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카프카는 누구의 것일까? - 도서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프라하에서 예루살렘까지, 문학에서 법정까지
글 입력 2024.07.0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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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누구의 것일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이었던 지금의 체코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사용했던 유대인 소설가이자, 시대를 앞서간 천재적 예술 감각으로 독어권의 대문호로 꼽히는 프란츠 카프카. 유명한 작품 ‘변신’의 작가이기도 한 카프카는, 과연 누구의 것일까?


이것은 그가 사후 남긴 문학적 소유권에 대한 흥미진진한 분쟁 이야기이다. 9년에 걸친 소송으로 이어진 이 문화전쟁은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라는 두 국가와 에바 호페라는 개인이 참여한 3파전의 양상을 띤다.


 

내 마지막 부탁입니다. 내가 남기고 가는 것 중에 ... 공책과 원고와 편지, 그리고 스케치 등등은, 읽지 말고 남김없이 불태워 없애주기 바랍니다.


- 프란츠 카프카

 


모든 사건은 프란츠 카프카의 유언이 지켜지지 못하면서 시작된다. 카프카가 1924년에 41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폐결핵으로 사망했을 때, 그의 가장 친한 친구아지 옹호자였던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마지막 지시에 순순히 응하지 못했다. 그것은 남겨진 원고들, 일기들, 편지들을 읽지 맑고 태워 없애라는 내용의 지시였다.


브로트는 지시에 응하는 대신 원고들을 구출했고, 카프카를 가장 탁월한 선견지명이 있었던 20세기 기록자로 받드는 카프카의 정전화 작업에 본인의 여생을 바쳤다. 브로트가 1968년에 텔아비브에서 사망했을 때, 이 원고들은 그의 비서이자 그가 신뢰하는 친구였던 에스테르 호페에게, 바로 에바의 모친에게 상속되었다.


에스테르 호페는 사후 자신의 두 딸에게 브로트와 카프카의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긴다. 하지만 2007년, 이스라엘 당국에서 텔아비브에 사는 호페의 두 딸들 루트와 에바에게 카프카와 브로트의 원고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하며 ‘카프카’의 소유권 문제는 미궁 속으로 빠진다.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은 브로트가 에스테르 호페에게 본인의 유산을 상속한 것은 증여가 아닌 신탁이었으며, 본인의 유산을 어떤 기관에 어떻게 넘길지에 대한 선택권을 주었을 뿐 거기에 특정한 개인에게 – 본인의 두 딸들에게 – 물려줄 권한까지는 주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측은 카프카를 ‘유대어를 사용하지 않은 유대인 작가’로 정의하려 한다. 카프카의 연인,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치에 의해 희생된 사실을 열거하며 독일 측에 카프카 문서의 소유권이 있다는건 어불성설이라고도 주장한다.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는 카프카 문학을 연구하기에 충분한 전문인력과 자원이 풍부한 본인들의 입지를 주장하며, 표면적으로는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카프카를 독일 문학계에 편입시키고자하는 의지를 내비친다. 동시에 이스라엘 정부의 소송이 개인 사유재산 압수를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고도 주장했다.


에바에게 카프카와 브로트가 남긴 문서는 어머니인 에스테르 호페에게 상속받은 개인의 유산일 뿐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온 에바에게 그 유산을 잃는다는 것은, 그 문서의 어떠한 문학적인 가치와 무관한 소중한 가족과의 연결고리 상실을 의미했다.


카프카를 유대인 작가로 정의하고 싶어하는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독일 작가로서 편입시키고자 하는 마이바흐 아카데미, 브로트에게 모든 유산을 상속받은 것뿐이었던 딸 호프의 의견은 이렇게 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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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우리 안에 있는 언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합니다.

 

- 프란츠 카프카, 1904년

 

 

이어지는 치열한 법정 공방 중간중간 엽서, 편지 같은 시각적 자료들과 함께 담겨있는 카프카 개인의 삶이 흥미로웠다. 권위적이었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유약하고 섬세했던 카프카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강압적인 훈육 방식은 카프카 평생의 상처로 남았다. 작가는 그의 작품 속 깊은 절망과 어둠은 모두 그의 아버지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코멘트를 남긴다.


유대교였으나 끝내 시온주의자가 되진 못했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다가가면서도 물러서길 반복했으며,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었기에 언어를 골라내고 글을 쓰고도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세상에 내놓길 꺼려했다. 광활한 내면의 세계를 가졌던 내성적인 카프카와 활달하고 야망 있었던 브로트의 우정, 열렬한 첫 독자이자 친우였던 브로트의 재촉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 카프카의 작품들. 그는 노동보험공단에서 일했는데 꽤나 평판 좋은 유능하고 친절한 직원이었으며, 직장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삶을 살았다. 작품 속에 녹아있었던 ‘인간 카프카’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인간들이란 그저 하나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허무주의적 상념일지도 몰라.

 

- 카프카의 말이 포함된 막스 브로트의 카프카 전기



카프카의 일생과 그의 사후 이어진 치열한 법적공방이 교차되며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내 커다란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그가 사실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렇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음에서 비롯되는 글을 썼던 카프카는 집단에 속하게 해주겠다는 제안들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그가 생전에 작성했던 글과 원고, 편지들을 모두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친우에게 남길 정도로 세속적인 세상과는 거리가 먼 문학적인 삶을 산 인물이었다.


그가 남긴 유산을 두고 각종 문서와 유언장, 온갖 법률 자문과 입장이 난무한다. 세상을 떠난 자는 말이 없기에 그곳에 정작 본인인 카프카의 입장은 없다. 과연 본인 사후 이러한 재판이 열릴 것을 알았다면, 카프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세속적 가치와 입장으로 판단되고 쪼개지는 ‘카프카’에 느꼈던 알 수 없는 상실감과 함께, 그럼에도 무한한 가치를 지닌 그의 작품을 위해서라는 필연성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작가의 말과 함께 글을 마무리한다.

 

 

카프카가 여기 있었다면, 본 소송이 발가벗겨 놓은 소유욕에서 소름 끼쳐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가진 것들도 우리를 취하게 만들 수 있지만 우리가 못 가진 것들은 우리를 더 취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카프카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지 않았을까?

 

-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중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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