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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나는 피아노를 생각할 때마다 전봉건의 시 <피아노>를 떠올린다. 음악에서 시가 연유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음악을 빚어내는 악기들의 소리가 사뭇 시적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피아노가 그 자체로 '시'라는 기분을 느낀 게 처음이어서 기억하고 있다.

 

쇼팽 이야기에 앞서 이 시를 언급한 이유는 쇼팽이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하고, 그리고 이번에 정말로 그런 '시'의 공연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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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편지콘서트 '쇼팽, 블루노트'는 피아니스트 '쇼팽'의 일생과 그의 연인이었던 소설가 '조르주 상드'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공연이다. 쇼팽 역의 '류영빈' 배우와 상드 역의 '이다해' 배우(상드는 쇼팽의 일생에 대한 해설자로도 등장한다.)가 앞에서 연기를 하고 뒤에서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피오트르 쿠프카'가 쇼팽의 피아곡을 연주하는 독특한 공연이다. 연주가 노래 연기를 받쳐주는 뮤지컬도 아니고 연주만 들어야 하는 클래식 공연도 아닌. 이런 공연 방식은 산울림 편지콘서트가 클래식 라이브 연주와 드라마를 통해 불멸의 음악가들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하는 취지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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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서 쇼팽의 행적은 이러하다.

 

폴란드 → 오스트리아 빈 → 프랑스 파리 → 스페인 마요르카 → 프랑스 → 영국

 

빈 유학 도중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쇼팽은 고향 폴란드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참전하고자 했지만 병약한 기질과 폐결핵 때문에 그는 빈에 남게 되었고, 절망에 잠겼다. 그러다 찾아간 곳이 파리였다. 당시 프랑스엔 모든 자유가 가능했고 따라서 모든 예술이 존재했다. 동년배였던 클래식계의 아이돌 '리스트'에 비해 쇼팽은 낯가림이 심하고 소극적인 편이었지만, 파리에서 열심히 피아노곡을 만들고 간혹 연주회를 열기도 한다.

 

그러다 만난 게 상드였다. 자유를 추구하며 진정한 사랑을 쫓아다닌 조르주 상드. 그와 사랑에 빠진 상드는 마요르카 섬에서 그를 간호하면서 예술을 해나간다. 상드와의 9년은 그의 영혼이 피아노에 깊게 깃들었던 시기이자 그들의 사랑이 꽃피웠던 시기였다. 그러나 예술가였던 그들은, 바람이 서로 뒤섞여 흩어지듯이 이별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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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곡은 이러하다.

 

01. Polonaise Op.40 No 1 in A Major 'Military'

02. Waltz No.9 in A flat Major Op. posth. 69-1

03. Etude in c minor Op.10 No.12 (Revolution)

04. Waltz No.4 in F Major Op.34 mo.3

05. Ballade No.3 in A flat Major, Op,47

06. Prelude in D flat Major Op.28, No.15

07. Nocturne No.20 in c sharp minor, Op. posth

08. Mazurka in a minor Op.17 No.4

09. Nocturnes, Op.9 No.2 in E flat Major

 

극이 진행되는 동안 연기와 연주가 번갈아 진행되는데, 배우들의 연기가 쇼팽 인생의 전개를 보여준다면, 파트가 끝날 때마다 이어지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쇼팽 예술의 전진을 보여주는 듯했다.

 

배우들의 엄청난 대사량과 몰입하게 되는 방백, 한정된 공간에서도 일생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실감나는 연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면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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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연주자, 정확히는 그의 손을 집중해서 보기도 했다. 그의 손은 어떨 땐 벼락처럼, 어떨 땐 파도처럼, 어떨 땐 가느다란 빗줄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인간이 가진 무형의 영혼이 피아노를 통해 그런 변형을 거쳐가며 결국 '감정'을 빚어내고 있다고 느꼈다.

 

한 연주곡 안에서도 강약 조절과 반복, 변주가 있다는 걸 눈으로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또한 연주자가 쇼팽과 쇼팽의 음악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말이 아닌 소리만으로도 감정이 전해진다는 걸 이 날 깨달았는데, 그때 느꼈던 감정은 그 자체로 '시' 같았다. 특히나 마지막 연주곡인 녹턴은 그의 삶을 아우르는 테마처럼 들려서 기존에 들은 것과는 다르게 들렸다. 결국 쇼팽이 피아노 위에 놓은 손으로 거침없고 또 섬세한 연주를 하며 빚어내려던 것은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짧은 극으로 쇼팽을 전부 알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심정으로 이런 대단한 음악들을 작곡할 수 있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피아노의 시적인 소리를 통해 인생이라는 예술을 엿볼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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