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리의 식물원에서 (2) [여행]

파리, 그리고 도쿄
글 입력 2024.02.2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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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을 쓰는 지금 나는 도쿄에 있다. 그래서 뜬금없어 보이지만 잠시 도쿄 이야기를 해보자. 고백하건대, 1편을 쓰고 난 뒤에 사실 막막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한 식물원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하나. 너무 거창하게 운을 띄운 게 아닐까. 친구들은 모두 잠들었고 혼자 남은 밤. 도쿄에 오니 파리가 생각났다. 이 여행을 오니 그 여행이 생각났다. 메모장을 열었다. 이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이란 그런 것. 새하얀 지면 앞에서 내가 과연 쓸 수 있을까 싶어 두려움에 떠는 것. 얼마 뒤 내 앞에 버젓이 놓인 한 편의 창작물을 멍하니 바라보며 더 큰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 내가 이걸 어떻게 써냈을까. 내가 써낸 건 맞긴 할까. 마감에 쫒기면 쓰고 싶다는 순수함은 종종 퇴색되지만 언젠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글은 품고 있다. 이 글을 시작하게 만든 이끌림이 오늘도 그 사실을 증명한다.


친구 집이 위치한 곳은 도쿄 근교의 작은 시골 마을.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 거기까지 가는 방법을 몰랐다. 찾아가기 위해 다른 친구와 즐겁게 헤매었다. 도착하니 거주하는 친구의 안내를 받아 편하게 밥을 먹고 편의점에서 일본 디저트와 맥주를 사먹었다. 도쿄는 처음이지만 낯설지 않다. 처음 마주한 마을의 밤 풍경이 연희동 같았고, 한국에서도 자주 접한 아사히를 마셨으며, 무엇보다 친구가 있다. 처음 방문하는 곳이지만, 익숙한 친구들과 함께라 두렵지 않다. 파리를 건조하게 통과한 작년 여름이 나를 차분하게 만든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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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내게 무엇을 주었나. 그리고 지금의 도쿄에서 나는 무엇을 기대하나. 파리에서 나는 내가 기대하던 바를 이루었나.

 

누구나 상상하는 여행이 있고 여행은 언제나 상상과 꼭 들어맞지 않는다. 상상 밖의 범위에 여행은 존재하고 우리의 세상 역시 여행이 위치한 영역까지 확장된다. 우리 안에 있던 기대와 목적이 우리 안에 없던 영역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여행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게 다시 여행의 목적이 된다. 낯선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선명해진다. 여행만이 제공하는 상황 속에서 행동하고 대처하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응시하며 내딛는 발자국 수만큼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도쿄를 향한 나의 상상은 사실 쇼핑과 음식이었다. 평소 패션과 일식을 좋아하는 나로썬 천국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멀리서만 동경하던 브랜드를 현지에서 경험하는 일도 여행이 주는 일종의 확장일 것이다. 그래서 쇼핑할 곳을 많이 찾아놓았다. 그 외의 다른 계획은 거의 세우지 않았다. 즐겁게 놀고 쉬다오자는 마음가짐 하나 챙겼다.


목적을 위한 여행은 쉽게 허망해진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분주해지고, 이루거나 이루지 못한 이후에는 이방인이 되어 낯선 나라 위에 붕 뜬다. 그토록 기대하던 쇼핑의 성지인 오모테산도 근방을 홀로 돌아다니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숙제하듯이 여행하고 있구나. 구글맵에 저장된 장소들을 스마트폰의 아바타처럼 건조하게 방문한다. 어느정도 다 격파하니 갈 곳이 없다. 살 만한 옷도 없다. 풍경도 그닥 이국적이지 않고 중심가는 강남, 골목은 성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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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파리로 돌아가서. 파리에서 나는 무얼 기대했나. 왜 나는 파리에서 허망했을까. 유럽의 상상은 낭만과 성장이었다. 순간순간 감탄하지만 그게 일상인 듯이 여행하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 감각에 집중하고 이어질 삶을 견고하게 덧대줄 경험들을 쓸어담아오고 싶었다.


내가 그리던 낭만적 풍경들이 여행으로 충분히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의 최초 발상지는 프로방스였다. 그래서 프랑스 남부에서 가장 장기간 머무르고 지중해를 질리도록 쳐다보고 햇살과 바람을 살결에 가득 담아오는 게 나의 목적이었다. 또 자유와 여유, 가벼움, 흐르듯이 떠나고 맞이하는 인연들, 삶을 사랑하지만 집착하지 않는 마음 같은 것.


그래서 파리에서 나는 붕 떴는지도 모른다. 파리는 나의 상상이었던 적이 없다. 마음에 들어온 적 없던 타지의 공기는 외로움만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여행이라는 의무감에 떠밀려 파리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식물원에서 나는 안락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파리 같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묵묵히 자라는 나무와 순리대로 피어나는 꽃, 다리에 네임택을 단 채 잘 관리되는 까마귀를 보며 여행의 무용함에 대해 생각했다. 특별한 성취나 보람 없이도 감정을 안온하게 다스리는 마음을 가늠했다.


공평하게 깔린 벤치 하나에 자리잡고 오래 앉아있었다. 일기를 썼고 흩날리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는 까마귀를 가만히 지켜보기도 했다. 흐르는 구름과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내리는 가랑비와 벤치의 감촉, 들려오는 낯선 언어와 이젠 익숙한 외로움까지. 주변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고 쭉 흘려보냈다. 내내 가라앉았던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마음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지만 외부와도 긴밀하다. 그리고 바깥은 예기치 못한 일의 연속. 저녁을 때우러 방문한 숙소 근처 맥도날드에서 어느 프랑스인 모녀를 만났다. 내게 말을 걸어왔고 한국과 파리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사진도 찍고 번호도 받았다. 감사하게도 사주신 맥플러리를 들고 숙소로 돌아가며 알 수 없는 충만감에 미소지었다. 나에게 진실된 여행이란 나의 생각 바깥에 존재한다.


그리고 도쿄에 있는 지금도, 나는 여전한 사람. 그토록 벼르던 쇼핑은 허탕 쳤고 다리만 욱씬거린다. 할 일이 남아있는 채로 여행을 오는 바람에 자꾸 생각나고 또 해야 된다는 부담감에 마음이 편치 않다. 어제는 인파로 가득 찬 지하철 안에서 친구들의 뒤를 따라가다 놓쳐 길을 잃었다. 오늘은 친구가 급하게 탄 지하철 문이 닫히는 바람에 잠시 친구 하나를 잃었다. 다만 상봉했을 때 기쁨은 배가 된다. 내내 기분 안 좋다가 친구가 데려간 야키토리와 하이볼 몇 잔에 금새 행복을 되찾는다. 원하던 브랜드는 못 샀지만 다른 옷들을 싼 값에 건졌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내게 찾아올까. 익숙한 실패와 어색한 성공의 틈에서 도쿄는 내게 어떻게 기억될까.

 

깊은 밤이다. 창문을 보니 한국과 똑같은 달이 생경한 풍경 안에서 밝게 빛나고 있다.

 

 

[문충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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