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괜찮으며 괜찮겠지? "겨울의 눈빛" 2019 세월호

우리는 아직 괜찮을 수 없다.
글 입력 2019.04.1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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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면 마주하게 되는 노란 물결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시큰거렸다. 이제는 4월을 떠올리게 하는 감정이라고 부를 만큼 자연스러운 게 되어버렸다.

그 자연스러운 감정은 지난 수요일,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의 2019 세월호 <제자리> 프로젝트의 '겨울의 눈빛'이라는 공연을 보러 가는 길에도 계속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줄곧 노란색, 노란빛은 보이지 않았다. 시큰할 줄 알았던 내 마음은 의문으로 바뀌었고, 내가 공연장을 제대로 찾은 게 맞나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조그마한 공간에서 펼쳐진 극은 K시의 한 극장에서 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다큐멘터리는 3년 전, 부산에서 일어난 어떤 사고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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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속에서 언급하 사고는 실제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내가 겪은 것과 비슷했다. 사고 후의 반응도 내 주변에서 흔히 보고 들어본 것과 비슷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배, 노란 리본. 그 어떤 것도 언급되지 않았지만, 묘하게 세월호 참사가 오버랩 되었다. 부산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이 극은 어떻게 풀어나갈까. 살짝 긴장한 채로 집중했다.

공연은 배우들의 어떠한 몸짓도 없이, 오로지 배우들의 목소리만으로 채워졌다. 초반에 극을 이끌어가는 건 화자 한 사람인데, 한 사람의 대사가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번갈아 가며 들렸다.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울부짖지 않고 그저 가만히, 조용조용하게 말이다.

살짝 힘이 빠진듯한 목소리로 건조하게 흘러가는 화자의 생각에 따라가다 보니 듣는 것에 좀더 몰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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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의 눈빛 공연모습
(출처 :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페이스북)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 친구와 영영 이별하게 된 상실감, 소중한 이들과의 추억을 곱씹으며 슬픔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일상들. 사고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꾸어 나가려는 결의. 내가 예상했던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겨울의 눈빛>은 내가 기대했던 시나리오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극에서 다루는 사건은 3년 전, 고리 핵발전소에서 일어난 것이다. 화자가 살고 있는 K시와 70km 쯤 떨어진 고리에서 일어난 사건. 직접 사고 당사자나, 피해자와의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는 화자는 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K시의 한 오래된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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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K시의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 중 하나였던 다큐멘터리.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풀어낸 사건은 연극 프로젝트의 제목인 <제자리> 라는 것에 좀더 다가가게 한다. 사고와 무관한 거리와 시간, 사람은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연극은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고 해서, 물리적 거리가 가깝거나 어떠한 접점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 어떤 무엇도 결코 '괜찮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는 우리사회, 이 시대의 아픔에 함께 공감하는 것에 대한 답일 수도 있겠다.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참사들은 너무나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괜찮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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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보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화가 나고, 모멸감이 드는 감정은 무얼까. 사고의 당사자, 유가족, 혹은 가깝거나 먼 지인들까지. 사고 이후의 나날들에 대해 말하면 이런 감정들을 느꼈을까.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저녁에는 저녁을 먹고. 식사와 식사 중간에는 차를 마시고. 이러한 일상에 대해 똑같이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결코 사고 이전과 같을 수 없는 하루에 대해서 잠시나마 공감해보려 했다.

한편으로는 심혈을 기울여 공연을 기획하고, 대본을 쓰고, 어떻게 읽고 읊어서 의도한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했을 배우들과 연출진에 대해 생각했다. 나지막히 흘러가는 화자의 생각과 말을 빌려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 의도를 온전히 헤아리는 게 결코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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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은 슬퍼서 눈물이 펑펑나고, 감동적이어서 연극이 끝나고 나서도 내내 뭉클하거나, 희망과 꿈이 가득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모든 것들과 함께 오래 살아남을 것" 이라는 그 마지막 대사가 연극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비단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사회적 참사에 대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가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 기억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단순히 슬픔에 젖어 들고, 때로는 화가 나고, 모멸감을 느끼고, 좌절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모든 것들과 함께, 오래도록 살아남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직 괜찮지 않으니까.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 속에 본래 있던 자리는 어디였는지, 어떻게 하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지 끊임없이 물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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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세월호 - 제자리
- 혜화동1번지 7기 동인 기획초청공연 -


일자 : 2019.04.04 ~ 07.07
(총 14주, 7개 작품)

4.4-14  겨울의 눈빛
4.18-28  디디의 우산
5.2-12  아웃 오브 사이트
5.23-6.2  바람없이
6.6-16  어딘가에, 어떤 사람
6.20-30  더 시너(The Sinner)
7.4-7.7  장기자랑

시간
평일 8시
토/일요일 3시
월 쉼

장소 :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티켓가격
전석 15,000원
전작품 패키지 : 48,000원

주최/주관
혜화동1번지 7기 동인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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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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