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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그들을 섬에 가둔 이, 누군가 – 섬:1933~2019

by 정은지 에디터
2024.06.18 07:56

 

 

‘지상낙원’ 소록도


 

사회에서 손가락질받던 이들이 ‘지상낙원’에 모였다. 한센병 환자들은 사회는 물론 가족으로부터 철저히 배척당했다. 어린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헛소문과 병균을 퍼뜨린다는 오해 때문이었다. 1900년대 개신교 선교사들이 소록도에 한센병 치료를 위한 병원을 설립하자, 한센인들은 강제로 이주당하거나 차별적 시선을 피해 자발적으로 입도했다.

 

그곳에 ‘소록도 천사’로 불린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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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감이 되는 실존 인물의 삶을 무대에 복원하는 ‘목소리 프로젝트’의 두 번째 공연이 재연으로 돌아왔다. <섬:1933~2019>은 한센인들을 위한 희생과 헌신으로 큰 감동을 준 실존 인물 ‘마리안느 스퇴거’와 고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를 조명한다. 소록도에 강제 송치된 한센인들의 억압받던 삶과 오늘날 스스로 세상과 담쌓고 살아가는 서울의 발달장애 아동 가족들의 이야기를 교차한다.

 

 

 

섬: 1933 - 바람을 등지고


 

일본은 조선나예방령을 근거로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을 소록도로 강제 이주시킨다. 부랑 생활에 지친 환자들은 치료를 해주고 살 터전도 마련해준다는 이야기를 믿고 제 발로 찾아오기도 한다. 따개비, 무안댁, 김기복, 수원 최씨 등과 함께 ‘백수선’은 소록도에 입도한다.

 

 

[국립정동극장] 섬1933-2019_공연사진 (2) ⓒ국립정동극장.jpg

 

 

수선과 해봉이 사랑을 키워나가며 행복해하는 모습 뒤편에서 한 환자가 죽어 실려 나간다. 이 극명한 대비는 소록도에서의 비참한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한센인들은 태어나서 세 번 죽는다. “몰라서 3년 알고서 3년 썩어서 3년” 한센병이 발병했을 때 한 번, 세상을 떠날 때 두 번, 해부될 때 세 번.

 

소록도에서는 ‘우생학’을 빌미로 이성 간의 교류를 금지했고, 동거를 하려면 남자는 단종수술을 받아야 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부모로부터 병균이 옮지 않도록 생이별시켰다. 부모와 자식은 한 달에 한 번, 각각 일렬로 서서 마주 볼 수 있었다. 부모들의 병균이 자식에게 옮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륙도의 아이들은 부모와 마주볼 때 바람을 등지고 선다. 수선은 자신의 아이를 안을 수 없었다.

 

 

[국립정동극장] 섬1933-2019_공연사진 (3) ⓒ국립정동극장.jpg

 

 

해봉이는 같은 방을 쓰던 사람이 감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해 수선에게 소록도를 떠나자고 설득한다. 도망 과정에서 해봉이는 붙들리고, 수선 혼자 탈출한다. 배를 타고 도망갈 때 수선은 관객에게 ‘등’을 보인다. 수선은 처음 등장할 때도, 도망갈 때도 모두 관객을 등진 상태다. 유독 ‘등’을 보여주는 연출이 많다.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한 인물의 이야기로 특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편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섬: 1966 - 가장 낮은 곳의 사랑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카톨릭 재속 회원 신분으로 소록도에 입도한 후 환자들 위해 봉사한다. 두 간호사는 자신들이 돌보는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사랑을 베푼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환자들이 독한 약 때문에 속 쓰리지 않도록 따뜻한 우유를 새벽마다 끓여 나눠준다. 부모조차 병이 옮을까봐 기피하던 환자의 종기를 맨손으로 짜자 환자가 되레 걱정하지만, “한센병은 안 옮아”라며 단호하게 말한다. 두 간호사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환자들은 삶의 희망을 되찾아 간다. 한센병에 대한 인식도 개선된다.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두 간호사는 할머니가 되어 감사 인사를 담은 편지 한 장만 남겨둔 채 소록도를 떠난다. 특별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며, 큰 위인으로 평가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섬: 2019 - 고통과 편견을 돌리는 ‘돌림판 사회’


 

수선의 손녀인 ‘고지선’은 아들 ‘지원’을 낳는다. 첫돌이 지난 후, 아들은 발달장애 판정을 받는다. 지선은 처음에는 자기 아들이 발달장애인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차차 현실을 받아들이며 치료에 극성인 엄마가 되지만,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냉담하다.

 

지선은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발달장애인 거점병원과 행동발달증진센터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2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며, 한참 대기해서 치료를 받게 되더라도 2년 후에는 다시 등록하고 또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인지, 심리 등 여러 분야의 치료를 받아야 하다 보니 병원비도 만만치 않다. 병원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려면 부모는 아이에게 온 시간과 신경을 집중하게 될 수밖에 없다.

 

시간이 멈춘 듯한 장면에서, 지선은 음악의 리듬에 맞춰 아들 지원의 ‘모자’를 씌운다. 지원이는 ‘모자’로 재현된다. 무대를 누비는 모든 배우는 모자를 쓰게 되고, 그들은 지원이가 된다. 발달장애인은 ‘지원’이라는 캐릭터로 축소되지 않기에, 이 또한 특정하지 않는 연출일 테다. 덕분에 무대도 풍성해진다.

 

 

[국립정동극장] 섬1933-2019_공연사진 (5) ⓒ국립정동극장.jpg

 

 

지선은 무엇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두렵고 불편하다. 지원이는 지하철을 탄 순간 그곳을 넓은 운동장으로 인식했고, 지하철 내부를 달리고 싶어 했다. 지선이 지원이의 손을 놓아주지 않는다면, 지원이는 바닥에 드러누워 악을 쓰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주장했을 것이다. 대신, 지선은 지원이의 뒤를 쫓아 함께 달렸다. 지하철에 있던 시민들에게 ‘내가 이 아이의 보호자고, 아이가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눈으로 말했다. 지하철의 끝과 끝을 몇 바퀴 돌다 보니, 어느 순간 사람들은 지원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익숙해지면 눈길을 주지 않아”라는 지선의 말이 박힌다.

 

텐미닛도 아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5분밖에 걸리지 않아.” 우리 시선 때문에 외딴 ‘섬’에 갇혀 있던 이들 – 발달장애인,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 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자주 부딪히면서 의식되지 않는 이들이 될 수 있다. 달라서 눈에 띄는 집단이 아니라, 익숙해져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이 된다.

 

한편, 발달장애 학생들의 학교를 건립하는 건에 관한 토론회가 열린다. 이는 2020년 4월 입학식을 한 ‘서울서진학교’를 모티브로 한다. 일부 주민은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반대하지만, 속뜻은 ‘집값’ 때문일 테다. 그들에게는 ‘남 일’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교육권은 큰 고려 대상이 아니다. 모두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한다.

 

 

 

‘성인’의 목소리로 우리가 말해야



[국립정동극장] 섬1933-2019_공연사진 (1) ⓒ국립정동극장.jpg

 

 

극에서 1966년의 ‘마리안느’와 2019년의 ‘고지선’, 그리고 1966년의 ‘마가렛’과 1933년의 한센인 ‘백수선’은 각각 한 배우가 맡아 연기한다. 마리안느와 고지선, 마가렛과 백수선은 시간을 건너 겹친다. 실제로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한국 이름이 각각 고지선, 백수선이다.

 

극은 두 간호사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끝나는 수미상관 구조다. 극의 수미상관은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낙인과 무분별한 배제가 과거의 일에 그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들을 ‘섬’에 가두는 행태는 오늘날 우리가 발달장애인을 대하는 모습과 겹친다. <섬>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성인’의 목소리를 현대로 불러내,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을 보여주고자 한다.

 

 

[국립정동극장] 섬1933-2019_공연사진 (4) ⓒ국립정동극장.jpg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회적 약자를 이러한 극으로, 기사로, 방송으로 호명하고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하는가?

 

사회의 가장자리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던 허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경계선 혹은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이다.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혹은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이들.

 

우리는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아니면 됐어’가 아니라 나였어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섬>에서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목소리를 찾아 말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사진: ⓒ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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