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스트레스 해소방’이 유행이다. 망치로 접시를 깨고, 프린터나 TV를 부수며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을 경험하는 곳. 가격도 싼 편은 아닌데도 이 방을 찾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 야구방망이를 들고 힘껏 내려치는 그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격렬하고도 시원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한참을 부수고 나니까 살 것 같다고. 그런 걸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노를 안고 사는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감정을 억누른다. 속상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 분해도 웃는 척, 때로는 침묵이 가장 안전하다는 걸 너무 잘 알아버렸기 때문에 매일같이 반복되는 작은 무시와 무관심, 사회적 역할 속에서의 소외감은 조금씩 감정을 마모시키고, 그 자리에 서서히 분노가 쌓여간다. 그런데 그 분노는 대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어느새 우리 내면에 눌려 잠들어버린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영화 <조커>를 떠올렸다.

영화 <조커>는 결코 유쾌한 영화가 아니다. 보는 내내 불편하고, 불안하며, 끝내고 나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 폭력적인 이야기 속에서 어떠한 깊은 감정적 공감을 경험하게 된다. 때로는 주인공인 아서 플렉, 즉 조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그의 분노를 이해하고, 그의 눈물을 함께 따라가기도 한다. 왜 우리는 조커에게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극중 아서 플렉은 희극인이 되고 싶어 한다. 누군가를 웃기고,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잔인하다. 그는 자신이 웃음을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조롱당하며, 점점 더 철저히 고립되어 간다. 병원 치료는 중단되고, 약도 끊긴다. 자신을 위로하던 존재조차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는 철저히 혼자가 된다. 그가 처음 폭력을 저지르는 장면은 지하철에서다. 자신을 괴롭히던 남성 셋에게 총을 쏘는 그 장면은 단순한 자극적 장면이 아니다. 그 순간 관객은 이상하게도 공포보다는 해방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즉, “저럴 만도 하지”라는 생각이 불쑥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난다. 왜일까?

그건 영화가 아서의 고통을 너무도 촘촘히, 그리고 천천히 쌓아올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좌절을 알고 있고, 그의 침묵 뒤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숨겨져 있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아서가 기괴한 웃음을 처음 터뜨릴 때, 우리는 그동안 지어왔던 아서의 웃음은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다. 그는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은 병적인 증상이자 슬픔의 다른 얼굴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폭력의 도덕적 판단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그 폭력이 나오기까지의 감정적 경로를 따라가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관객은 조커의 감정 곁에 서 있게 된다. 그의 분노는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무관심과 차가운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경쟁과 감정 억압의 시스템 속에서 돌아간다. 우리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감정을 통제하는 훈련을 자신도 모르게 받아왔다. 화를 내면 미성숙해 보이고, 속상해하면 예민하다고 여겨진다 말하는 사회. 그렇게 억압된 감정들은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어느 순간에는 방향을 잃은 분노로 폭발하게 된다. 스트레스 해소방, 사이코 스릴러 영화의 인기, 타인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결국, ‘분노’를 해소할 통로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영화 <조커>는 그런 시대적 감정의 집합체다. 우리는 그 영화에서 단순한 ‘범죄자’나 ‘악당’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을 본다.

그래서 우리는 조커를 보며 불편해하면서도,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한다. 그에게 분노할 수도, 동정할 수도 없으면서도 이상하게 응원하게 되는 감정. 그것은 아서의 고통이 우리 삶의 어디쯤에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기 때문 아닐까. 물론, 영화 속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폭력의 배경에 깔린 감정과 맥락을 들여다보는 것은 필요하다. <조커>는 그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괜찮냐고.
어쩌면 우리는 조커에게 공감한 것이 아니라, 조커를 통해 자신을 본 것은 아닐까. 그 감정이 두렵고, 낯설고, 슬퍼서, 그를 보며 울게 되는 건 아닐까. 영화 <조커>는 단지 폭력을 묘사한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폭력 이전의 분노, 그 분노 이전의 외로움, 그리고 그 외로움조차 외면받는 현대인의 초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거울이고, 우린 이제 그 거울을 감상했다.
거울 앞에 선 우리는, 이제 어떤 얼굴로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