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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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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희망은 보여져야 한다.

희망은 느껴져야 한다.

희망은 실현 가능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희망으로 살아야 한다.

 

 

음악극 ‘섬: 1933~2019’는 1966년부터 2005년까지의 긴 시간 동안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실존 여성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일생을 바치며 선한 영향력을 전파한 두 간호사의 삶을 통해 희망과 순수한 사랑이 머물던 시간을 말한다.

 

1966년,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지내던 시기에서 시작해 1933년과 2019년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1933년, 백수선이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소록도로 강제 이주 당한 한센병 환자들의 삶이 그려진다. 이어, 2019년을 배경으로 발달장애 아동의 엄마인 고지선과 그 가정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얼핏 보면 과거의 소록도와 현재의 한 가정은 큰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혐오와 차별이 세 시기를 모두 관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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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문화재단

 

 

1933년. 일본은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하기 위해 그들을 소록도로 강제 송치했다. 일제강점기의 억압을 시작으로, 접촉을 통해 병균이 전염된다는 오해와 환자들에 대한 낭설까지 퍼지면서 혐오와 경멸의 시선이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이에, 사회의 낙인을 피해 제 발로 소록도를 찾아가는 이들도 생겼다. 수선 역시 치료를 받고 보다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낙원을 꿈꾸며 먼 길을 거쳐 소록도로 이주한다.

 

그러나 그렇게 찾아간 섬에는 더 가혹한 억압만이 존재했다. 소록도의 기관은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하고 감금하기에 이른다. 강제로 기금을 징수하고, 부당한 노역을 시키고, 체형을 가하면서 악행을 저지른다. 이주자들은 한순간도 빠짐없이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하는 참혹한 현실을 마주했고 절망감은 커져만 갔다.

 

수선과 그녀의 연인 해봉은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줬지만, 함께 지내던 이들마저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도망을 결심한다. 강압적인 만행에서 벗어나 적어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 소록도를 탈출하지만 결국 시도는 좌절된다. 해봉을 잃은 수선의 울부짖음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애타게 걱정하지만 결코 닿을 수는 없던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물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느낀다.

 

그리고, 1966년. 소록도에 오스트리아 출신의 두 간호사가 도착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섬의 환자들을 정성껏 치료한다. 극소의 지원금으로 생활하고 그마저도 환자들을 위해 쓰면서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했던 모습이 그려진다. 따뜻한 우유 한 잔으로 그들을 달래며 희망의 가치를 전하던 미소가 살갑게 와닿는다. 몇십 년 동안 오직 소록도 사람들이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희생했던 삶을 목격할 수 있다.

 

물론 환자들을 향한 뿌리 깊은 낙인은 한순간에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차츰 인식을 개선해 나갔다. 한센병은 옮는 병이 아니라며 소문을 바로잡고자 했고, 환자들이 삶의 소소한 순간에서 희망과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온 마음 다해 도왔다. 환자들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모습을 통해 1933년의 소록도로 인한 울분은 잠시 가시고 숨통이 트이던 순간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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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문화재단

 

 

그러나, 2019년. 극의 배경이 지선의 가정으로 이동하며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닥쳐온다. 1966년보다 한참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사랑보다는 여전히 혐오와 차별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 비친다.

 

지선은 첫돌이 지난 후 지원의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다. 처음에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탄했지만 곧 아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쏟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예상하듯이 사회는 지원을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지선은 지원이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다른 속도로 성장하는 평범한 아이일 뿐임을 말한다. 그러나 냉담한 주변 인식으로 인해 사회 바깥의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또래 아이들의 편견 섞인 폭력과 수많은 멸시의 눈초리가 벌써부터 두렵다. 사실 지선 역시 지원을 키우기 전에는 발달장애 아동의 가족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던 사람의 일부였기에 괴로움은 배가된다. 자신의 과거에 가책을 느끼며 지원과 발달장애인에 대해 알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지선의 가족마저도 배려 없는 충고를 툭 내뱉는 것이 현실이다.

 

특수학교 설립 찬반에 대한 토론회가 끝난 후, 지선이 외치던 장애도라는 섬은 여전히 존재하는 혐오와 편견에 대한 상징이다. 사회가 숨 쉬듯이 행하는 차별의 폭력으로 인해 장애도에 고립될 수밖에 없는 이들의 고통이 1933년 소록도의 아픔과 겹쳐지며 크게 다가왔다. 한센병 환자들을 억압하고 발달장애 아동의 가족들에게 민폐라며 비난하던 목소리들이 무대 위의 것만이 아닌 현실의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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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문화재단

 

 

세 이야기를 거쳐오면서, 지금도 여전히 누구에게는 사회가 지옥보다 끔찍한 섬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내내 회의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조차도 그 사회의 일부이고 나의 언행도 누구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성찰과 함께 나아지지 않은 현실의 모습을 떠올렸다. 누구든지 차별과 혐오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사회다. 이토록 숱한 혐오와 편견이 과연 사라질 수 있을까. 만연한 차별을 이기기 위해 희망과 사랑을 계속해서 외치는 것이 진정 의미가 있을까. 복잡한 고민들이 끊임없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극 후반부에 그려지는 지하철 속 5분의 시간에서 일말의 가능성이 읽히고, 막이 내림과 동시에 무대 위로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품고 살던 신념이 비칠 때 다시 확신이 생겼다. 희망을 외치는 행위는 분명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1933년의 혐오와 차별이 2019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면, 희망과 사랑 역시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회 전반의 짙은 혐오로 인해 순수한 선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잠시 흐려질 때도 있지만 존재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희망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되새겨 본다.

 

‘섬: 1933~2019’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오랜 헌신이 한센병에 대한 인식을 점차 바꿔 나갔듯이, 희망과 평등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외친다면 우리 사회도 변화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동의한다. 올바른 신념에 대한 의지와 꾸준한 사랑의 실천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닌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만든다.

 

“희망은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희망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한 영화의 대사다. “불멸의 희망은 보고 느껴져야 하며, 우리 모두는 희망 속에 살아야 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남긴 메시지가 그 대사 위에 포개어지며 마음에 깊이 남는다.

 

우리 모두는 희망을 살아낼 자격이 있고 희망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 덮쳐올 때면 희망 같은 것은 죄다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희망은 좋은 것이라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차별과 무뎌짐을 경계하고, 외침을 멈추지 않으며, 모두가 희망과 삶을 살아낼 수 있기를 바라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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