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회 쇼팽 콩쿠르 티저 영상
2025년도 쇼팽 콩쿠르 본선이 시작되었다. 지난 10월 3일부터 시작된 Stage1부터 2, 3을 차례로 거쳐 파이널 협연이 끝난 후 우승자가 결정될 예정이다.
본선 1차 지정 곡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참가자들은 그 중에서도 반드시 에튀드 1곡을 연주해야 한다. 에튀드는 연습곡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테크닉과 표현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난도의 작품들이다. 쇼팽의 에튀드는 특히 피아노과 입시곡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그 중에서도 Op10 No.1은 승리 혹은 폭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유명한 곡이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때에, 이 에튀드를 연습하는 입시생들을 자주 보았다. 퇴근 후 느즈막히 학원에 도착했을 때에도, 입시생들은 여전히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가끔은 선생님께 “저 학생분들은 몇 시에 온 거예요?” 하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오전부터 계속 있었어요” 였다.
입시가 다가올 무렵에는 레슨 중에도 선생님이 부지런히 입시생과 나 사이를 오갔다. 분명 하루 종일 여기서 연습을 했을 텐데도, 선생님은 학생에게 연습을 더 해오라고 당부했다. 열여섯, 일곱 쯤 되어보이는 학생들에게 조금 벅찬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지만, 오히려 입시생들은 그런 시간을 견뎌야 쟁쟁한 전공생들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학생은 한 마디를 끝없이 반복했고, 또 어떤 학생은 아주 느린 템포로 곡을 차근차근 읽는 것처럼 연주했다. 나는 그 입시생들을 꽤 오랜 기간 동안 보았다. 몇 개월 동안 그 한 곡이 천천히 완성되고 있었다.
쇼팽 에튀드를 주제로 한 티저 영상은 그런 현실의 노력들을 아주 선명하게 담고 있었다. 아주 느린 템포의 연습으로 시작된 에튀드가 점차 완성되어 가는 과정은,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시간을 감성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티저 영상 속 연주자가 무대에 서기까지의 과정은 피아노를 전공한 학생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연휴가 시작된 이후, 시간이 될 때마다 쇼팽 콩쿠르 본선 라이브 영상을 시청했다. 음악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건 아니라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를 가려내긴 어려웠지만 좋아하는 곡을 다양한 해석으로 듣는 건 즐거웠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자기가 선택한 레퍼토리를 말끔하게 연주해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주 실시간 라이브 댓글 창에는 'Messy', 'Too loud' 같은 부정적인 평가가 오가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솔로 리사이틀을 진행하더라도 관람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실력자들이었다.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선 이렇게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정답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입시 때부터, 콩쿠르까지 자신의 음악을 사람들 앞에 선보이고 평가 받는 과정의 무게를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 날선 평가를 보는 마음이 유쾌하진 않았다.
피아노를 잘 치는 연주자가 점점 늘고, 테크닉과 해석력의 평균적인 수준도 더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번 쇼팽 콩쿠르에서도, 기존에 평가하던 곡들 외에 다른 난곡들을 평가 기준에 추가하였다. 앞으로도 더 많은 난곡을 소화하는 연주자들이 등장할 것이며, 뛰어난 피아니스트를 가려내는 기준 역시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5년 후 개최될 콩쿠르에는 더 뛰어난 연주자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콩쿠르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많은 아픔을 남길 수도 있다.
2015년 쇼팽 콩쿠르 2위 수상자 샤를 리샤르 아믈랭은 인터뷰를 통해 "여러 의견이 있지만, 그럼에도 콩쿠르는 여전히 젊은 연주자가 주목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라고 말했다. 공연과 연주자의 자리는 한정적이고, 콩쿠르를 통한 연주자 발굴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래도 많은 참가자들이 피아노를 대하는 마음이 다치지 않길 바란다.
이번 콩쿠르 우승자도, 우승자가 아닌 사람들도 기꺼이 음악을 즐겁게 이어갈 수 있기를, 피아노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에 당연하게도 그럼요 라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시간들이 계속 주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