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간의 선은 그저 가상일 뿐 [미술/전시]

글 입력 2022.12.1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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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올해의 작가상 10년의 기록>에는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영상 아카이브에 눈이 갔다. 작가들의 제작 과정과 인터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세상을 향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은 지 확고한 작가만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나를 지나칠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접했을 때, 그 순간만큼은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하루 또는 일 년 이 지만 사건만 기억할 뿐 그 당시에 가졌던 연민의 감정은 사라진다]

 

어떤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여기 서 있는 나를 관통하는 것만 같았다. 최근 안 좋은 사건을 자주 접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슬픔이란 감정을 함께 했지만 언젠가 그 감정에서 멀어져 아무렇지 않을 나를 생각하니 참 이상했다. 스스로 마음에 다시 새겼다. 슬픔은 시간이 지나 지워질지라도 내가 그들과 함께 했던 감정은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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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작품과정 영상에 오랫동안 주목했다.

 
<전 날의 섬 내일의 섬> 구민자 작가의 작품이었다. 타베우니 섬의 날짜 변경선을 소재로 삼아 현대 미술 작품이 만들어졌다.

 

몰랐던 사실이기도 하고 날짜변경선이라는 신선한 소재가 흥미로웠다. 이 선은 그저 가상인 우연일 뿐이다. 선 하나를 통해 두 가지의 날짜가 존재한다는 신기하기도 하며 관광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과정에 담긴 영상에는 두 명의 사람이 선을 대칭축으로 두고 양쪽에서 24시간 살고, 양쪽을 바꿔 다시 하루를 살아가는 실험을 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서로를 의식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생활을 이어갔다. 평소와 다름없이 식사를 하기도 하고 주변을 걷거나 신문을 읽는다.

 

실험 중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러 와도 이들은 시공간의 개입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그저 시간은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24시간이 지나 양쪽의 실험자는 교체되었고, 다시 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사람은 전 날의 행동을 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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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자 작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들이 당연한 건가? 물음을 제시했다.

 

그에 대해 즉각적인 답변이 나오지 못했었다.

 

과연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무엇인지 돌이켜봤다. 삶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내가 편의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 문득 생각났다.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한밤중 도로공사가 시작되었던 날, 소음으로 인해 잠자리에 들지 못했었다. 새벽까지 공사는 계속되었고 결국 나는 뜬 눈으로 지새워 힘든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불편을 겪은 건 단 하루 뿐이었다. 평소 길을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어디든 다닐 수 있었던 건 이유는 어떤 이들의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그동안 두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인식하고 살았는데, 왜 나는 이들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나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또한 우리는 사회가 정해진 틀에 살아가며 안정감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만들어진 이유가 있지만 왜 우리는 궁금해하지 않으며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타인의 편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 어느 날 없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불편함을 느끼고 나서야 궁금해하며 이들을 떠올리지 않을까.

 

대부분 사람들에게 밤은 하루 일과가 끝나는 시간이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하루의 시작이자 일을 하는 시간이라는 걸 이제서야 인식했다. 이를 통해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시간은 모두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던 날이다.

 

세세한 시간까지 연연하며 살았던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이 보였다. 그저 주어진 시간은 똑같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보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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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어제의 하루가 다시 주어진다면 고민도 없이 간다고 답했을 거다. 대부분 만족스럽지 않은 날을 보냈기 때문에, 늘 나의 마음은 후회로 가득 찼었다.

 
이 작품을 본 후 시간에 대한 미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같은 공간이라도 날짜변경선으로 인해 서로가 보내는 시간은 다를지라도 일상을 지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관광객들이 와도 이들의 시공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저 이들은 선이 정해버린 시간에 순응하며 하루를 보냈던 게, 나에게 깊은 인상과 울림을 주었다.

 

그동안의 나는 정해져 있는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삶에 압박감을 느꼈다. 그 나이대에 맞게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 시기, 취업 시기, 결혼 시기 등 사회에서는 적정한 시기에 맞춰 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때를 놓치면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평범한 삶과의 거리가 한 발짝 멀어졌다고 느낀다. 늦게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 우리는 시간이라는 것에 얽매여 불안과 맞서야 한다.

 

전에 인상깊게 본 글이 기억난다. 뉴욕은 캘리포니아보다 3시간 빠르지만 그렇다고 캘리포니아가 뒤처진 것은 아니며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대에서 스스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이 문장이 나를 안심하게 만들어줬다.

 

그저 언젠가 나도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하겠지 하는 기한 없는 기다림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내가 시작한 것들이 차츰 쌓이게 되어 먼 훗날의 나에게 큰 거름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에서 오는 안도감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성과는 없을지라도 언젠가는 배로 돌아올 거라는 점이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끈끈하게 만들어줬다.

 

이 작품을 통해 구민자 작가만의 예술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관찰자의 입장이 아닌 스스로 실험자가 되어보았고, 관객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예술이 탄생한다는 점이 이 작품에 뚜렷하게 드러나는 거 같다.

 

작가가 직접 퍼포먼스를 보이며 느꼈던 점을 관객들에게 공유했던 것이 원활한 소통을 하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정해져 버린 시간이라는 축에 담긴 우리들이 틀을 깨고 벗어날 수 있게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뀌게 만들었다.


 

[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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