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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바야흐로 숏폼의 시대. 가장 쉽고 빠르게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가 길어도 1분을 넘기지 않고, 3분도 짧게 느껴지던 대중음악이 2분 남짓으로 짧아지기 시작하는 추세다. 클래식이 어렵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길이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이런 시대에 사람들에게 적어도 십 분, 길면 몇 시간의 대장정을 거쳐야 하는 클래식 음악을 입문시키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사실 한 시간이 넘는 대곡을 앉은 자리에서 전부 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 클래식 음악은 보통 ‘악장’ 단위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에서 한 앨범에 여러 곡을 담는 것을 생각하면 좋다. 짧은 곡들이 모여 하나의 앨범이 완성되듯, 몇 개의 악장이 모여 하나의 곡이 만들어진다. 클래식 입문 단계에서는 각 악장을 다른 곡처럼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처럼 악장 사이가 ‘아타카’(Attacca, 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 악장으로 중단 없이 계속 연주할 것을 지시하는 표현)로 이어지는 곡들을 제외하면 각 악장마다 끝나는 부분이 있고, 그 사이에 몇 초 간의 텀이 있다.




모슈코프스키의 낭만


 

모리츠 모슈코프스키(Moritz Moszkowski)는 1854년 태어난 독일의 폴란드계 유대인 작곡가다. 피아니스트와 교사를 겸했던 그가 남긴 곡들은 대부분 피아노를 위한 음악 위주였다. 낭만에서 근현대로 넘어가는 19세기 후반 활동하였으나, 진보적인 실험보다는 기교를 이용한 낭만의 극치를 보여주며 낭만 사조의 피날레를 장식한 작곡가라고 할 수 있겠다.



모리츠 모슈코프스키.jpg



그러면 어째서 쇼팽도, 리스트도 아닌 모슈코프스키인가. 모슈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자주 연주되지는 않지만, 이제는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해진 곡이다.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가지고 있고,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아 입문자들에게 추천하기에 부담이 없다.


이 곡은 약 38분이다. 길다고 느껴질 수 있는 길이이나, 네 악장으로 나뉘며 각각 13, 8, 7, 9분으로 구성되어 있어 악장마다 끊어 듣기 적당하다. 앞서 설명했던 아타카(Attacca)가 있지만, 2악장과 3악장 사이에만 존재하며 곡 전체에서 나타나지는 않는다.


보통 우리에게 친숙한 ‘소나타(Sonata)’는 빠른 악장-느린 악장-빠른 악장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입문자라면 빠른 악장을 잘 듣는다고 하더라도 다음으로 연주되는 느린 악장에서 힘이 빠지는 경우가 많기 마련이다. 모슈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도 느린 악장이 포함된 Moderato(보통 빠르기로)-Andante(조금 느리게)-Vivace(아주 빠르고 생기있게)-Allegro Deciso(빠르고 단호하게) 구성이다. 그러나 사실 안단테인 2악장에 이 곡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 부분을 기다린다는 마음으로 들으면 훨씬 지루하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클래식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만, 모슈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은 특히 초반에 등장한 선율이 여러 번 되풀이된다. 그것이 순환 주제(하나의 주제가 여러 악장에 걸쳐 반복되는 작곡 기법)로써 일관적으로 4악장까지 이어지는 유기성을 보여주며, 청자는 이 모티브를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피아노로만 나왔던 멜로디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재등장하면서 느낄 수 있는 벅차오름과 동시에 좁은 방이 광활한 궁전으로 변모하는 듯한 전율, 이것이 바로 음악이 지닌 힘이 아닐까.


다음으로는 모티브와 반복, 발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접 곡을 들어보며 알아보려고 한다. 언뜻 어려워 보이더라도 같은 선율을 계속 듣다 보면 어느새 이 곡에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 없이 감정을 이야기하다


 

① 처음 등장한 옥타브 패시지의 멜로디가 두 번째로 등장할 때는 장난스럽고 로맨틱한 느낌으로 변주되었다가, 오케스트라가 합류하며 조금 빨라진 템포로 연주되는 과정. 마지막에는 가히 환희의 감정이 터져 나오는 듯하다.

 


1악장, 1:25


1악장, 4:13


1악장, 8:15



②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주제 부분. 반복될 때는 뱃고동을 닮은 금관악기의 묵직한 울림과 함께 등장한다. 마치 항구를 떠나는 듯한 느낌이 이별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오케스트라로 등장하는 모티브와 피아노로 이어지는 멜로디를 통해 추억을 회상하며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향수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1악장에서 처음 나타난 이 모티브는 4악장의 최후에 순환주제로써 풀 오케스트라로 재현된다. 마무리 느낌을 여실히 보여주는 4악장이 앞서 등장한 화성과 멜로디, 진행을 하나로 수렴시키는 것 같다.

 



1악장, 2:02


1악장, 10:00


4악장, 37:33



③ 2악장 초반부에서 나타난 피아노 화성과 붓점 리듬 모티브는 곧이어 다른 방식으로 재등장한다. 같은 진행이지만, 화성을 아르페지오로 펼쳐내고 붓점 리듬은 오케스트라로 풀어내며 더욱 발전된 느낌을 준다. 이어서, 2악장에서 등장한 모티브를 3악장에도 순환주제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후의 전개는 3악장 답게 이어지며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2악장, 15:11


2악장, 19:30


3악장, 27:14



④ 피아노 멜로디로 등장한 선율을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문답으로 풀어낸다. 오케스트라의 멜로디를 들어보며 음색에 따른 감정의 차이를 느끼는 재미가 있다.

 


2악장, 17:24

 

2악장, 20:43



⑤ 20분 15초부터 나오는 진행을 가장 선호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몇 마디 전부터 들어야 해당 부분이 더 감격을 준다고 생각한다. 비극적으로 들릴 수 있는 단조의 선율과 화성에서, 어쩌면 사랑을 비언어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멜로디와 화성일까 싶은 음악으로의 전환이 마치 사랑과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2악장, 20:03


 

 

클래식은 어떻게 들어야 할까


 

인간의 감정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음악을 듣고 느끼는 감정은 본인의 몫인 것이다. 다른 장르가 그렇듯 입문이 힘든 것이지, 막상 듣기 시작하면 어렵지만은 않다. 따라서 클래식과 먼저 친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친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걸어갈 때나 운전할 때 듣는 것이다. 3분대의 대중음악으로는 20분 코스를 위해 6~7곡을 선정해야 하지만, 클래식은 재생목록을 짤 필요 없이 한 곡만 골라도 된다. 하지만 클래식은 가장 작은 음량과 큰 음량의 차이 즉 다이나믹이 크기 때문에, 사람이 많거나 주변이 시끄러우면 음량 조절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음악만 듣겠다면 악보를 실시간으로 함께 띄워주는 영상을 추천한다. 음원이나 연주 영상은 자칫하면 주의력을 상실하기 쉽기 때문에, 악보를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초 단위로 넘어가는 악보 영상을 가장 추천하는 바이다.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가장 추천하는 건, 좋아하는 한 곡을 찾는 일이다. 모슈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처럼 선율이 뚜렷하고 감정이 분명한 작품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처음 듣는 장르의 음악에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한 악장, 한 곡씩 쌓이다 보면 어느새 클래식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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