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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피겨스케이팅 선수 유망주였다가 다리를 다쳐 한순간에 꿈을 잃어버린 ‘나나’. 엘리트에 상하이 금융계에서 일하지만 매일매일을 열심히 사는 것에 지친 ‘하오펑’. 태어난 고향에서 하릴없이 살다 문득 다른 세상에선 살아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은 ‘샤오’.


이 세 명의 청춘은 복합적인 정체성을 품은, 바라만 봐도 건너갈 수 없는 경계를 품은 ‘연변’에서 7일을 함께 보낸다.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을 연출한 감독 '안소니 첸'의 전작을 본 적은 없다. 검색해 보니 싱가포르 감독으로, 전작이 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따뜻한 기후에 익숙했던 그가 자신의 고향과는 다른 어느 추운 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의 첫 장면은 강의 얼음을 깨는 장면이다. ‘얼음’은 차갑다. 그러나 유동적이다. 깨끗해 보이지만, 주변의 변화에 민감하게 흔들리는 청춘을 얼핏 닮아있다. 가장 추운 연변에서 얼음을 가지고 감독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것도 가장 뜨거울 수 있는 청춘을 데리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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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에서 우연히 만난 '나나'와 '하오펑'

 

 

그러나 영화가 그리는 청춘은 뜨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파사삭 식어버린 무언가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미래에 시시각각 대처하기가 빠듯해 포기하고 이를 자신의 무능으로 받아들이며, 느슨한 연대라는 미명 아래 가장 인간다운 접촉을 잃어버린 청춘들의 현재는 차갑게 식어버린 무언가이다.


흘러야 하는 청춘이 고여있다. <브레이킹 아이스>가 보여주는 청춘의 현재이다. 사실상 너무 아름다워 보이는 게 아쉽긴 했지만, 그 정서만큼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아니면 정서가 너무 사실적이기에 몇 겹의 포장을 덧대야만 했었을까? 나나, 하오펑, 샤오의 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진다.


늘 낯선 곳에서의 불꽃이 그렇듯, 나나와 하오펑은 서로에게 끌린다. 나나는 연변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현지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에 나나는 딱히 사명감 같은 없다. 하루하루 시간을 지연시키는 용도로 가이드일을 할 뿐이다.

 

나나의 친구 샤오는 연변에서 이모네 식당에서 일을 도와주며 지내고 있다. 초등학생 조카와 같이 누워서 일상을 보내는 샤오는 시간을 지연시키는 쪽보다는 시간을 자각하지 못하는 쪽에 가깝다. 하오펑은 지인 결혼식에 참가했다 나나를 만나고 우연히 연변에 더 눌러앉는다. 하루하루 시간에 쫓겨 사는 인물이다.


그 7일의 시간 동안 셋은 시간을 괘념치 않고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매일매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사랑을 한다. 그래도 청춘에게 유일한 특권이라 한다면 ‘시간’ 일 것이다. 시간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다. 그걸 낭비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나날이 청춘일 수도 있다.

 

책임질 누군가가 없는 자유로움이 확실히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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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시선을 가진 '샤오'와 '나나'

 

 

그땐 그렇다. 왜 자기 자신도 책임지기가 그렇게 버거운 걸까. 돌이켜보면 책임질 인간이 자기 자신 뿐이라는 건 얼마나 축복인데, 우리는 그 청춘에 오롯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혹은 외면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현실의 벽,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계획대로 인생은 흘러가지 않고 끝내지 못하는 인생 앞에서 청춘은 무지에서 오는 희망을 붙들 뿐이다.


그들도 그랬을 것이다. 이유 없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잠이 쏟아지고, 소리를 지르고 싶고. 솔직히 100분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 뭐가 나올까, 나올까 하면서 조마조마하며 봤던 100분은 결국 모호한 채로 끝났다. 그 모호함이 영화의 한 줄기라면, 그 체험을 이 영화는 고스란히 하게 해 줬다고 장담한다. 그리고 그 모호함 또한 청춘의 한 모습이라면,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이런 시간이 없었으면 생각해보지 못했을 터. 숱한 예술에서 청춘을 그리지만 개인적으로 청춘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의 한 때일 뿐. 그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한 게 아쉬워 자꾸 돌아보는 과거의 영광 같은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렇게 아름답지도, 그렇게 슬프지도 않은 거라 생각한다.


시간이 된다면 조금은 스크린과 거리가 먼 객석에서 영화를 관조해보고 싶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마주해보고 싶다. 내 안의 뜨뜻한 무언가가 무엇일까. 놓치지 않고 목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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