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리뷰: 우리는 왜 친구밖에 될 수 없는가 [시각 예술]

글 입력 2015.02.0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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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웹 감독의 장편영화

500일의 썸머



 이 영화를 본 모든 친구들을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썸머가 어마어마한 썅년이야”. 친구라는 이름 하에 자기하고 싶은 것은 다하고, 정작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하나도 하지 않는 여자. 이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게 돌팔매를 한다. 하지만, 무서운 것은 모두가 욕하는 썸머는 사실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듯이, 모두가 누군가의 썸머가 될 수 있다. 사실, 나를 버린 전남친, 전여친, 썸남썸녀 모두, 다 자신에게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던가? 결국 내가 주었던 모든 것들이 부담스럽다며, 또는 지루하다며 떠나 버린 사람들 모두 누군가의 ‘썸머’인 것이다.

 왜 썸머는 나쁜 사람인가. 사람들은 썸머가 연인도 아니면서 톰의 단물을 다 빼먹은 후, 결국 다른 남자랑 결혼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그것보다 다른 것이 눈에 보였다. 바로 그녀의 변화이다. 감독이 영화를 풀어나가는 순서는 특이하다. 썸머와의 500일을 1일, 2일, 순서대로 보여주지 않고, 5일, 254일 이런 식으로 시간을 넘나들며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썸머가 변해가는 모습을 극명하게 알 수 있다. 가구점에서 같은 장난에 좋아하는 썸머와 똑같은 장난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썸머. 나의 마음은 그대로인데, 식어가는 상대방의 마음을 보는 것은 참 고통스러운 일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음으로써 느낀 것을 공유하지 못한 뿐더러 오히려 이를 지루해한다는 것이니까. 관계 속에서 서로의 존재가 더 이상 기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혼자 깨닫는 것은 배신에 가까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썸머를 사랑했던 톰에게 주었던 것은 아픔뿐인데, 어떻게 나쁜 여자가 아닌가.

 근데, 도대체, 왜, 톰은 안 되는 것이었을까? 이렇게 잘 맞고, 이야기도 잘 통하고, 많은 시간을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네 곁에 연인으로 남을 수 없었던 걸까? 식당에서 만난 사람은 왜 되고, 톰은 왜 안 되는 것일까? 영화는 그저 우연이라고 이야기한다. 톰의 우월한 여동생은 취향도, 이야기하는 스타일도 잘 맞는다고 해서 모두가 천생연분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 썸머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잘 맞기에 좋은 친구는 될 수 있으나,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에 톰을 밀어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랑을 믿지 않는 시기의 썸머를 만난 것, 그런 썸머에게 끌렸던 것, 시간이 지나면서 썸머가 톰에게 지루함과 부담을 느꼈던 것 그저 모두 다 우연이었을 뿐이다. 영화는 누구의 잘못이 아닌 그저 너의 반쪽이 아니라고 말할 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 사람을 만나서 행복했던 시간과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는 아픔을 모두 우연이라고, 무덤덤하게 받아드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사람은 끝났어도, 내가 아직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고, 생각이 나는데 말이다. 영화는 말한다. 그냥 모두 우연이었으니 받아드리라고, 그 과정이 아무리 찌질하고 아프더라도 그 모든 것을 경험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또 말한다. 마음껏 사랑하라고, 당신의 상처가 여름을 지나 결실을 맺는 가을을 맞을 수 있도록. 스쳐가는 우연 속에서 당신의 필연을 잡으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영화는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속되는 느낌을 찾지 못해 떠난 사람을 붙잡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자신에게 아무 마음도 없는 사람을 붙잡아 두는 것도 내가 행복하지 못할 테니까. 결국 가을이 올 때까지 마음껏 아파하고, 인정하고, 나를 가꾸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네 삶은 한 계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황순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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