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은 고도를 기다리겠습니까? [도서/문학]

기약 없는 고도를 기다린다는 것은
글 입력 2024.01.3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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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고도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것이 실존하는지 역시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몇 년인지 몇십년인지 모를 시간을 고도만을 기다리며 길 위에 서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대표적인 전후(戰後) 작품으로서, 무의미와 염세로 대표되는 부조리극의 태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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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전쟁은 문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세상의 부조리는 산재해 있고 우리를 억압하나, 일상에서 이를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다. 전쟁은 이런 부조리를 극대화해 드러낸다. 인간의 전쟁은 우리가 최고로 형이 학적인 가치만을 좇을 때 일어난다. 내가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네가 가진 것을 뺏겠다는 저속하고 천박한 표현이다.

 

전후(戰後)의 극임을 염두에 두고서, 나는 사무엘 베케트가 '고도'를 초월적 가치에 대한 동경의 의미로서 설정해 놓았다고 본다. 전쟁과 전후라는 커다란 부조리를 마주하며 사람들은 장애와 고통, 기아와 폭력에 노출되며 인간성의 상실을 경험한다.

 

그러한 사람들 사이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다가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만은 아직도 눈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상실된 시대의 도덕성을 찬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고도를 '기다리며'인가? 이들은 언제든 고도를 찾아 나설 수도 있었다. 하다못해 소년을 닦달해서라도 고도의 위치를 말하도록 협박할 수도 있었던 일이다. 기다림은 수동적 의미다. 그런데 왜 이들은 고도를 찾아 나서지 않고 기다리기만 할까?

 

나는 이 점을 저자가 일정 부분 자조적으로 바라본 자신을 포함한 당시 지식인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형이하학적 가치에만 몰두하는 사람들 속에서 초월적 가치를 인식한다. 그럼에도 무기력과 염세주의 속에, 세계의 도덕적 회복만을 갈망할 뿐 당장의 부조리를 현실적으로 개선하지는 못한다.

 

*

 

하지만 정말 그런가.

 

이들은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나? 포조와 럭키처럼 형이하학적 가치만을 좇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그들만 알고 있는 고도를 기다리면서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목을 맬까?"라는 그들의 질문에서 그들은 스스로 자살로의 도피를 고민한다. 부조리한 세태가 그들을 수십 년째 괴롭히는 것에 대해 피로를 느끼는 것이다. 그들은 삶의 부조리를 경험할 줄 아는 인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간다. 그들은 최소한 살아있다.

 

그들은 묵묵히 고도가 오기를 기다리며 오솔길을 몇십 년째 지켜낸다. 그럼으로써 오지 않는 고도와 망가져 버린 세계, 세속적 가치에 물든 지식인(럭키)과 부패한 권력층 (포조) 등 여타 모든 부조리한 세계의 구성원에게 온 힘을 다해 반항하고 저항한다.

 

일견 무기력해 보이는 그들의 수십 년간의 기다림은 사실 어떠한 농성보다도 강력한 삶과 가치에 대한 찬가요, 단단한 의지의 표명이다.

 

나의 삶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묵묵히 살아낸다. 그들은 결코 고도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이겼다. 부조리한 세계에서 도피하지도, 굴복하지도 않은 그들은 최소한 패배하지 않았다.

 

하인 럭키는 늘 무기력하게 목줄에 끌려다니는 존재다. 모자를 씌우자 조각난 언어로 다양한 지식을 쏟아낸다.

 

럭키는 지주와 속된 가치에 종속된 지식인을 닮아있다. 이상을 바라볼 줄 알고 추구하는 주인공과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기준에서 생각하는 지식인의 목표는 결국 지주(부유층)의 노예가 되어 권력의 목줄에 끌려다니는 것이며 그는 목줄에 매인 채 '닭 뼈다귀' 에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된다.

 

옳지 않은 일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벙어리가 된 것이다.

 

또한 자신의 성공과 권력에 집중하며 이를 과시하는,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포조는 사유하지 않음을 통해 결국 눈이 멀게 된다. 보고도 진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자, 그럼 갈까?

그래. 가세.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 <고도를 기다리며> 中

 

 

그걸 묵묵히 지켜보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또다시 기다리기를 선택한다. 내일도 고도는 아마 오지 않을지 모른다. 아니,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포조와 럭키처럼 눈을 감고 입을 막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희망인지 놀림인지 모를 소년의 말도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도가 올 것임을 믿고 또 하루를 버텨내는 데에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누구도 알지도, 찾지도 않는 고도를 기억하고 하루를 기어코 살아내고 마는 두 사람만 남는 거라면.

 

누가 고도인가?

 

 

 

김우현.jpg

 

 

[김우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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