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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연극 '맵핑히틀러'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연극이라는 행위 안에는 정치성이 담겨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아무 일면식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고, 그 의견에 감화되거나 반감을 갖게 되는 그 과정 자체가 정치적인 거라고.
그런가.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 하나. 우리는 왜 굳이 그 좁은 극장 안에 자진해서 들어가 아무 연관 없는 남의 이야기를 감상하는가?
그 이야기가 완전히 '남의 일'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 먼 나라의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이야기일지라도, 결국 이야기는 나의 시선을 경유해 나의 경험, 그리고 나의 감각과 연결된다. 즉, '그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승화되는 과정. 이것이 연극을 보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 가까운 나라에 알 수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플랫폼이 주는 자유 권력을 영리하게 이용하며 '좋아요'와 '댓글', 그리고 '구독'과 '알림 설정'까지! 익숙한 구호를 외치며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한다. 아주 작은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청년 백수 '한들호'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첫째. 한들호는 대통령에 당선된다.
연극 <맵핑히틀러>는 끝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이다. 무대 중심에 선 '한들호'와 그 곁을 충실히 지키는 '고보슬' 그리고 '정가람'. 셋은 함께 걸어온 험난한 여정을 회상하며, 곧 펼쳐질 대통령 당선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름들. 더군다나 한들호는 미대 지망생이었으며 진학에 실패하고 지방의 한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백스토리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 한들호. 우리는 그 인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억지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평범한 청년 '한들호'는 그러나 공부보다는 게임이 더 재밌고, 특히 몰래 하는 게임은 더 재밌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린다. 독서실보다 아파트 재활용 수거장이 더 익숙해진 그는, 거기서 핸드폰 게임을 하며 시간을 죽이다가 담배를 피우는 할아버지와 마주치게 된다.

금연 구역이니 담배를 꺼 달라는 한들호의 부탁에도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할아버지는 오히려 호통을 치며 그를 내쫓는다. 분을 삭이지 못한 한들호는 결단을 내리고, 핸드폰을 켠다. 그러고는 영상 하나를 찍는데. 그건 바로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진상을 고발하는 영상이었다.
아파트 커뮤니티에 해당 영상을 업로드하며 공론화를 꾀한 한들호의 첫 시도는 영 미적지근한 반응 속에 막을 내린다. 독기를 품은 그는 해당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한다. 이 무개념 행동을 비난하는 댓글과 함께 천 명 가량의 구독자가 모이기 시작했고, 바야흐로 이것이 '대통령 한들호'의 서막이었다.
그는 결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개념들을 고발하며 깨끗한 세상을 만들고 말겠다고.
둘째. 그런 한들호에게는 '동료'가 있었다.
평소 불만을 품었던 여러 세태를 시원하게 꼬집어 주는 한들호의 유튜브 채널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당당하게 손가락질하고 싶은 마음을 속으로 꾹 참았던 사람들이 한들호로부터 '대리만족'을 느낀 것이다. 고발을 무기로 무개념을 숙청하는 그의 행위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그렇게 세를 불려 가던 한들호 채널에 첫 번째 동료가 생긴다. 바로 연극 배우 '고보슬'이다.
스스로를 그의 구독자이자 열렬한 팬이라고 밝힌 고보슬은 무명의 연극 배우로 생활하며 겪은 여러 불합리한 일들을 털어놓는다. 그러고는 자신도 이 유튜브 채널에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는데. 고보슬이 합류한 유튜브는 리뉴얼을 거치며 더 많은 구독자를 끌어모으고, 여기에 서울대 로스쿨생 '최래민'과 행동대장 '정가람'이 합류하면서 채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넷은 함께 청계산에 올라 '도원결의'를 맺고,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다.

이들이 없었더라면 한들호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뒤에서 철저히 뒷받침해 준, 때로는 앞에서 끌어 주기까지 했던 수많은 구독자와 댓글, 좋아요가 없었더라면 그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디지털 권력에 올라탄 청년이 이토록 폭주할 수 있었던 건, 그를 믿기로 '선택한' 자들의 수많은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교묘한 권력을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천재적인 언술의 소유자, 한들호는 천천히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셋째. 분노하라, 참지 마라, 외쳐라!
그렇게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유튜브 채널은 급격한 위기에 빠진다. 그들이 만든 정의구현 영상이 혐오 콘텐츠 판정을 받은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넷은 자신들이 표출하는 분노를 역이용하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불합리한 세상이 미워 죽겠는 사람들이여, 우리를 착취하는 정치인이 미운 사람들이여, 분노하라! 그들은 국회의사당에 뛰어들어 빗자루로 정치인들을 마구 쓸어버리는 과감한 퍼포먼스를 감행한다.
그 생중계 사건으로 폭발적인 관심과 호응을 얻은 한들호는 1년간 수감 생활을 하게 되지만, 그 안에서 <나의 복음>이라는 수기를 써 내려가 세상에 발표하기까지 한다. 빗자루 폭동과 <나의 복음>으로 한들호의 정치 투쟁에 엄청난 힘이 실리게 되고, 그는 이제 공공의 적을 만들어 세력을 결집하고자 한다.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무개념들을 통칭하는 단어, '무소인'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그는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무소인을 척결하자는 구호를 내세운다.
그와 동시에 세계에 엄청난 위기가 닥친다. 전쟁이 발발하고 IMF가 터지며 대공황에 빠진 세계 속 한국을 구하겠다는 한들호는 공격개시당을 창당하고, 본격적인 선거 운동을 펼친다. 그리고 한들호는 수많은 편집과 오류 속에서 대통령에 당선된다.
현실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컴퓨터공학 용어인 '맵핑'은 이 무대 위에 과거의 인물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연극 <맵핑히틀러>는 과거의 히틀러가 맵핑된 한들호라는 인물을 통해 현시대의 괴물이 탄생하는 과정을 생생히 그려낸다. 그런 한들호는 어느 먼 나라의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아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 한들호다. 그러니까 현실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연극을 보는 내내 다양한 이미지들이 나의 감각을 두드렸다. 스크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 인물의 흰 옷에 조명을 맵핑하여 형형색색의 복장으로 연출한 방식, 그리고 제4의 벽을 허무는 선거 유세를 통해 관객의 참여를 시도한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그러는 한편, 불편한 감각이 발목을 붙잡기도 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따위의 생각들. 하지만 현실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뒤늦은 깨달음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맵핑히틀러>는 바로 그 불편한 감각에 정면승부를 거는 연극이다. 이 폭력의 현장에 함께하며 든 가장 큰 감상은, 이 허구의 무대보다 현실의 무대가 오히려 더 잔인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도 이 불편함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가 온 것 같다. 더군다나 이렇게 '믿음'이 쉬워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라면 더욱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