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연들은 끝나고 나서도 며칠 동안 기억에 머무르며 흔적을 남긴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문턱이었던 11월 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됐던 [The Love Symphony]의 '팬텀싱어 In Love'가 그렇다. 비단 '팬텀싱어' 프로그램 속 출연자들과 심사 위원들이 한 무대에서 재회했던 뜻깊은 자리라서 만이 아니다. 이들과 함께 한 2시간은 여유와 감동이 넘치던 시간이었다. 각자의 목소리로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 내며 하나의 '심포니'를 완성한 그 순간을 복기해 본다.

'사랑'을 노래하며 한데 어우러지는 4악장
1) 존 노
테너는 기본적으로 멜로디 흐름을 준수하게 소화하며 고음을 힘들이지 않고 뽑아낼 때 그 매력이 부각된다. 존 노가 그랬다. 그는 뮤지컬 〈The Hunchback Of Notre Dame〉의 넘버 [Out There]와 뮤지컬 〈West Side Story〉의 넘버 [Maria],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한 발라드 [Cuore] 등 클래식을 넘나드는 다양한 곡을 소화하며 내면의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바이브레이션이 절제된 청아한 목소리로 한 음 한 음을 신중하게 내뱉으니 가사가 또렷하게 들리더라. 사뭇 수줍다가도 노래를 시작함과 동시에 좌중을 장악해 버리는 모습에서는 성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 역시 고스란히 드러났다.
2) 길병민
베이스 바리톤은 짙은 음색과 몸통의 울림으로 전달되는 진동들이 매력적인 포지션이다. 길병민은 여기에 풍부한 표현력까지 갖췄다.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와 영화 〈뷰티 인사이드〉 속에 편곡되어 활용된 [Amapola]는 라틴의 색채가 묻어나고, 영화 〈Love Story〉의 OST [Love Story]와 허림의 시에 음률을 붙인 가곡 [마중]은 서정적인 감성 속 특유의 호소력이 두드러졌다. 특히, '예상치 못한 순간에 함성이 터져 나와 순간 가사를 까먹을 뻔했지만, 너무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마음이 가는 때에 표현해 달라'고 하는 등, 재치 있는 태도와 제스처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3) 리베란테
앙상블은 서로 다른 파트들이 켜켜이 쌓여가는 화음을 통해 황홀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에 더해 리베란테는 본인들의 미니 2집 앨범 주제곡 [Diamante]와 수록곡 [Sueño Lunar], 라틴 팝계의 국민가수 루이스 미겔의 [Fría Como el Viento] 등 한 가지 장르로 특징지을 수 없는 매혹적인 곡들을 소화하며 크로스오버 그룹의 진면목을 보였다. 각기 다른 음역과 세기로 때로는 얘기하듯이 때로는 외치듯이 노래하니 웅장함과 벅차오름은 배가 됐다. 감동적인 전개 속에 감히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노래의 힘을 생각하게 되더라. 무엇보다 앞으로 이들의 거침없는 행보가 기대됐다.
4) 옥주현
솔리스트는 주어진 시간을 홀로 책임지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목소리와 이를 뒷받침하는 힘이 필요하다. 어쩌면 옥주현은 이를 모두 만족하는 대표적인 가수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순서가 오자, 뮤지컬 〈Mata Hari〉의 넘버 [마지막 순간]이나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로 삶의 끝에서 맞닥뜨린 애절한 순간과 사랑의 절정을 논하면서, 특유의 시원시원한 고음으로 연신 카타르시스를 쥐여줬다. 시공간을 좌우지하는 카리스마 속 여유로움을 유지하면서. 무엇보다 다른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곡 선정 이유를 먼저 공유하니, 부르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며 보다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밤이 깊어가는 동안 짙어지는 하모니
한편, 안드레아 보첼리와 셀린 디온의 [The Prayer](옥주현, 존 노), 뮤지컬 〈Marie Antoinette〉의 넘버 [All I do](옥주현, 길병민), 영국 밴드 프로콜 하럼의 [A white shade of pale]을 이탈리아어로 노래한 [Senza Luce](존 노, 길병민) 등 듀엣들도 이어졌다. 선생과 제자, 평가하는 사람과 평가받는 사람의 관계에서 벗어나, 동료 가수로서 나지막이 나누는 대화였기에 숨을 죽이고 지켜보게 되더라. 좀처럼 쉽게 볼 수 없는 조합이었기에 커튼콜 이후 4팀이 모두 자리한 앙코르 합창에서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이는 The M.C 오케스트라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서 가수들과 함께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보통 오케스트라는 단독 공연이 아닌 이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은 공신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모든 세션이 눈부신 조명 아래 다양한 악기들을 뽐내고, 지휘자와 합을 맞춰가며 압도적인 규모의 연주를 완주해 가는 모습은 그래서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던 연주자들에게 제대로 된 스포트라이트를 켜준 순간이라고나 할까.
이처럼 [The Love Symphony]는 그 제목처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도, 공연 자체에 대한 예술가들의 '애정'과 이에 뜨겁게 호응하는 관객들의 '열정'이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함께 한 공간에서 호흡하며 이번 심포니의 'fin.'을 향해 달려갔다. 풍부한 음률과 소름 끼치는 전율 속 잊히지 않을 또 하나의 무대를 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