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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당신의 크리스마스는 어떤 모습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데이트를 즐기는가, 예배에 참석하는가, 집에서 여유로운 휴일을 즐기는가.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모습이 어떠하든 크리스마스라는 휴일이 우리의 마음을 간질이는 것은 동일하다. 빨강과 초록으로 단장한 거리는 일상에 특별함을 더한다. 크리스마스는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도 아닌데, 모두가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다.

 

나 역시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다. 여름부터 캐롤을 들으며 겨울 공기를 기다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첫눈을 맞을 수 있길 기대하고,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할 지 몇 달 전부터 약속을 잡는다. 어글리 스웨터 대회를 열고, 애정하는 베이크샵에서 케이크를 주문하고, 올해 연말에는 무슨 공연을 볼 지 고민한다.

 

‘크리스마스니까’라는 무적의 핑계와 함께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벌인다. 포토존을 만들고 싶다고 우드락과 오브제를 디자인하여 주문하고, 웃긴 행사들을 만든다. 그것들이 전혀 돈이 되지 않는데도 재미있으니까 한다. 돈이 되어야만 하나? 웃을 수 있으면 되는거지. 여가라는 것이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한다.

 

그래, 결국 이 이야기를 하려고 빙빙 돌았다. 나의 연말은 공연으로 완성된다. 바쁜 학기를 보내고 종강할 때, 내게 남겨진 한 해의 일주일. 그 때 어떤 공연을 보는지가 나의 홀리데이를 완성시킨다. 시스템에 맞춰진 기계가 된 것 같다고 느낄 때, 공연이 나다움을 유지시켜 준다. 관객이 되는 일은 나의 정체성이 담긴 일이다.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오늘 진짜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연말을 따듯하게 만들 공연을 한 편 소개하고 싶다는 것. 내게 너무 소중해서, 너무 자주 꺼내보면 기억이 닳을까봐 사진도 노래도 구태여 꺼내보지 않을 정도로 애정하는 공연이다. 트렁크씨어터 프로젝트의 <메리, 크리스, 마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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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극과의 첫 만남은 누군가의 추천 때문이었다. 우린 사전에 일정을 공유한 적이 없었지만, 정말 많은 날 극장에서 마주칠 정도로 취향이 비슷했다. 그런 그가 나의 취향일 것 같다며 알려준 그 공연은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의 <메리, 크리스, 마쓰>였다. ‘OHP 필름과 인형 가지고 하는 거라던데-‘가 내가 들은 공연 정보의 전부였다. 인터파크나 예스24, 멜론티켓도 아니고 플레이티켓에서만 예매할 수 있는 그 공연은 예매할 때부터 마음에 들었다.

 

어린이 관객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릴랙스드 퍼포먼스 회차를 마련하고, 접근성을 지원하며, 자기돌봄안내서까지 마련해놓은 상세 페이지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팀을 설명해놓은 문장을 읽으며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트렁크 가방에 담길 수 있는 콤팩트한 무대를 지향하며 언제, 어디서든 꺼내볼 수 있는 기동성 높은, 지속 가능한 연극에 도전한다. 방 안과 책상 위에 세워질 수 있는 미니어처 무대를 만들고, … 연극이 지니는 대체될 수 없는 고유성에 대해 고민하며 작업의 의미를 찾아나간다.”
 

 

대체 어떤 공연으로 날 놀라게 할까. 예매한 날부터 계속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공연 당일이 되니 솔직히 가기 싫었다. 아침 일찍부터 나와 웰컴대학로 행사의 버스킹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배우를 조금이라도 앞에서 보려고 딱딱한 바닥에 하루 종일 앉아있었다. 그리고 2시간 동안 미친듯이 놀았다. 떼창의 힘을 보여줬다. 공연이 기대되는 것과 별개로 몸이 힘든 걸 어떡해. 그래도 돈이 아까우니까 마로니에 공원에서 혜화동실험지 1번지까지 겨우겨우 걸어갔다.

 

공연을 보고 나서는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난리를 피웠다. 나와 버스킹을 함께 즐기고 다른 공연을 보러 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너도 오늘 이 공연을 봤어야만 한다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아, 그래서 연극이 대체 어떤 내용이냐고. 왜 제목이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메리, 크리스, 마쓰>냐고.

 

우주에서 우연히 만나 마쓰(화성)를 꿈꾸는 우주비행사 메리와 크리스의 이야기를 다룬 인형극이다. 인형을 어떻게 표현하냐고? 배우의 손으로 표현한다. 배우의 손만으로 우주비행사 메리와 크리스의 절절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손으로 연기하는 인형은 표정도 바꿀 수 없고, 움직임도 제한적인데 배우들이 그걸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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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역시 정말 컴팩트하다.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라는 이름 따라 하나의 트렁크에 모든 소품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퍼펫, 미니어처세트, 오버헤드 프로젝터만으로 우주를 표현해낸다. 악사의 라이브 연주는 생동감과 재치를 더한다. 세밀하게 제작된 소품들과 섬세한 조명은 관객들에게 우주 공간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이런 최소한의 구성으로도 감정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은 무대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이 공연이 특히 좋은 건 스토리도 내게 큰 위로를 주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둡고 외로운 시기를 묵묵히 견뎌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 모든 관계를 끊고 싶지만 누군가는 나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공연은 메리와 크리스의 만남을 통해 일상과 사람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공연을 보며 나와 네가 결국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우리는 힘을 얻는다. 그 사실을 극장에서 이룬 느슨한 공동체들과 함께 느낄 때. 연극의 고유성이 더욱 빛난다. 따뜻함이 단순히 스토리의 감동을 넘어, 현장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에너지로 다가온다.

 

그래서 내가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그냥 좋아. 좋다는 데 이유가 필요해? 그냥 모두가 이 공연을 봤으면 좋겠어.” 메리와 크리스가 만나기 전, 홀로 있던 시간을 담은 노래가 스톱모션 영상과 함께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다. 추운 겨울 마음을 녹여줄 따듯한 곡이니 모두에게 추천한다.

 

 

 

 

아. 그리고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의 신작 <쿠키, 앤, 크림>이 오는 20일부터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된다. 트렁크씨어터만의 분위기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기꺼이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떼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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