 과학을 그것도 ‘쉽게’ 비전공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전달자가 그 분야에 대해 통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전공자들은 이미 대부분 안정적인 직종에 종사하고 있어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가며 콘텐츠 제작에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그들 중에서도 전문적 과학 지식을 일종의 불가침영역으로 생각해 대중에게 쉽게 설파하려는 노력 자체를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과학 발전은 상대적으로 뛰어나고 특별한 소수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인식이 있어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크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해 왔던 것 같다. 몰라도 사는 데 별 지장 없으니까.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 삶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대중에게도 과학을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늘어나는 공급을 충족시키고 더 유입시킬 만큼 수요가 늘어야 선순환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는 것으로써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 이 글은 원래 ‘과장창’ 공개방송 후기를 쓰려고 했던 글인데 어쩌다 이렇게 심각해졌는지 모르겠지만, 과학방송을 열심히 챙겨 듣고 심지어 생전 처음 공개방송까지 갈 줄은 꿈에도 몰랐던 내가 과학 대중화의 필요성에 대해 구구절절 쓰게 될 정도로 마성의 방송인 것은 분명하다. 유튜브이든 팟캐스트이든,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 과학에 끌리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모두가 과학으로 장난치는 그날까지!

*혹시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이 대중에게 어떻게 어필하는지 궁금하다면 5월 10일 저녁 광화문에서 개최되는 페임랩(Famelab) 코리아를 방문해도 좋을 것 같다. 과학 전공자들이 PPT 없이 3분 안에 자신의 연구 분야를 최대한 쉽고 명료하게 설명하는 대회인데, 전 우승자들 모두 현재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과학으로 소통한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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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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