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동반자가 전하는 마에스트로 백 남준 : 나의 사랑 백남준

글 입력 2016.09.19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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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남준은 1932년 서울에서 출생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홍콩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 후에 독일로 건너가 음악을 공부하고 여러 퍼포먼스를 발표하며 전위적인 예술가로 인정받아 미국, 유럽, 일본, 한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세계적 예술가로 인정받았다. 특히, 독일에서는 그가 그 곳에서 예술을 배우고 첫 번째 전시를 열었다는 점 때문에 백 남준을 좋아했고, 1993년에는 독일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추천되기도 한다. 이후 독일에서는 남준을 ‘마에스트로’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에스트로’는 독일에서 예술가를 부르는 최고 존칭이다.


백남준표지.jpg
 

“인생은 싱거운 것입니다. 짭짤하고 재미있게 만들려고 예술을 하는 거지요.”(246p)


동시변조.jpg
 

 책에는 남준의 여러 작품이 나오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동시변조>라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그가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부터 구상하던 레이저를 활용한 작품이었다. <동시변조>는 세 작품이 함께 전시된 작품이다. 이라는 풀들 사이 곳곳에 설치된 TV가 인상적인 그의 대표작, 돔형의 천장에 발사된 레이저들이 여러 기하학적 형상을 그려내는 <달콤하고 우아한>, 중간에 설치된 거울들을 통해 초록색 레이저가 천장까지 이르게 한 <야곱의 사다리>. 이렇게 세 작품이 한번에 전시된 장면은 사진만으로 보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백남준의 작품세계는 기술적으로는 서양의 것을 활용했을지 모르나, 사상적으로 동양적 색채가 짙다고 하는데, 이 작품역시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담았노라 설명했다고 한다. <달콤하고 우아한>에서 드러나는 천장의 레이저는 천(天), 이 지(地), <야곱의 사다리>가 인(人)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한평생을 고국에서 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안에 살아있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그의 예술작품 전반에 걸쳐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축하해주지는 못할망정 애처럼 질투하는 게 섭섭해서 이렇게 쏘아붙이기는 했지만, 그를 따라잡을 사람이 없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다. 시간이 지나 남준의 반응을 돌이켜보니 빙그레 웃음도 나온다. 남준이 나를 질투한다는 건 내가 예술가로서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속상하던 마음이 기쁨으로 변했다.”(185p)



 책이 흥미로운 점은 책의 저자가 백 남준 본인이 아니라 그와 평생을 함께한 아내의 시선에서 쓰였다는 점이다. 저자인 구보타 시게코는 ‘백 남준의 아내’라는 그림자에 가려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 예술가다. 위의 인용구는 ‘ART in America’라는 미국의 유명 예술잡지에 비디오아티스트를 소개하는 특집에 백 남준이 아니라 아내인 시게코가 먼저 실린 사실을 알고 질투하는 백 남준의 모습을 얘기하는 모습이다. 천재 아티스트의 곁에서 살며 그와 같은 영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은 분명 설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의 곁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있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그 사람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 관계는 결국 백 남준의 삶에도, 시게코의 삶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쳐 두 사람 모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가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백남준 시게코.jpg
 

 책을 읽는 내내 백 남준을 향한 저자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제목도 그렇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의 예술적인 부분부터 인간적인 부분까지 모두를 사랑했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좋았다.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로서 평생을 함께한 관계는 분명 특별한 관계일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기에 알 수 있었던 여러 개인적인 에피소드들은 백 남준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책의 조미료 역할을 했다. 애정으로 써내려 간 글은 읽기 쉬웠고, 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나에게는 작품의 배경이 적절히 설명되어 있어 좋았다. 끝으로 예술가 백 남준, 인간 백 남준의 옆에서 평생을 함께 한 그녀의 소감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그의 광채가 너무 눈부셔 함께 예술을 하는 아내로서 주눅들 때도 있었지만, 이런 그늘이 또한 나를 예술가로서 더욱 정진하게 하는 자극이 되었다. 가난하던 시절,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 비싼 TV를 수백 대씩 사들이던 그 때문에 나는 더 가난하게 예술을 해야 했지만, 그의 작품이 하나씩 탄생하는 것을 볼 때마다 너무 경이롭고 신기해 모든 아픔을 잊고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던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옆에서 간호하느라 작품 창작은 아예 손 놓고 있었지만, 그래서 나문이 이것 때문에 무척 미안해했지만 당사자인 나는 후회나 미련이 없다. 남준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내게는 ‘아트’였으므로.(355~3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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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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