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그림책만들기 내부이미지.png

 

 

몇 년 전부터인가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그림과 글이 결합한 창작물’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림에 소질이 있다거나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글만 빽빽이 적힌 화면보다는 그림이 적절히 섞인 것이 독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추어준다면,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어릴 적부터 해왔던 글쓰기와는 상당히 다른 성격의 창작을 해보고 싶었다.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고, 그림과 글이 적절히 결합된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나와 비슷한 고민에 처해있는 사람이리라 감히 단언한다. 당신도 그림책 만들기라는 큰 산 앞에서 고민하고 있겠지. 마치 나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드는 고민거리로는 무엇이 있을까. <그림책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만들기 7단계>는 어떤 해결책으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줄까. 이야기 해보고 싶은 주제는 너무도 많지만, 대표적인 고민거리 세 가지 정도를 나누어볼 수 있을 것 같다.

 

 

 

고민거리 하나,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데 어떡하지?”


 

(질문) 그림책은 그림이 전부가 아니란 것도 알지만,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에게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초등학생 이후로는 취미로도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는 데다, 복잡한 형상이나 미묘한 감정도 그림으로 표현해야 한다니. 졸라맨 형태의 사람만 등장하는 그림을 그릴 수도 없고 말이다.

 

(해결책) 문외한들의 이러한 고민을 이미 짐작한 듯이, 책의 서두에서는 글과 그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글과 그림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그중 인상 깊게 남은 사례가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였다.

 

제목에서 언급되는 ‘괴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어떠한 대상을 모티브로 하여 무시무시한 느낌을 유도해야 할지 눈앞이 막막할 것이다. 또한 “괴물이 무시무시하다”라는 특징에 대해 사람마다 정의하는 바가 다르니, 내가 그린 괴물의 무시무시한 정도가 누군가에게는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을 괴물이라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고. 만약 그림책에 오직 그림만 존재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일이다.

 

그러나 글과 그림의 관계 중 하나로서 ‘상호 보완’이 있다는 것이 걱정을 씻어내준다. 어떻게 하면 되냐고? 내가 생각하는 괴물의 모습을 그리고, 그것을 향해 “괴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괴물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들이 나의 괴물 그림 하나로 정리될 것이다. 그들의 시각적 기대치를 모두 맞추지 못하더라도, 설령 내 괴물이 어리숙해 보이거나 그 이상의 존재처럼 위엄있어 보이더라도 아무튼 독자들은 그것을 ‘괴물’이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그림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글이 대신 보충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 그러므로 그림이 미숙하다 하여 그림책을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그림의 보완재로서 글이 있고, 또한 그림책이 오로지 그림 실력의 출중함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가벼운 말장난, 혹은 간단한 조형 요소의 배치만으로도 그림책은 만들어질 수 있다. 화가만 그림책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

 

 

 

고민거리 둘, “나는 창의력이 부족한데 어떡하지?”


 

(질문)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서 포기할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창의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림책을 만들겠는가. 그다지 재치 있는 사람도 못 되는데 말이다.

 

(해결책) 걱정 마시라. 누구나 영점에서 시작하기 마련이니까. 책에서는 그림책의 소재가 다양한 원천에서 얻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적인 문제에서 영감이 떠오를 수도 있고, 깊은 심연의 이야기가 끄집어내지기도 하며, 혹은 다분히 일상적인 경험에서도 아이디어는 발견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책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해주었다. 일기 쓰기, 영화나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 접하기, 전시 관람하기, 대화하기 등. 몇 가지 따라 해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소재가 이미 내 삶에 존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창의성이 없으니 창작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걱정도 편견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부적인 내용을 지어가는 것은 창의력을 요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기초적인 아이디어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미 창작자로서 적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 있다. 그 새싹을 발견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거기서부터 조금씩 가지를 쳐가는 것이다.

 

 

 

고민거리 셋, “그림책만의 매력은 무엇이지?”


 

(질문) 그렇다면 왜 굳이 그림책을 만들어야 할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그림책만의 특징은 무엇이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해결책) 여기에 대한 답변은 “그림책의 물성을 이해해 보라”는 조언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림책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입체적 구조’ 덕분에 다양한 연출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물리적 구조를 잘 활용한 그림책일수록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표지와 뒤표지를 이어 하나의 그림을 만들 수도 있고, 가로보다 세로 길이가 높은 그림책은 기린과 같이 길쭉한 대상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 오히려 형식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창작자도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으며, 독자 또한 오감으로 읽으며 더욱 풍부한 독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이제, 창작의 시작으로


 

그림책을 만드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질문 세 가지를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명료해졌다. 나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 지금껏 해보지 못한 형태의 창작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먹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그림책 하나를 완성해 보자고. 그러니 지금부터 이 책을 더욱 가까이 하자고.

 

그리고 나처럼 창작의 욕구를 느껴왔던 사람이 있다면, 그림과 글로 풍부한 이야기를 전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권하고 싶다. 차근차근 7단계를 밟아보자고, 그리고 언제가 됐든 끝을 지어 보자고. 가보지 않는 길을 한계라 할 수 없듯이, 도전의 끝에서 새로운 시야가 펼쳐질 것이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