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음악의 언어성을 통해 보여주는, '나'에서 '우리'로 - 뮤지컬 '고스트 베이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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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고스트 베이커리>는 한국 창작 뮤지컬계에서 주목하는 콤비 ‘윌휴(윌 애런슨과 박천휴)’의 세 번째 신작이다. 2016년 초연한 이래 많은 뮤지컬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그들의 첫 번째 작품이었고, 이후 2024년 상반기 성공리에 초연을 마친 뮤지컬 <일 테노레>가 두 번째 작품이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2024년 하반기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되는 쾌거를 이루어내면서 윌휴는 2024년 자신들의 공연이 국내외 통틀어 모두 상연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었다.
본 작품은 나영모 과자점 아르바이트생 순희가 최고의 베이커가 되고 싶다는 꿈일 이루기 위한 좌충우돌 성장기를 그린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이다. 사회성은 없고, 빵에 대한 지식과 자부심만 있던 순희는 나영모 과자점에서 결국 해고되고, 이후 언니 순영에게 돈을 빌려 한 과자점을 인수한다. 그런데 그 과자점에는 지박령 유령이 있었고, 유령은 순희를 내쫓고자 하지만 순희는 결국 유령과의 계약을 통해 ‘고스트 베이커리’라는 과자점을 낸다. 순희는 유령이 인간 앙리이던 시절 만든 레시피를 기반으로 빵을 만들고, 앙리와 나영모 사이에 있었던 사건을 알게 된다. 순희가 앙리와 연관 있음을 눈치챈 나영모는 순희의 영업을 방해하고, 이를 위한 돌파구로 순희는 앙리와 함께 당시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어서 판매하기 시작한다. 역경을 헤치며 순희와 유령은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나, 원한이 풀린 유령은 점차 순희 앞에 나타날 수 없게 되고 결국 고스트 베이커리를 떠난다. 혼자 남겨진 순희는 슬퍼하지만, 그럼에도 고스트 베이커리를 지키며 자신의 꿈을 위해 나아가고, 그 곁에는 영수가 있다.
윌휴 콤비의 작품에는 세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현악기 중심의 음악,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서정적인 분위기. 이 기제는 뮤지컬 <고스트 베이커리>에도 작용된다. 첫 오프닝부터 현악기가 강조된 선율이 흘러나오며, 대부분의 넘버가 현악기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간중간 피아노 선율로 분위기를 환기한다. 윌휴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는 극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리고 작품의 결말은 예외 없이 유령이 떠남으로써 순희와 유령 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끝난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국내에서 정부의 분식장려운동으로 빵의 보급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뮤지컬 <고스트 베이커리>에는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한 ‘빵 문화’가 한국의 역사 속에서 어떤 흐름을 거치면 발전해 왔는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주인공 순희와 유령을 괴롭히는 나영모가 운영하는 ‘나영모 과자점’은 ‘김영모 과자점’을 연상케 하고, 유령과 나영모의 과거 관계가 전개될 때 언급되는, 당시 제빵사들의 끈끈했던 커뮤니티는 ‘한울회(한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임)’를 떠올리게 한다.** 이 배경은 빵을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자 하는 순희를 필두로 한 당대 베이커들의 꿈을 더욱 강조한다.
‘베이커(리)’와 ‘베이킹’이 극의 소재인 만큼, 넘버의 가사에는 빵과 관련된 단어가 필연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이런 지점에서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꿈빛 파티시엘>이 생각나기도 하며, 다소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윌휴는 음악의 언어성을 강조하며 이것을 상당히 무마시킨다. 윌휴는 자신의 작품에서 항상 한두 개 넘버를 지속적으로 리프라이즈(reprise) 함으로써 극의 주제와 멜로디를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물론, 다른 뮤지컬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나, 윌휴는 그것을 더욱 강조하며, 주인공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f)를 계속해서 동일한 멜로디로, 다른 상황에서 리프라이즈함으로써 관객에게 킬링넘버 보다는 주인공의 라이트모티프를 각인시킨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리프라이즈는 전작인 <일 테노레>와 분명히 달랐다. <일 테노레>의 라이트모티프는 넘버 ‘꿈의 무게’로 주인공인 윤이선에게만 부여되었다. 그러나 뮤지컬 <고스트 베이커리>는 순희에게서 시작되는 “밀가루, 계란과 설탕”과 “나는 될 거야 최고의 베이커”의 가사로 시작하는 두 넘버를 라이트모티프로 삼는다. 그리고 이 라이트모티프가 순희에게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 국내 최고의 베이커였던 유령, 그리고 그런 유령을 시기하고 순희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제과제빵사 나영모까지로 확장된다. 이 라이트모티프의 확장이 바로 본 공연의 백미다.
확장성은 노래뿐 아니라 대사에서도 진행된다. 대개 대학로에서 진행되는 한국 창작뮤지컬의 경우, 개인이 지닌 고민을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하며 해결하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 한국 뮤지컬에서는 보통 ‘개인(주인공)’이 강조되며, 환경의 변화나 누군가의 한마디 조언이나 따끔한 일침으로 인물의 사고와 행동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뮤지컬 <고스트 베이커리>는 소통을 기반으로 한 유대감과 관계를 강조한다. 순희는 자신의 고민과 문제를 언니와 유령에게 이야기하고, 유령은 자신의 과거를 순희와 공유하며 자신의 원한을 풀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보이는 순희의 모습은 처음의 당차고 주체적이었던 것과 괴리감을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순희는 남들과 소통하며 함께 해결할 줄 아는 강한 인물이다. 혼자서 모든 짐을 지고 혼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앞을 향해 가며 ‘성숙해지는 한 인간’이 된다.
윌휴는 주인공을 통해서만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 극 중 불필요한 인물처럼 느껴지는 영수는 윌휴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매개체다. 영수의 솔로 넘버 ‘나 같은 사람’은 극 중 유일하게 R&B로 구성되어 있다. 영수는 순희와 유령 중심으로 흘러가는 중심 줄거리에 적극적으로 들어오지 않고 맴도는 인물인 것이 그들과는 다른 선율의 음악으로 강조된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영수는 잘난 것도 없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인물이다. 이 인물은 결국 여자 친구한테도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로 차이고, 연애는 자신에게 사치라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따뜻한 마음과 의지가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의 넘버는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해진 이 사회 속, 사랑마저도 재화 가치로 여겨지는 작금의 시대에 일침을 가한다. 더불어 순희의 넘버 ‘한 사람’이 영수의 솔로 넘버로 확장된 것으로, 이 넘버 이후 영수는 순희에 대한 마음(사랑)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다소 갑작스러워 보이는 이 전개는 순희에서 영수로 확장되는 음악의 언어성을 통해, 순희가 암암리에 영수에게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대단한 인물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무대의 시간적 배경을 생각했을 때, 순희라는 인물은 독특하다. 머리 스타일은 산만하고, 행동은 선머슴 같으며 연애와 결혼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이런 그에게 순영은 “좋은 사람 만나서 성숙해져”, “어서 결혼해야지” 등의 말을 한다. 순영의 대사는 현재 젠더적 감수성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시대착오적인 말이 된다. 그러나, 인물이 발 딛고 서 있는 환경을 생각하면 순영의 생각은 자연스럽다. 작품은 단순히 베이커와 빵에 대한 이야기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순영과 순희의 대화, 그리고 그들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근현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바뀌는 한국인의 사고를 은연중에 보여준다.
작품은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표상을 함께 담는다. 더불어 무대 장치와 연출에도 힘을 들이고 있다. 윌휴가 극작과 작곡뿐 아니라 연출까지 신경을 쓰게 되면서 대사와 노래의 변화에 맞춰 매우 효과적으로 무대가 바뀌고, 인물들의 움직임이 만들어졌다. 최소한의 무대 장치 변경으로 가게 밖에서 안으로 전환되고, 나영모 과자점에서 순희와 유령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고스트 베이커리로 바뀌는 등의 변화가 일어난다. 더불어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유령을 표현한 방식이다. 인간이 아닌, 유령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순희 눈에만 보이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윌휴는 음향과 조명을 선택했다. 유령이 보이지 않는 상태일 때는 음향에 에코가 많이 들어가고, 조명이 초록색이다. 순희에게 보이는 순간에는 음향도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사운드가 송출되고 조명 또한 흰색으로 전환된다.
윌휴는 뮤지컬의 어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창작진이다. 대극장이 아닌 중극장 무대에서도 효율적으로 무대 배치와 동선 구성을 하며, 대사와 노래의 시간 구성, 대사와 노래 간의 연결 관계, 넘버의 기능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특히, 목적 없이 그냥 전개되는 넘버가 없다. 모든 넘버는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넘버는 대립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거나, 인물의 속마음을 드러내거나, 시간을 확장하는 등 뮤지컬에서만 가능한 기능을 통해 효과적인 극 전개의 일등 공신이 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음악의 언어에 무게 중심을 두고, 리프라이즈 기법을 통해 뮤지컬이 ‘뮤지컬(musical theatre)’인 이유를 명백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윌휴가 시간을 그려낸 방식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시간이란 공간과 함께 인간의 삶에서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시간을 ‘숫자’로 인식하거나 또는 분위기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 작품은 ‘노래를 통해 시간을 인식하기’라는 새로우면서도 낭만적인, 음악극인 뮤지컬에 딱 어울리는 방안을 만들어냈다. ‘고스트 베이커리’ 공간은 유령이 인간 앙리이던 시절 베이커리 오픈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면서 시간이 멈춘 곳이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이에 순희는 빵을 굽는 데 필요한 시간을 재기 위해서 LP판을 선택한다. 유령이 떠나고 나서 멈췄던 시간이 흐르고, 시간의 흐름을 통해 순희는 유령이 떠났음을 알게 된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시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는 발상. 이것이 윌휴가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통해,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미적 감수성의 집약체가 아닐까.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 윌휴가 참여하기는 했지만, 박천휴가 극본이 아니라 작사에만 참여했기 때문에, 본고에서 말하는 윌휴 작품은 박천휴가 극작으로, 윌 애런슨이 작곡으로 참여한 작품으로 한정한다.
** 한국의 빵 지도를 그려온 조성용(한국 최초의 빵집 이성당 대표), 김영모(김영모 과자점), 임영진(성심당) 등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한울회를 통해 유행하는 빵 정보를 나누고, 빵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며, 해외로 ‘빵지 순례’를 다닐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김소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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