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인 에어', 페미니즘 그리고 제국주의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나는 여성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탐구
글 입력 2015.07.0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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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 브론테의 대표작인 《제인 에어(Jane Eyre, 1849)》는 ‘제인’이라는 인물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독립된 하나의 주체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낸 소설이다. 또한 이 소설은 ‘저택 안에 감금된 미친 여자’라는 고딕 소설(Gothic Novel)적인 요소, 로체스터와의 사랑 같은 로맨스적인 요소가 곁들여져 있어 한층 독자의 흥미를 끈다. 작품에 대한 간략한 서술과 함께, 작품을 읽을 때 염두하고 보면 좋은 배경 지식들을 몇 가지 소개하려 한다. 

  줄거리

고아인 제인 에어는 외삼촌의 집에서 숙모와 사촌들에게 학대를 받으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이후 숙모는 제인을 로우드 자선 학교로 보낸다. 로우드에서 교육받고 난 후, 제인은 손필드 저택의 가정교사로 가게 된다. 저택의 주인인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하지만, 결혼 당일에 로체스터에게 정신이 이상한 부인이 있음이 밝혀지게 되고 제인은 손필드 저택을 떠난다. 정처 없이 떠돌다 쓰러진 제인을 세인트 존 리버스가 구조하고, 제인은 리버스와 그의 자매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로체스터의 목소리를 들은 제인은 다시 로체스터에게로 돌아간다. 저택에 발생한 화재로, 미치광이 부인을 구하다 불구가 된 로체스터이지만,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한다. 



  페미니즘:  ① 제인 에어와 19세기 여성의 현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 현실은?
    작가가 작품을 통해 가장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은 당대 여성의 현실이다. 제인 에어는 고등교육을 받은 지적인 여성이며, 강한 자기 주장, 독립심과 함께 주체성을 갖춘 여성이다. 하지만 19세기에 이런 사상을 가진 여성이 살아가기란 녹록치 않다. 제인 에어가 발표된 시기는 1849년인데, 이 시기의 여성들은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대표적인 영국의 두 대학인 옥스퍼드와 캠브릿지 대학을 보자. 옥스퍼드는 여성의 대학 입학을 1879년부터에야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정말 ‘입학’만 허용했고, 대학의 온전한 구성원(full member), 즉 학위를 받는 학생은 아니었다. 여성이 옥스퍼드 대학 학위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21년,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이루어졌다.1) 캠브릿지 대학 역시 여성의 대학 ‘입학’은 1879년부터 허용하였으나, 여성의 학위 수여는 1947년에 들어와서야 가능해졌다.2)  

    여성이 대학에 진학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 하에서, 제인 에어는 굉장히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이다. 당시의 여성 교육은 (소위 좀 사는 집 여성이라면)가정 교사를 집에 들이거나, 기숙학교에 입학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모든 여성교육은 19세기의 이상적인 여성상인 “가정의 천사”(The Angel in the House)를 만들어 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적당한 교양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남성에게 순종하는 여성을 길러내는 것이다.3) 이런 상황에서 제인 에어와 같이 직업을 가지고자 하는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극히 제한적이다. 《제인 에어》와 동시대의 소설들에서 나타나는 교육받은 여성들의 직업은 주로 교사 혹은 작가로 한정되어 있다. 특히, 많은 교육받은 여성들이 제인 에어처럼 가정교사로서 박봉을 받으며 일하곤 했다. 



■  페미니즘:  ② 작품 속에 나타난 작가의 분노

    위와 같이, 보수적인 19세기 영국 사회는 힘들게 고등 교육을 받아도 세상에 나와 제대로 사용해볼 기회조차 여성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시기였다. 작가는 이런 불합리한 사회에 대해 굉장히 분노하며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한 부분을 보자:

사람이란 안온한 생활에 만족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해보았자 그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 중략 -
여성은 대체로 평온한 존재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오빠나 동생들과 똑같이 자기의 능력과 노력을 발휘할 터전을 필요로 하고 있다. 너무나 가혹한 속박, 너무나 완전한 침체에 괴로워한다는 점에선 여성도 남성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여성들이란 집안에 처박혀서 푸딩이나 만들고 양말이나 짜고 피아노나 치고 가방에 수나 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들의 소견 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관습에 의해서 여성에게 필요하다고 선고된 일 이상의 것을 하고 또 배우려고 하는 여성을 탓하거나 비웃는 것은 소갈머리 없는 짓이다. 
  이렇게 혼자 있을 때 나는 자주 그레이스 풀의 웃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로체스터의 저택에 정착한 제인 에어는 갑자기 긴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안주하는 삶을 부정하는데서부터 시작된 생각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현실에 대한 갑작스런 분노로 까지 이어진다. 위에서 인용된 작품의 부분에 대해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저서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주의 관점의 ‘분노’가 여성 작가의 소설에 표출되면 안 된다”고 주장하며, “작가의 분노가 소설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브론테를 질책하기도 하였다.4) 

    사실, 울프의 말대로 소설의 흐름과 어긋나긴 한다. 특히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이렇게 혼자 있을 때 나는 자주 그레이스 풀의 웃음소리를 듣게 되었다’라고 갑자기 이야기로 돌아오는 부분은 너무 어색해서, 마치 작가가 잠시 제인 에어를 밀어내고 작품에 등장했다 다시 제인 에어의 의식으로 전환되는 것 같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을 의식한다면 샬롯 브론테처럼 작품에 치명적이라고 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아무도 안 듣는 내 얘기를 들어봐주세요!!” 하는 작가의 절실한 외침처럼 느껴져서, 인간적인 연민이 앞선다. 실제로 사회 속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에 대해 말하기 힘드니,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의식을 빌려서라도 자신과 다른 여성들의 처지를 주장하고 싶던 작가의 절실한 마음인 것이다. 



  페미니즘:  ③ Happy Ending?

    《제인 에어》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아마 제인이 로체스터와 자신이 동등한 하나의 인간임을 선언하는 장면일 것이다. 
“제가 가난하고 미천하고 못생겼다고 해서 혼도 감정도 없다고 생각하세요?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혼도 있고 꼭 같은 감정도 가지고 있어요. … (중략) … 저는 지금 관습이나 인습을 매개로 해서 말씀드리는 것도 아니고 육신을 통해 말씀드리는 것도 아녜요. 제 영혼이 당신의 영혼에게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마치 두 영혼이 다 무덤 속을 지나 하나님 발밑에 서 있는 것처럼, 동등한 자격으로 말이에요. 사실상 우리는 현재도 동등하지만 말이에요!”
    결국 제인은 여자인 자신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열정과 감정이 있는, 동등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제인의 말을 들은 로체스터는 제인이 자신과 동등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현재도 동등하다!” 로체스터 씨는 되풀이했다. “그래.”
(중략)
“내 신부는 여기 있소.” 그는 다시 나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나와 동등한 것, 나와 꼭 닮은 것이 여기 있기 때문이오. 제인, 나와 결혼해 주겠소?”

    제인과 로체스터는 서로의 동등함을 인정한 상태에서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로체스터는 다시 제인을 철저히 타자화한다. 이는 로체스터가 제인을 부르는 호칭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결혼을 약속한 후 제인의 호칭은 “귀여운 제인”, “젊은 로체스터 부인”, “페어팩스 로체스터의 아기 신부”가 된다. 심지어 로체스터는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제인 로체스터”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제인이 자신과 동등하다던 로체스터는 제인을 예쁜 인형처럼 대하고, 이 과정에서 제인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얼마 안 있어 제인 로체스터지.” 그가 덧붙여 말했다. 
나는 현기증이 났다. 그 말이 내게 준 감정은 기쁨과는 다른, 뭔가 훨씬 강력한 것이었다. 강타당하고 아연해진 것 같았다. 그것을 거의 공포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후, 로체스터의 숨겨진 부인의 존재가 드러나고, 제인은 로체스터의 정부로 남지 않고 떳떳한 인간으로 서기 위해 로체스터를 떠난다. 그 후, 로체스터의 미친 부인은 자살하고, 제인은 로체스터에게 돌아와 예전과 달리 진정한 ‘동등한‘ 결합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이 ‘동등한 결합’이라는 해피엔딩은 생각해볼 문제가 남아있다. 로체스터와 제인의 동등한 결합은 쉽게 말해 제인의 지위 상승과 로체스터의 지위 하락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제인이 재산을 상속받아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이 되지 않았어도, 로체스터가 재산을 잃거나 신체적으로 불구가 되지 않았더라도 이 둘이 동등한 결합을 이룰 수 있었을까? 한번쯤 깊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제국주의:  작품 속에 나타난 제국주의적 시각

    놀랍게도, 제인에어는 제국주의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제인 에어는 보수적인 당시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주장한 선구적인 소설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는 소설이지만 피식민지인을 야만인으로 규정하는 영국 제국주의적 시각을 벗어나진 못했다. 작품에 전반적으로 제국주의적 시각이 다수 드러나지만, 대표적으로 제국주의적 시각을 보여주는 부분을 몇 가지 소개하겠다: 
  
    먼저, 로체스터의 서인도 제도에서 온 본부인인 버사(Bertha)는 작품 속에서 미친, 동물같은 야만성을 지녔으며 과도한 성적 욕망을 가진 여성으로 그려진다. 버사의 오빠인 메이슨(Mason)역시 어딘가 모자란 듯하게 그려진다. 피식민지인들인 버사와 메이슨의 작품 속에서 하는 역할은 제인과 로체스터의 결혼을 정당화시켜 주는 역할이다. 제인과 로체스터의 결합이 이루어지기 위해 버사는 미친 여자여야만 했고, 메이슨은 버사가 미친 여자임을 증명해주는 역할을 작품 속에서 수행한다. 버사가 야만적이고 미개할수록 로체스터와 제인의 결혼은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고, 제인은 더 ‘정상적인’ 영국 여성이 된다.5) 즉, 버사와 메이슨은 제인과 로체스터라는 ‘주체’를 규정해 주는데 필요한 부수적인 존재인 ‘타자’이다.6)  

    작품 후반에 등장하는 존 리버스 목사는 인도에 가서 선교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는다. 하지만 리버스의 인도 선교 사업은 진정한 인도인들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 종교 전파가 아닌, 그들을 그저 계몽의 대상으로만 보는 철저한 제국주의적 토대에서 이루어진다. 주인공 제인 역시 억압받는 여성을 대변하지만 제국주의적 시각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제인 역시 제국 경영에 대한 야망이 있다. 이 야망은 제인의 인도 선교에 대한 강한 의욕으로 나타난다.  또한 작품 마지막 부분은 로체스터와 제인의 행복한 삶이 아닌 리버스의 선교 활동에 대한 제인의 찬양(?)으로 끝난다. 이는 로체스터와 결혼한 현재도 제인이 여전히 제국 경영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7)8) 


위와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두고 제인 에어를 읽거나, 다시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 ‘제인 에어(2011)’와 BBC에서 4부작 드라마(원작에 더 충실하다)로 만들어진 제인 에어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니 찾아보면 좋을 듯 하다. 


  참고문헌

1) http://www.ox.ac.uk/ > About > Oxford People > Women at Oxford
2) http://www.cam.ac.uk/ > About the University > History >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3) 박현경(2011). 『오로라 리』에 나타난 19세기 영국 중산층의 여성교육.  한국영미어문학회. 『영미어문학』, 100, 59-76.
4)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이소연 역(2010). 펭귄클래식코리아
5) 김은경 (2002.1). 『제인 에어』에 나타난 제국주의적 야만인 담론. 『신영어영문학회 학술발표회 자료집』,83-90.
6) Ramen Selden, Peter Widdowson, 2013, A Reader's Guide to Contemporary Literary Theory 5/E. Longman.
7) 8) 박상기 (2007.8). 『제인 에어』와 영국 민족주의. 『19세기 영어권 문학』, 11(2), 69-86.
       네이버 지식백과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92701&cid=41773&categoryId=41780
+ '제인 에어' 본문 인용은 민음사(유종호 역)버전을 사용하였다. 
[이슬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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