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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꿈도 너랑 같이 꾸면 더 재밌으니까 [영화]

자크 리베트,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1974) 리뷰

by 김시은 에디터
2026.10.1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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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부터 영화를 보는 행위에 무뎌져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유명한 감독의 신작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극장에 가고, 별점을 매기고, 장면들을 뜯어보며 여긴 이래서 좋았고, 여긴 이래서 별로였다하며 떠들어댔다. 사실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보러 가게 된 것이다. 지난 9월 30일,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자크 리베트 감독의 대표작이 국내에서 처음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틀 뒤 망설임 없이 극장으로 향했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졸기도 했고, 졸음을 깨기 위해 노트를 꺼내 메모를 끄적이기도 했다. 긴 꿈을 꾸듯 몽롱하고 혼란스럽지만, 발칙하고 사랑스러운 인상이 강렬하게 남았다. 오늘은 영화 속 셀린느와 줄리가 그러했듯, 평가하는 마음이 아니라 이야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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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토끼와 앨리스의 만남


       

      공원 벤치에 앉아 마법 주문서를 읽던 사서 줄리가 마술사 셀린느를 발견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처음에는 셀린느가 떨어뜨린 스카프를 돌려주기 위해 줄리가 그 뒤를 쫓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줄리는 바로 스카프를 돌려주지 않고 계속해서 그녀를 따라간다. 셀린느는 머무는 곳마다 물건을 떨어뜨리고, 줄리가 그 물건들을 주워다니며 추격전이 지속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인식하고 있지만 멈춰 서서 대화를 나누지 않고, 만남의 순간은 지연된 채 하루가 끝난다. 우연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의 추격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시계토끼와 앨리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토끼가 자신을 따라오는 앨리스를 멈춰 세우지 않았듯이,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가는 일에 의구심을 품지 않았듯이, 줄리와 셀린느는 그저 쫓고 쫓길 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한쪽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추격전’에 그치지 않고, 양쪽으로 흘러가는 ‘만남’으로 이어진다. 다음 날 줄리는 다시 한번 셀린느를 찾아 다니고, 우연히 그녀가 앉아 있는 카페를 발견하게 된다. 이후 셀린느는 줄리가 일하는 도서관에 찾아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줄리는 책을 찢어 이를 간직한다. 줄리의 집 앞에 다친 셀린느가 앉아 있다. 두 사람은 꼭 오래전부터 이미 알던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셀린느는 줄리의 집에 함께 살게 된다.

       

      ‘만남’은 ‘되기’로 이어진다. 셀린느는 전화를 받고 줄리 대신 그녀의 어린 시절 연인 길루를 만나러 간다. 반지를 주며 청혼하는 길루에게 응하는 것처럼 보이던 셀린느는 이내 장난스럽게 그의 바지를 벗겨버리고 골탕을 먹인다. 공원에서 망신을 당한 그는 그녀가 셀린느라는 사실을 모른 채,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화를 낸 뒤 떠나간다. 줄리는 점점 도서관에 출근하지 않게 된다. 하루는 셀린느 대신 카바레에 출근해 공연을 한다. 재밌는 볼거리를 보듯이 자신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브로커들에게 시원하게 한 마디 한 뒤 공연장을 뛰쳐나와 셀린느에게 향한다. 서로가 역할을 교환하고 ‘되어 봄’으로써 두 사람은 비로소 남성과 직업, 자본과 사회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앨리스는 토끼를 따라 곧장 토끼 굴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정리와 준비가 필요하다. 서로가 있었기에 셀린느와 줄리는 마법 같은 세계로 향할 준비를 모두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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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유령 저택과 기억 사탕


       

      이 영화에는 ‘토끼 굴’ 대신 오래된 ‘저택’이 하나 등장한다. 저택에는 한 남자와 두 여자, 그리고 한 소녀가 산다. 올리비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소피는 마들렌을 살뜰히 보살피고, 카미유는 죽은 언니의 옷을 입고 그를 유혹한다. 전형적인 19세기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지닌 해당 이야기는 셀린느가 보모로 일하는 저택의 일화로 처음 소개되지만, 점차 현실 세계가 아닌 가상의 세계 혹은 누군가의 꿈속 세계처럼 느껴지게 된다. 줄리와 셀린느는 번갈아 가며 이 저택에 방문하고, 매번 정체 모를 손바닥에 떠밀려 쫓겨난다. 저택에서 나오면 마법처럼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잊게 되지만, 대신 입안에는 기억 사탕이 남는다. 셀린느와 줄리는 함께 사탕을 나눠 먹으며 저택에서 일어난 일들을 복기해보는데, 그 모습이 꼭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화를 보는 관객 같기도 하다.

       

      저택 방문과 기억 상실, 다시 사탕을 먹는 일이 매일 반복되지만 서사는 쉽게 진전되지 않는다. 셀린느와 줄리는 사탕을 먹을 때마다 계속해서 같은 장면을 보게 되고, 아주 조금씩 새로운 정보를 얻어갈 뿐이다. 기억과 사건이 쉽게 축적되지 않는, 비선형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기 때문에 중반부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 지점이 기존의 서사나 영화 형식과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로 읽힌다.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 혹은 서사적 장치 없이, 긴 시간 동안 인물들을 따라가고 함께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천천히 미세하게 나아간다. 사탕을 먹으며 같은 꿈을 꾸는 두 사람은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처럼 무척 신나고 행복해 보인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셀린느와 줄리처럼 그저 즐겁게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탕을 먹으며 저택의 일화를 관람하던 셀린느와 줄리는 어른들의 치정 싸움으로 인해 소녀 마들렌이 억울하게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크린 밖의 관객인 것만 같던 두 사람은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극 속으로 직접 뛰어들기로 한다. 특히 이들이 마들렌을 구하는 과정이 무척 인상적이고 흥미롭다. 둘은 논리적으로 납득할 만한 새로운 결말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책을 훔쳐 묘약을 만들고, 주문을 외우고, ‘아기 공룡의 눈’ 반지를 나눠 끼는 발칙하고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원하지 않는 비극적 결말에 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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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날, 셀린느와 줄리는 이번엔 함께 저택에 방문한다. 관객은 두 사람의 계획이 저택 안 인물들에게 발각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셀린느와 줄리는 보란 듯이 이 긴장감을 배반하고 뛰어놀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아무리 농담과 장난을 해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유희적인 놀이를 이어가도, 저택의 사람들은 그저 인형처럼, 죽은 사람들처럼 정해진 대사와 행동만을 반복한다. 이 공간에서 살아있는 이들은 오직 셀린느와 줄리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은 결국 마들렌을 저택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일에 성공하고, 제목에도 나와있듯 배를 타고 유유히 떠난다. 그리고 그 반대 방향으로 유령 같은 저택의 인물들이 똑같이 배를 탄 채 흘러간다. 기존의 서사가 지닌 권위는 힘을 잃게 되고, 새로운 이야기의 시대가 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장면은 왠지 모를 승리감과 통쾌함을 안겨 준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 미동 없이, 잿빛 얼굴을 한 채 떠내려가는 두 여자와 한 남자의 모습은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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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반복되는 이야기의 꿈


       

      영화가 여기서 끝났다면 이 이야기는 셀린느와 줄리, 그리고 마들렌의 낭만적인 모험담 혹은 여성주의 영화로 귀결됐을 테지만 감독은 끝까지 관객의 기대를 비틀어버린다. 영화가 시작할 때 줄리가 앉아 있던 벤치에 이번엔 셀린느가 앉아 있다. 졸다가 깬 듯한 그녀의 모습은 3시간 넘게 달려온 이 모든 이야기가 셀린느의 꿈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결국 자유롭고 무한하던 두 사람의 모험도 꿈같은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이행된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주지시켜 준다. 꿈속에서, 스크린 안에서 이야기는 종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간다. 다시 벤치에 앉은 한 사람이 바쁘게 달려가는 다른 한 사람을 발견하는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것만 같아도, 그 주체가 바뀌었다는 점 하나만으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자 즐거움일지도 모르겠다.

       

      개연성과 완성도,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메시지의 전달과 같은 것들에서 벗어나 셀린느와 줄리처럼 자유롭게 영화라는 ‘놀이’에 올라타 보면 어떨까. 언젠가 우리가 영화관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서로에게 셀린느와 줄리가 되어 주면 어떨까. 아무리 허무맹랑한 꿈일지라도 이를 끝까지 함께 바라봐줄 친구 한 명만 있다면 금세 마법 같은 순간이 펼쳐진다. 어렸을 적, 숨바꼭질을 딱 한 번만 더 하자고 말하던 때처럼, 해가 질 때까지 질리도록 미끄럼틀 주위를 빙글빙글 뛰어다니던 때처럼, 좋아하는 영화의 좋아하는 장면을 닳을 때까지 돌려보던 과거의 어떤 날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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