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창작공장 콤마엔드의 《미래의 현대인에 대한 추상》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맵핑히틀러>가 2026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서울씨어터 202에서 공연되었다. <맵핑히틀러>는 청년 백수 한들호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우연한 계기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일억 구독자를 얻게 된 후, 대통령에 당선되는 장광설을 그린 블랙코메디이다.
2036년 한국으로 소환된 히틀러
연극 <맵핑히틀러>는 한들호의 대통령 취임식에서 시작된다. 준비된 연설문 낭독과 함께 장면이 전환되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의 한들호가 등장한다. 관객들은 연극의 첫 장면을 통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핑계로 모바일 게임에 빠져있는 이 평범한 한 청년이 대통령이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안 상태에서 연극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컴퓨터공학에서 맵핑은 한 데이터 집합의 요소를 다른 집합의 요소로 일대일 또는 다대일로 대응/연결하는 기술을 뜻한다. 연극 <맵핑히틀러>는 극 전개에 있어 이러한 맵핑 개념을 빌려 한 인물을 또 다른 인물로 덧입히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연극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덧입히는 인물은 나치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다. 평범했던 청년 히틀러가 자신감을 얻었던 장소가 군대였다면, 한들호에게는 유튜버였고, 히틀러가 당면했던 세계가 세계대전 중 독일이었다면, 한들호에게는 전쟁으로 인하여 삶이 팍팍해진 한국인 셈이다.
연극 <맵핑히틀러>는 의도적으로 히틀러의 몸짓과 발언 방식을 한들호에게 삽입하여 관객에게 경계심을 느끼게 하였다.
당신은 거짓말에 속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연극 <맵핑히틀러>는 예술창작공장 콤마엔드의 《미래의 현대인에 대한 추상》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지만, 앞선 두 작품과는 그 결을 달리한다. 첫 번째 이야기인 <시뮬라시옹>과 두 번째 이야기인 <워크맨>이 기술이 발전한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 존재와 기술 간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연극 <맵핑히틀러>는 이미 존재하는 혼란한 세계와 인간을 담았다. 발달한 SNS와 미디어의 작동 방식에 근거하여 독재자의 탄생을 그려본 것이다.
나치의 편협한 인종 이데올로기는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전쟁범죄를 일으켰다. 그들은 600만 명이라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 무수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온갖 창의적인 방법을 개발했다. 많은 사람은 히틀러가 이처럼 악독한 독재자였기 때문에, 무력 및 강압으로 정권을 잡았다고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히틀러는 제도 밖에서 등장한 인물이 아니다. 히틀러는 당시 1930년대 독일인들에게는 확실히 인정받고 지지받았던 인물이다. 히틀러라는 인물을 소환하는 것이 여전히 버거운 까닭은 많은 사람을 살해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연상시키는 대중의,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의 광기 때문일 것이다.
한들호가 유튜버를 시작한 까닭은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할아버지를 응징하기 위해서였다. 해당 영상으로 좋은 반응을 얻은 한들호는 본격적으로 ‘비양심 인물’을 찾아 영상에 담기 시작한다. 금연 구역에서 흡연하기, 지정되지 않은 곳에 주차하기, 노상방뇨, 끼어들기 등 법적 처벌을 받지 않거나 그 수위가 낮으나 분명 규칙을 지키지 않는 행위들이 있다. 사람들은 한들호의 포착에 열광했고 한들호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방구석에서 부모님 돈으로 게임을 하던 청년이 타인의 숨기고 싶은 순간을 팔아 정의로운 시민이 된 셈이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문제인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즉, 규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을 고발하는 것은 그 방식에 있어 찬반이 있더라도 나쁜 행위는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각자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한들호가 최초로 촬영했던 할아버지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를 둘러싼 맥락을 먼저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흡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랐던 시기를 더 오래 살았던 개인의 역사일 수도, 제대로 된 흡연구역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 인프라의 문제일 수도, 더 나아가 낮에 상가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이 유일한 소일거리일 수밖에 없는 노년기의 상황일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많은 규제와 단죄가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없다. 그것은 쉽고 단호한 방법이지만 제대로 된 방법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부정의를 고발하던 유튜버가 독재자가 되었다는 연극 <맵핑히틀러>의 서사는 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들호는 유튜버 촬영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민폐를 끼치는 인물들의 얼굴이 유사하다는 가정을 하게 된다. 그들을 ‘무소인’이라 지칭하며 무소인에 대한 척결을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내세운다. 무소인은 극중 가상의 개념이지만, 우리는 이미 현실의 무소인들을 알고 있다. 경제불황과 일자리 없음에 대하여 이민자가 문제라고, 장애인이 문제라고, 노동자의 파업이 문제이고, 어느 나라 사람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 그리고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럴 때 모든 것을 명료하게 말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 거짓말에 속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연극은 질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