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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사각형에서 살갗으로 [미술]

격자는 어떻게 피부가 되는가

by 김민주 에디터
2026.10.1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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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정상화, 무제 84-2-10, 캔버스에 아크릴릭, 115.7×89㎝, 1984.jpg

      정상화, 〈무제 84-2-10〉, 1984, 캔버스에 아크릴릭, 115.7×89㎝

       

       

      우리는 격자에서 질서를 읽는다.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사각형은 화면을 나눈다.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1979년에 발표한 논문 「격자(Grids)」에서 격자를 20세기 미술의 핵심적인 형식으로 다루었다. 그에게 격자는 자연을 닮으려 하지 않는 형식, 곧 반자연적이고 반모방적인 형식이었다. 격자는 바깥 세계의 재현을 밀어내고, 회화가 그저 하나의 평면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정상화(1932~)의 〈무제 84-2-10〉 역시 화면 전체가 사각형 격자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사각형은 완벽하게 반듯하지 않고, 선은 미세하게 흔들리며, 칸마다 색과 질감이 조금씩 다르다. 자연을 밀어내기 위해 쓰였던 격자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가죽이나 피부 같은 신체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정상화의 격자는 작가가 선을 그어 만든 것이 아니다. 캔버스에 올린 물감 층을 접고 펴낸 뒤 빈자리를 메우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나는 바로 그 과정 때문에 이 작품의 격자가 기하학적 질서에 그치지 않고, 손상과 메움의 이력을 간직한 피부와 같은 표면이 된다고 본다. 이 글은 그런 나의 감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제작 방식과 화면의 세부를 따라가며 짚어보려는 시도다.

       

       

       

      격자를 만드는 행위


      정상화는 캔버스에 바탕층을 두텁게 올리고, 그것이 마르면 캔버스를 나무 틀에서 분리해 가로세로로 접는다. 접힌 자리를 따라 균열이 생기면 캔버스를 다시 틀에 고정하고, 갈라진 조각들을 떼어낸 뒤 비워진 곳을 물감으로 메운다. 이 작업은 화면 전체에 걸쳐 이루어질 뿐 아니라, 같은 화면 위에서 여러 차례 겹쳐 반복된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격자의 성격을 바꾼다. 몬드리안의 화면에서 격자의 선이 작가가 설정한 기하학적 질서를 따른다면, 정상화의 선은 물감 층이 접히고 갈라지는 과정에서 생긴다. 작가는 접는 방향과 간격을 정하지만, 균열이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갈라질지는 재료와 면천이 정한다. 그래서 선은 미세하게 휘고, 사각형의 크기와 모양도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칸은 평행사변형에 가깝게 기울어 있고, 모서리 곳곳에는 작은 삼각형 조각이 떨어져 나간 자국이 남아 있다.


      나무 틀이 뼈대라면, 그 위에 씌워진 면천은 살이자 가죽이 아닐까. 내게 이 작업 방식은 동물의 표피를 떼어내 가죽을 도려내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틀에서 분리된 면천은 물감 층을 입은 채 접히고 갈라지며, 일부가 벗겨진 자리는 다시 메워진다. 이때 면천은 물감을 받아들이는 바탕을 넘어, 손상과 메움을 거치는 하나의 피막이 된다. 완성된 화면에서 사각형이 촘촘하게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내가 악어가죽 가방의 무늬를 떠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화면이 가죽을 그려서가 아니라, 캔버스가 실제로 가죽처럼 벗겨지고 다시 씌워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해는 정상화의 작업을 바라보는 익숙한 시선과 조금 다르다. 그의 작업은 흔히 단색화의 흐름 안에서 끝없는 반복과 수행, 그리고 그 과정에 담긴 정신성의 차원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나는 반복하는 행위 그 자체보다, 그 반복이 캔버스 표면에 남긴 물리적 결과에 더 눈이 갔다.  수행이 끝난 뒤 표면에 무엇이 남았는가를 보고 싶었다.

       

       

       

      가죽에서 피부로


      악어가죽의 표면이 초록빛을 띤다고 생각해 본다면, 이 화면의 가죽은 누구의 것일까.  나에게는 가공된 동물의 가죽보다 살아 있는 인간의 피부가 떠올랐다. 세로 115.7㎝, 가로 89㎝의 화면은 앞에 선 사람의 상반신과 비슷한 크기여서, 마치 다른 몸을 마주하는 듯한 거리감을 만든다. 화면은 미색 칸과 그보다 약간 짙은 살구색 칸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 색은 규칙적으로 번갈아 놓이지 않고 불규칙하게 흩어져 있다. 밀색과 살구색 사이를 오가는 이 색조에서 나는 노란 기가 도는 동아시아인의 피부를 보았다. 칸 표면에는 면천의 직조가 희미하게 비치고, 작은 점과 얼룩이 곳곳에 남아 있어 매끈한 도료보다는 살갗의 결에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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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런 킴(Byron Kim), <제유법(Synecdoche)>,  이미지 출처: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내가 이 색에서 피부를 떠올린 데에는 바이런 킴(Byron Kim)의 〈제유법(Synecdoche)〉(1991~)을 본 경험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킴은 여러 사람의 피부색을 하나씩 단색 패널에 옮겨 격자로 배열했다. 피부색이 추상적인 사각형의 형태를 취하면서 격자는 개별적인 신체와 연결된다. 그러나 두 작품이 피부에 다가가는 방향은 다르다. 킴이 이미 존재하는 피부색을 격자 안으로 옮겨왔다면, 정상화의 화면에서는 격자를 만드는 과정이 표면을 낳는다. 또 킴의 격자가 여러 사람의 피부를 나란히 놓는다면, 〈무제 84-2-10〉의 미묘한 색 차이는 내게 한 사람의 몸 안에서 생기는 차이처럼 보였다. 같은 사람의 피부라도 목 뒤와 배, 팔 안쪽과 손등은 저마다 다른 색을 띤다. 사각형들이 마치 한 사람의 여러 부위를 모아 그 사람만의 색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선을 살펴보면 이러한 연상은 더욱 구체적인 방향을 가진다. 격자를 나누는 선은 적갈색과 청흑색이 섞여 있고, 일정한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미세하게 휘거나 끊어진다. 같은 선 안에서도 진하게 눌린 곳과 거의 사라질 듯 옅은 곳이 번갈아 나타난다. 나에게 이 선들은 손금이나 관절의 주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 선들이 캔버스를 접는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연상은 더 그럴듯하다. 신체가 반복해서 접히고 펴지면서 주름을 만들듯, 정상화의 작업에서도 접힘은 선을 만들어내는 조건이 된다.


      물론 작품의 균열과 피부의 주름이 같은 것은 아니고, 각 사각형이 특정한 인물이나 신체 부위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두 표면 모두 물질의 변화와 반복된 접힘을 통해 형태를 얻는다는 점에서 나는 둘을 겹쳐 보게 된다.

       

       


      격자에 새겨진 시간


      크라우스가 말한 격자가 자연을 밀어내고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형식이었다면, 내가 본 〈무제 84-2-10〉은 바로 그 평면 위에 재료가 겪은 변화를 새겨 넣는다. 사각형의 반복은 여전히 질서를 이루지만, 그 질서 안에는 균열과 파손, 그리고 여러 차례 겹쳐진 메움이 함께 남아 있다. 정상화는 피부를 그리지 않았다. 캔버스를 접고, 뜯어내고, 다시 메우는 일을 반복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반복이 쌓인 결과, 자연을 밀어내던 격자는 오히려 살갗의 결을 닮아 있었다.

       

       

      스크린샷 2026-10-13 오후 2.15.47.png

       

       

      뜯어낸 자리를 다시 메워도 화면은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새로 채워진 칸은 주변과 두께도, 색도 조금씩 다르고, 그 차이는 한때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는 사실을 남긴다. 나는 이 작품이 주는 편안함이 단순히 미색이라는 색감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쌓인 시간의 두께에서도 온다고 여긴다. 오래 쓴 물건이나 나이 든 사람의 손등이 그렇듯, 여러 번 변화를 겪은 표면은 매끈한 새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끌어당긴다.

       

      작품 앞을 떠나며 나는 문득 내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칸칸이 조금씩 다른 색, 접히는 자리마다 새겨진 가는 선들. 평생 뒤집어쓰고 살아왔기에 오히려 제대로 바라본 적 없던 표면이었다. 〈무제 84-2-10〉은 어떤 대상도 지칭하지 않는 그림이지만, 나에게는 그 익숙한 살갖을 낯설게 다시 보게 만든 그림이었다. 격자라는 가장 차갑고 정돈된 형식이, 가장 가깝고 부드러운 몸의 기억을 불러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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