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지 않겠습니다' [도서]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
글 입력 2018.11.1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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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되고 싶다



언젠가 일기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나는 무기력해지고 싶다. 기꺼이 도태되고 싶다고. 가끔은 의미도 모른 채, 내가 원하는지도 모른 채 우선은 무엇이든 하고, 또 해내는 게 내 삶이 되었기 때문이다. 난 그것에 지쳤고,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졌던 순간 그런 일기를 썼다. 도태되는 것이 지는 것이 아니라, 오답이 아니라는 걸 몸소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나름의 반항기 어린 문장을 마구 써내려갔다.


그리고 문학 강의에서 읽게 된 책,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이 쓴 ‘필경사 바틀비’에는 ‘기꺼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등장한다. 과연 이런 인물은 처음이었다. 대부분 내가 읽었던 소설의 주인공들은 태생이 슬프던지 아니든지 간에, 그래도 무언가 삶의 의미랄지 소설 주인공다운 것 하나쯤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지 않겠다’는 말 만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이 ‘바틀비’라는 인물은 주인공인 듯하면서도 사회가 평가하기엔 그냥 정말이지 ‘도태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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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두려운 삶


  

모비딕의 작가 허먼 멜빌이 쓴 <필경사 바틀비>의 줄거리는 이렇다.



배경은 뉴욕 월가.


월가의 한 법률 사무소에서 낸

필경사 구인광고를 보고,

바틀비라는 사람이 오게 된다.


작은 사무실 공간에는

고용주인 변호사, 바틀비,

그리고 나머지 셋의 직원이 함께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바틀비는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변호사의 일을 모두 거부한다.

급기야 바틀비가

사무실에서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 변호사는

그가 끝까지 나가지 않자 사무실을 옮긴다.


이후 바틀비는 부랑자라는 이유로

교도소에 수감되고 결국 아사하고 만다.



소설은 법률 사무소의 고용주인 변호사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지금의 현대인들과 다를 것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며 효율성과 이익을 중시하는 그에게, 어느 날부터 ‘하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바틀비는 비정상 그 자체이다. 나 역시 변호사와 다를 바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현대의 한 사람이었지만, 이 책을 읽을 때 왠지 모르게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그 어느 문장보다도 위대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언젠가부터, 나는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두려워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어느새 내 삶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고용주가 시키는 일에 그저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역시나 그저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많이 지치고 아파서 저러는 건가, 싶으면서도 그 마음은 너무나 단순할 것이라는 이해가 들었다.


그냥, 하기가 싫어서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항상 무언가를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그것이 공백기가 되어 ‘휴학, 휴직'처럼 '휴'자가 붙는 사회에서, 하지 않겠다는 것은 납득이 갈 만한 이유를 필요로 한다. 무엇을 하려고 쉬는 건지? 쉬는 데도 과연 이유가 필요해진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



결국 창밖을 바라보는 것과 기본적인 행동 양식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바틀비는 고용주인 변호사에게 골칫덩이가 되고, 그가 떠나지 않자 변호사를 비롯한 사무실 전체가 이사를 가고 만다. 마치 사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기피하듯, 사람들이 그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가서, 그렇게 또 바쁜 일들을 시작해 나가는 것이다. 결국 바틀비는 부랑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감옥으로 가서, 그곳에서 마저도 그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던 그 사람은, 밥도 먹지 않다가 그렇게 아사하고 만다.


나는 결코 그 무엇도 하지 않기를 원했던 그를 보며,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던 주인공에게, 억지로 고기를 입에 넣으려던 가족들이 떠올랐다. 옷의 단추를 풀어 헤치고 온몸으로 햇볕을 받던 주인공이 떠올랐다. 나무가 되겠다던 그 모습과 문장들이 떠올랐다. ‘필경사 바틀비’의 바틀비와 그녀가 매우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하지 않겠다’는 자신만의 단호한 말을 했고, 사회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다. 납득이 가지 않는 그들의 행위를 억지로 되돌려 놓으려 하고, 강제했다. 오히려 나에게 바틀비와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이었던 그 사람이, 더없이 자유롭게 느껴졌다.


기꺼이 아무것도 하지 않길 택한 사람들. 왜냐고 물으면, 다시금 '하지 않겠다'는 말만 되풀이한 그들. 그 무엇도 하지 않겠다는 것에, 사실 이유가 필요한가. 무언가 하는 것이 당연해져 버린 이 사회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결정에는 꼭 질문이 뒤따르게 되어버렸다. 누가 들어도 납득이 갈 만한 그럴듯한 이유들은, 보너스다. '하지 않겠다'는 말은 그래서, 기꺼이 도태되기를 택한 사람의 한마디이다. 과연 그것이 도태인지도 알 수 없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단호히 선택했을 뿐이다.


 

[남윤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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