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의 소통 문제는 우리의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설령 그 누구도 그 결핍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라 할지라도. 급격한 기술 발전과 사회 구조의 변화로 우리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연결되지 않게 되었다. 현대인들이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다양한 주제로 메세지를 주고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직접 만나지 않고 닿지 않으며 또한 그렇게 지내더라도 큰 문제가 없는 윤택한 발전된 사회 속에서 고독과 결핍은 호흡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이 시대의 흐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배제되고 방치된다. 이러한 변화는 각자의 세계로 향하는, 그 어떤 마음의 움직임을 지연시키며 연대의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극단 'The 광대'가 기획한 연극 '52hz'는 현대 사회의 이러한 소통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감지하고, 그에 대한 뚜렷한 경고를 전한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를 새롭게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관계가 연결되고 회복되는 모습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보여주며 소통의 의미를 온전히 감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연희집단 The 광대] 52Hz_연습사진(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01/20240110143446_mxeoymxa.jpg)
연희극 '52hz'는 자신의 세계와 관계로부터 버림받은 주인공 '선'이 자신의 삶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선은 끔찍한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고, 함께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아들조차 더이상 자신과 함께하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다. 힘겨운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용왕이 등장하여 선에게 52hz로 변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52hz 고래는 다른 고래와 소통할 수 없는 존재다. 고래의 일반적인 주파수보다 높은 hz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누군가 들을 수도, 자신을 이해해 줄 수도 없다. 현실 세계에서 이미 52hz의 소리를 내며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던 인간 선은 평행세계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여전히 누구에게도 닿을 수 없는 목소리를 가져 외롭지만 자신은 거대한 몸과 힘을 가진 고래가 되었기 때문에. 평행세계 속에서 선은 현실세계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이 여러 동물로 구현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마주한다. 선은 이 세계에서 어떤 삶을 살아갈까.
![[연희집단 The 광대] 52Hz_연습사진(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01/20240110143438_bbcnsmdz.jpg)
선이 바다 혹은 현실을 교차하며 여행하는 모든 장면은 언어적 서술을 최소화하고, 움직임과 연출로만 표현된다. 그러나 무척 풍성한 스토리를 전하며 극중 인물의 몸짓만으로도 상황에 충분히 몰입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거대한 깃발을 흔들며 춤을 추는 전통연희 속 '기놀이'를 기반으로 상어의 움직임을 확장하고, 8개의 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문어는 봉산탈춤의 '한삼춤'으로 표현하는 등 바닷속 생물의 움직임이 연희극으로 재현되었다.
또한 해안지역의 연희인 남해안 별신굿의 '용선놀음'을 활용한 장면 전환과 다양한 풍물놀이와 굿 장단을 더한 음악은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전통 장단에 맞춰 과장 섞인 몸짓으로 걸어가는 펭귄 떼, 만지면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복어는 어릴적 동화책을 펼쳐 보듯 순수한 재미를 주고, 주인공이 바닥에 그린 쥐치가 무대 위를 유영하며 생명력을 갖게 되는 연출은 시선에 아로새겨진다.
![[연희집단 The 광대] 52Hz_포스터.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01/20240110181312_zbbkxfmc.jpg)
무엇보다 선이 마음을 회복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이들을 바다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마주하는데, 현실에서는 그저 묵묵하게 견디기만 했지만 평행세계 속에서는 거대한 고래의 몸에 힘입어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압도하고 파괴한다. 더이상 참지 않겠다는 듯 울부짖으며 끊임없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침잠한다.
그의 방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고래처럼 거대한 몸을 가진 물고기가 나타난다. 아주 오랜 세월을 견뎌온 듯 낡고 헤진, 어떻게 보면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친근하다. 마치 쓸쓸히 바다를 떠노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이제는 나와 멀어져버린 아들과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는 이 존재 역시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해 외로움에 고통스러워한다.
이러한 선을 구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관객들이다. 그 물고기의 몸에 주렁주렁 매달린 작은 컵 전화기가 안무가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함께 하나씩 관객 앞으로 옮겨온다. 52hz의 소리로,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목소리를 가졌던 고래의 울음소리. 그러나 관객은 이 고래의 목소리를 닮았다. 이 상징성과 참신한 퍼포먼스에 조용히 압도당해 무대를 계속 주시했떤 기억이 난다. 아, 아, 아. 관객이 손에 쥔 컵에 대고 소리를 낼 수록 물고기는 하늘 위로 부유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선' 역시 마음을 회복한다. 용기를 얻는다. 세상과, 아들과 다시 소통할 용기를.

일그러진 물고기의 얼굴을 한 추억 위로, 얼기설기 엮여 있던 수많은 선과 컵들. 이 '선'은 컵을 잇고 사람과 고래를 연결하며 소통의 힘과 치유의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주인공인 '선' 역시 아마도 누군가와 연결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으리라. 그는 상처 받은 과거를 뒤로 하고 다시 누군가와 이어질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관계와 소통이 사람을 구원한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상기시킨 놀라운 연극. 그리고 나와 같은 주파수로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부단히 서로와 서로에게 안부를 물으며 다정함을 건네자.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 마음에 오늘을 살게 만드는 작은 구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