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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혼자 있어도 밥은 꼭 챙겨 먹는다. 제철 채소를 굳이 사고 제철 과일이 기대하며 그 계절을 기다린다. 그 성향을 쫓아가면 늘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이 있다. 다정함과 정성이 뒤섞여 먹는 이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는 그 밥상. 어린 시절에는 이 시간이 영원하리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이 따뜻함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 알기에 더욱 소중해진다.

 

이번 추석에도 그런 상념을 하며 할머니 댁에 갔다. 보름 넘게 시장을 들락거리며 재료를 씻고 다듬고 얼리고 재운 할머니의 얼굴을 더듬듯 밥을 한술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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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해물탕


 

명절에 할머니 댁에 가면 곰솥에 해물탕과 탕국이 팔팔 끓고 있다. 거대한 냄비를 비우기 위해 모두가 모인 저녁 시간에 해물탕이 등장했다. 그 큰 냄비들이 내게는 명절을 기억하는 메타포같이 느껴진다. 어시장을 얼마나 자주 간 것인지 해물이란 해물은 전부 등장하는 냄비가 마녀의 수프 같다고 생각하곤 했다.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건더기를 보면 늘 웃음이 난다. 적당량 없이 팍팍 넣은 재료와 계속 퍼내는 국자를 보며 소중히 국물을 들이켠다.

 

시원한 국물에 낙지와 전복 한 조각. 이보다 호화스러운 만찬이 있을까?

 

아주 어릴 때는 안에 들어간 해물을 남기기도 하고 배불러요를 외쳤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지금 아니면 절대 먹지 못하는, 본전 없이 정성이 넘치는 이 감사함을 안다. 그저 그릇을 싹 비워 보이며 어린아이처럼 구는 순간만으로 할머니는 환하게 웃어준다. (부족하냐며 솥을 채로 가져오려는 행동이 이어지지만 말이다.)

 

 

 

사랑은 낙지젓갈을 타고


 

할머니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 특산물을 사 오곤 했다. 아마 처음으로 먹은 낙지 젓갈도 어느 지역의 특산물 출신이었을 것이다. 손가락 굵기만 한 낙지가 들어있던 젓갈 통을 금방 비운 기억이 난다. 어린아이가 얼마나 먹겠나 하며 보낸 젓갈을 다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할머니는 매년 젓갈을 보내기 시작했다. 통통한 젓갈이 있다면 사 오기도 하고 생으로 먹기도 아까운 생물을 직접 손질해서까지.

 

할머니의 관심 때문에 낙지 젓갈이 좋았다. 맛있었던 것도 있지만 할머니가 나를 위해 특별 반찬을 계속 보내준다는 것이 특별해진 것 같아서 더 좋았다. 그러던 어느 설날, 반찬을 나눠 담는 할머니를 보다 이 다정함이 내게만 미친 것은 아니란 걸 알았다. 할머니의 레이더는 드넓어서 모두에게 닿았다. 엄마에게는 팥죽과 미역 줄기 무침을, 아빠에게는 고들빼기를, 숙모에게는 탕국을…. 수십 명에 달하는 식솔들에게 음식을 나누는 할머니를 보면서 서운하기는커녕 그 사랑의 크기에 말문이 막혔다.

 

명절을 지내고 나서도 문득 할머니가 보내오는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보며 그 사랑의 크기를 실감한다. 이렇게 큰 사랑을 보내오는 사람에게는 어떤 세계가 있는 걸까 감히 가늠해 보기도 하면서.

 

 

 

어린이용 돼지갈비


 

아주 어릴 때는 집에 어린아이들이 많지 않아서 어른 반찬을 함께 먹었다. 이후 사촌 동생들이 많아지면서 할머니의 밥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돼지갈비가 등장한 것이다. 간장 소스에 자박자박 졸여낸 갈비는 단숨에 어린이 인기 메뉴가 되었다. 식당에 가면 어린이 메뉴가 있는 것처럼 돼지갈비는 절대 빠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이제야 안다. 돼지갈비도 할머니의 반찬들처럼 참 손이 많이 간다는 걸. 핏물을 빼고 배를 갈아 양념을 만들고 재우고 굽는 그 과정을 늘 해왔을 할머니를 생각하면 자주 미안해진다. 그러면서도 어린이 메뉴를 만들어낸 할머니의 생각을 생각하면 또 마음이 따뜻해진다. 손주들 좋아할 음식이 뭘까 하다 내놓은 돼지갈비가 여전히 우리의 추억 음식인 것을 보면 그 감각에 이길 날은 없을 것 같다.

 

밥그릇 옆에 갈비뼈를 쌓으며 쑥쑥 자라난 시간이 할머니의 다정함 덕분임을 알기에 나는 또 할머니에게 아주 미안하고 고마워진다.

   

 

 

할머니들의 대구탕


 

할머니의 재밌는 점은 나름대로 레시피를 업데이트한다는 것이다. 맛이 변화하지는 않지만, 다른 재료를 넣기도 하고 삶아 넣던 것을 구워 넣기도 하는 그녀만 아는 비밀스러운 노력이 있다. 그걸 알게 된 것은 지난 겨울이었다. 갑자기 방문한 나에게 동네 친구들과 레시피를 공유하고 같이 해본다며 대구탕을 내어주었다. 평소와는 다른 채소를 넣었다는데…. 뭔들 맛있었겠지만, 집단지성으로 할머니들이 모여 수다 떠는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그 정성을 원기옥처럼 모으고 모아 명절에 발휘하는 것이었다니! 매해 맛있어지는 음식들에 사랑스러운 연구가 있었다는 사실 덕에 대구탕이 몇 배 더 맛있어지고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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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동네 친구들과 놀러 가면 꼭 제철 재료를 사 오고 맛있다는 반찬이 있으면 매번 맞춤형 반찬을 보내는 이 섬세함은 어디서 샘솟을까. 나는 그 사랑은 보답할 수 있을까. 이제는 그 사랑을 누린 시간만큼 할머니가 사라질까 봐 걱정에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그것이 나의 권리가 아님을. 그 밥상 한 번에 할머니의 노동이 녹아져 있다는 사실이 문득문득 마음을 찌른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할머니에게서 배운 건 맛있는 음식 비결이 아니라 그냥 음식을 나누는 마음. 사랑을 막 퍼주는 마음이었다. 내가, 이 사랑을 먹고 어른이 된 것처럼 이 사랑을 나누는 것이 할머니의 사랑에 응답하는 방법일 테다. 너무 소중해서 영원했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할머니가 그렇다. 하지만, 이 순간이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은 현재의 사랑에 최선을 다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그 세월을 기억하며 오늘도 사랑한다고 할머니에게 말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이기에.

 

 

 

에디터 노현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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