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틔움_포스터.png

 

 

아트인사이트는 글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포용하는 플랫폼이다. 예술가이자, 예술 애호가이기도 한 나는, 글을 기고할 때 외에도 아트인사이트를 자주 찾는다. <작품기고>란에 올라오는 작품 또한 종종 감상하곤 했는데, 이번 기획 전시 소식을 듣고, 온라인에서 접한 작품을 한 공간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한달음에 달려간 기획전은 예상보다도 더 좋았다. 소규모의 전시를 생각했는데, 공간을 알차게 채워주는 구성 덕분에 꽤 오랜 시간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번 전시명은 《틔움》이다. 그 주제에 걸맞게, Mia(이서연), 나른(장의신), 대성(정주희), 유사사(오예찬), 은유(박가은) 등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이나 작품 기고로 활동해 온 5인의 작가들이 각자의 예술적 언어로 창작의 싹을 '틔워'냈다. 스타일은 모두 달랐지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힘이 실려 있어, 천천히 음미하게 되었다. 전시는 크게 두 섹션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작품 자체를 전시한 공간, 또 하나는 굿즈 판매 공간이었다. 모든 작품이 인상 깊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은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일러스트레이터 대성의 ‘꼬임’ 시리즈


 

나는 시선과 각도를 달리해 일상 속 이야기를 일러스트로 풀어낸 일러스트레이터 대성의 재치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IMG_1446.jpg

 

 

‘목디스크’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셔츠를 입고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는 인물을 묘사한다. 어쩐지, 장시간 작업에 시달리는 직장인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굽이굽이 허공을 떠다니는 긴 목은 잔뜩 움츠려 경직되어 있을 현실과는 달리 자유로워 보여 묘한 해방감을 준다. 기린처럼 긴 목에 겨우 붙어있는 머리는 마치 램프에서 늘어져 나오는 램프 요정 ‘지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작품 속 ‘지니’는 어쩌면 하루빨리 업무가 끝나기를 바라며, 뻐근한 근육들이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연하게 목을 늘려 풀어내는 상상을 하며.

 

 

IMG_1447.jpg

 

 

이 작품 또한 흥미롭다. 달걀로 보이는 물체를 깼더니 시계가 주욱 흘러나온다. 사뭇 화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마치 시간이 나를 채근하는 듯하다. 점심 도시락을 쌀 때가 생각났다. 아무리 간단한 요리라도 바쁜 아침엔 정신이 없다. 아침도 챙겨 먹어야 하고, 썬크림도 발라야 하고, 양말도 신어야 하는데, 달걀 프라이 하나만 싸가려 해도, 평소 아침 루틴에서 몇 가지 동작이 더 추가된다. 올리브유를 두르고, 밥을 데우고, 수저 젓가락을 챙기고…. 물론, 달걀을 깨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달걀을 깼는데 저런 표정을 한 시계가 나오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무섭기도 하겠지만, 바빠서 무서워할 여유도 없을 것 같다. 할 일이 많을 때 우리는 스스로 시계가 되어 되뇐다. "바쁘다 바빠.'

 

 

 

북아티스트 MIA의 《The blue: bench(벤치, 슬픔에 관하여)》



IMG_1427.jpg

 

 

보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가는 구성의 다른 책과 다르게, 이 책은 독자가 자유롭게 장면을 조합할 수 있도록 프렌치도어 구조로 제작되었다. 왼 페이지는 동사, 오른쪽 페이지는 부사어가 적혀있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마음이 가는 대로 페이지를 휘리릭 넘기며 가능한 장면을 조합하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조합된 문장의 의미를 헤아려보고, 그림과 연결지어보며, 벤치에 앉아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추측해보았다. 긴 벤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벤치는 한쪽 귀퉁이만 채워지기도 하며, 때론 다른 계절에 속해있는 이들, 연령대가 다른 이들, 심지어 동물이나 새들로 가득 차기도 했다.

 

 

IMG_1884.jpg


 

나는 집에서도 벤치에서 쉬어가는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결국 책을 구매했다. 새파란 배경 위에 벤치가 새겨진 표지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손으로 어루만져 보면, 실제 나무 벤치의 결처럼 울퉁불퉁한 질감이 느껴졌다. 귀히 데려온 나의 파란 벤치는 문득 그곳에 앉아 쉬어가고 싶을 때마다 펼쳐볼 예정이다.

 


IMG_1885.jpg

 

 

'책' 외에도 일러스트 엽서를 하나 구입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은유의 '꽃 한 송이' 엽서다. 전시를 함께 본 엄마의 전적인 지지로 구입하게 되었는데, 엄마와 나는 이 작품을 '사막에 핀 꽃'이라 부르곤 한다. 고운 모래의 질감이 살아있는 사막에 핀 꽃 한 송이가 엄마는 그렇게도 예뻐 보였다고 한다. 우리는 그 엽서를 냉장고에 붙여 두었다. 하루를 시작하며 아침 빵을 꺼내러, 기나긴 하루를 마무리하며 저녁 재료를 꺼내러, 모처럼 휴일에 간식을 즐기러, 냉장고 앞에 갈 때마다 꽃 한 송이를 바라본다. 각기 다른 마음으로 둔 시선일 테지만, 항시 그 꽃 한 송이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텅 빈 마음에는 온기를 채워주고, 넘쳐나는 마음은 조용히 꽃잎으로 감싸안아 준다.

 

아트인사이트 기획전 《틔움》은 전시, 판매 섹션의 관람을 하나로 연결시켜주었다.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과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게 될 때, 자연스레 굿즈 구매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

 

 

IMG_1442.jpg

 

 

명함 카드에 적힌 작가의 문장을 고르게 하며, 그 문장을 쓴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게 하는 방식도 인상 깊었다. 이 밖에도 마음에 드는 작품의 경매에도 참여할 수 있었고, 오픈 채팅방을 통해 아티스트에게 직접 응원의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었다. 전시 관람의 기억은 당일 구매한 굿즈에, 그리고 나의 일상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성수동에서 시작된,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시작되었던 이야기가 나의 삶 속으로 확장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관람은 함께했던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더욱 소중했다. 최근 본 전시 중 가장 할 말이 많았던 전시였다. 보통 할 말이 많다는 것은 아쉬움이 많았거나, 혹은 정말 좋았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이번 전시는 단연코 후자였다.

 

동시다발적으로 싹을 틔워내는 씨앗들을 어지럽지 않게,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소개해 주었기에 더욱 편안한 시간이었다.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간 관람객들에게 앞으로도 이들이 ‘틔워낼’ 또 다른 이야기에도 주목해달라 당부하고 싶다. 한 번 틔워낸 싹은, 각자의 속도로 계속 자라나기 마련이니까.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