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다채로운 사랑의 음률이 흐르는 곳 -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글 입력 2023.11.1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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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찾아가는 공간이 있다.

 

일 년 중 일주일 남짓한 기간에만 찾아갈 수 있는 곳. 다채로운 이야기와 호기심과 경청이 뒤엉키는 곳. 국내 가장 큰 규모의 성소수자 국제 영화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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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소재 이야기는 점차 가시화되고 다양한 포맷을 제시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OTT나 유튜브에서 인기 있는 퀴어 콘텐츠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흥미, 새로움, 인기, 돈, 정치적 목적. 어떤 이유에서 비롯되었든, 드러나선 안 된다고 여겨진 존재가 빛을 뿜을 수 있다는 건 주목할 만하다. 대상을 성실하고 정중하게 알아가려는 시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가시화와 적절한 수용 사이엔 미묘한 간극이 존재한다. 다각도에서 고찰하지 않은 묘사는 자칫 대상화로 이어지기 쉽다. 예를 들어 BL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퀴어 서사에 대한 낯섦과 거부감이 줄고 대중화된 경향이 있지만, 동시에 대상화로 점철된 모습도 두드러진다.


사회적 미에 부합하는 남성, ‘공과 수’로 표현되는 고정된 섹슈얼리티, 정서와 서사의 극적인 신비화. 유사한 서사들을 보고 있으면, 특정 판타지를 실현하기 위해 일상적이지 않은 남성 간의 사랑을 단순 활용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BL을 퀴어 장르와 구분하려는 인식은 이런 점에서 비롯될 것이다.


퀴어는 사랑과 섹슈얼리티와 밀접히 연결된 개념이기에 낭만화와 문학화는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다만 실제 삶과 재현되는 삶의 괴리가 심할수록 일상에서 다양한 모양의 삶을 만들어가는 이들은 결국 소외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일상의 영역으로 불러들이지 못하고 낭만의 세상에만 가두는 것은 또 다른 장르의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모든 마음의 뿌리가 다양한 사랑에 대한 열망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소중한 마음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도록 대화를 멈추지 않는 것이 우리의 과제고, 필요한 것은 다양한 상상력과 레퍼런스다.

 

퀴어의 삶에는 로맨스만 존재하지 않는다.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쉬는 날은 무얼 하며 보낼지,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싸운 친구와 어떻게 화해할지, 막막한 앞날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고민한다. 퀴어라는 수만 갈래의 정체성 위에 매일의 고민과 행복과 흔들림과 기쁨과 무력함이 교차하며 유사하면서도 다른 고유한 인간이 태어난다. 모두가 그러하듯.


프라이드 영화제는 국내는 물론 30여 개국의 퀴어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가 흐른다. 로맨스에 집중된 서사부터 일상과 교차하면서 만들어지는 독특하면서도 평범한 이야기, 성 정체성 외 삶의 고민에 고뇌하는 퀴어의 이야기까지. 인간의 이야기는 모두 퀴어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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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작품이 상영되지만, 여유가 없을 땐 GV가 포함된 ‘한국단편경쟁’작을 고른다. 단편 영화 4~5개가 묶여있어 한 번에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대적 삶의 어려움과 퀴어함이 만나면서 발생하는 특수한 듯 보편적인 군상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별지정을 원하는, 동시에 연애와 직업에 대한 고민을 담은 <트랜스보이>, 자기가 쌓아온 세상의 질서를 한순간에 바꿔버린 사랑을 그린 <은우>, 저마다의 별남과 비밀을 숨기고 품으며 살아가는 정상가족을 보여준 <결혼식 전날>, 불확실한 삶과 세상에서 도망치고 보듬어주는 여린 것들이 담긴 <사람들은 왜 바다를 보러 갈까>, ‘나’와 ‘너’의 경계를 구분 지을 수 없다고 말하는 <엔젤 샤이닝>.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를 만드는 감독, 배우와 대화할 수 있는 GV.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불러올 때 빛난다고 믿는다. 스크린 속에 머물러 있는 이야기를 눈앞에 있는 존재와 나눌 때 비로소 우리의 서사가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 관여한 시선, 사건, 생각, 환경. 영화 이전의 한 개인으로서의 고민과 행동. 그것들을 목격하고 있으면 나라는 이상한 존재에, 타자라는 낯선 존재에 조금 더 너그러워짐을 느낀다. 모두가 저마다의 비밀과 아집 속에 떨면서도 그것을 타자와 공유하며 긍정 한 줌을 피워낼 수 있음을 증언하기 때문이다. 프라이드는 어쩌면 이상한 나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삶, 다채로운 사랑의 형상은 모든 존재에게 필요하다. 풍부한 선율이 흐를수록 개인과 사회 역시 건강해질 것이라 믿는다. 사랑을 믿는 이들이라면 꼭 프라이드 영화제에 들러보길 권한다. 묵묵히, 꿋꿋이 사랑의 꽃밭을 일궈나가는 이곳에. 낯설고도 편안한 향을 머금은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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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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