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찰나의 순간을 불멸의 미학으로 남기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영원한 풍경展 리뷰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2.1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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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을 예술로 승화시켜 사진예술계의 거장으로 자리 잡은 사진작가다. 현대 사진예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만큼 그의 이름 앞에는 여러 화려한 수식이 따라 붙는데, 사실 나는 브레송의 이름을 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게 전부였다. 그의 대표적인 사진 몇 장을 언젠가 본 적이 있지만 그 사진을 찍은 작가가 누구인지는 모른 채로 지나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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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알베르 카뮈, 1944ⓒHenri Cartier-Bresson/Magnum Photos

그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던 것은, 소설책 표지에서 봤던 카뮈의 초상 사진을 브레송展의 보도 자료를 통해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진 한 장을 통해 그의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음에 와 닿은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단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담아내는 브레송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브레송이 찍은 이 카뮈의 사진이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개인을 둘러싼 외부적인 요소를 통해 인물의 내면까지 담아내는 브레송의 초상미학이 사진에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이 '외부적 요소'는 한 개인의 일상생활을 이루고 있는 환경을 말한다. 한 사람이 입고 있는 옷, 그가 앉아있는 의자 뒤편에 언제나 걸려 있던 액자, 새장 같은 것들이 프레임 안에 담길 때, 그것들이 이룬 조화가 개인의 내면의 세계까지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렇듯 브레송은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어떤 연출로 만들어진 상황이 아닌, 한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 녹아있는 모습을 찍으려고 했다.
 
알베르 카뮈부터 장 폴 사르트르, 사무엘 베케트, 앙리 마티스 등 인문학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의 모습에서 풍경 안에 녹아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까지, 브레송展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이런 풍경 안에, 세계 안에, 역사 속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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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보르 근교, 프랑스, 1959ⓒHenri Cartier-Bresson/Magnum Photos

자신이 이 세계에 존재했음을 사진 이미지를 통해 명료하게 각인시켜주고 있어서일까?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그 순간과 그들이 존재했던 순간이 가깝게 느껴졌다. 브레송이 사진을 찍으면서 탐구한 '순간'에 대한 고찰을 이미지로 마주치면서 나 또한 내가 지나치고 있는 짧은 순간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한 '순간'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멀어지는 것이기에, 사진에 담긴 찰나의 순간에 실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으면서도, 또한 나도 이전의 나와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브레송이 포착한 풍경 속 사람들의 모습에서 브레송의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베를린 장벽을 옆에 두고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 폐허가 되어버린 리버풀에서 무너진 벽을 지나면서 해맑게 미소 짓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브레송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전쟁과 격변 속에서도 묵묵히 일상을 이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에 회화로 이미지를 접하고 초현실주의 영향을 받았던 흔적이 녹아있기 때문이었을까? 분명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모습을 똑같이 옮겨놓은 사진인데, 그 이미지에서 초현실주의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이, 또한 사진 이미지에 회화의 질감을 담아냈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사실 과거에 회화는 사물을 똑같이 재현하는 사진의 역할을 했고, 초기의 사진은 반대로 회화의 느낌을 내려고 했다. 이런 사진과 회화의 관계는 어떤 형태로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빛과 음영만으로 이루어진 브레송의 흑백 사진을 보면서, 새로운 이미지 안에서 계속해서 다른 방식으로 변화를 이뤄온 사진과 회화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이런 브레송의 사진 이미지를 통해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더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새로운 구도 안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브레송은 사진을 찍을 때 의도적인 연출을 하지 않고, 자연 현상이 우연히 만들어낸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내는 작업을 해왔다. 우리가 지지부진하다고 느꼈던 현실을 브레송이 찍은 사진을 통해 마주쳤을 때, 사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가 가장 아이러니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브레송이 담아낸 결정적 순간들은 어떤 기교와 설정보다 우연성에 기대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 세계 역사의 중요한 매순간을 세계 각지에서 포착할 수 있었던 사진작가로서의 축복까지 단지 우연에 의한 것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저널리즘 교수인 클로드 쿡먼은 브레송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그가 카메라를 들고 세계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직관과 행운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져 피사체를 발견했다고 생각하지만 매그넘에서 그가 활동한 방식은 정 반대였다. 사전에 연구하고 계획을 세워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 있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으며 그 토록 철저한 자세로 혼신의 힘을 다해 사진을 찍었다."

방문하는 각 나라에 관한 사회, 문화, 종교 등의 전통에 대해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서 그 나라에서 완성도 있는 작업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완벽주의자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또한, 사진을 찍을 때는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워 우연이 만들어낸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왔다. 


"난 평생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길 바랐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모든 순간이 자신에게 결정적 순간이었다는 브레송의 말은, 그의 생 전체가 결정적 순간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결정적 순간'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사진작가로서, 한 생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싶다. 

브레송展의 전시 테마 제목인 '영원한 풍경'과 '순간의 영원성'은 또한, 브레송의 생에 대한 제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순간의 영원성'이라는 제목 아래 걸린 각기 다른 지역의 사람들의 눈을 보면서 나는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며 순간을 감각하고 있었다.    

아트인사이트 서포터즈 3기 임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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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슬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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