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울을 바라보는 일 [사람]

글 입력 2023.09.22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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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1_거울을 본다2.jpg

 

 

매일 거울을 본다. 외모 강박이 있어서는 아니고 모두가 알 법한 지극히 일상적인 이유에서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전신 거울은 없다. 화장실에 붙어 있는 반쪽짜리 거울은 나의 몸 맨 위부터 아래까지를 오갈 일은 없지만 내 모습을 차별 없이 비춘다. 나의 살갗 아래에 스민 불안마저도 가감 없이.


거울 보는 일이 가끔은 버겁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우연히 2020년 12월 31일에 써둔 소망을 발견했다. 매일 무언가를 소소하게 바라지만, 새해 직전에 적어내는 소망은 조금 다르다. 지난해 내내 쌓이고 쌓인 감정이 몇 가지의 단어로 집약되었기에 제법 날카롭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물러 터진 감정을 날카로운 창으로 만들 수 없어 아쉬웠다는 말이다.

 

 

내게 불필요한 감정을 잘라낼 수 있는 2021년이 되기를

남이 부러우면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서 열등감을 이겨내기를

 

좋은 일만 있기를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을 모두 이겨낼 수 있기를


2020년 12월 31일 오후 9시

 

 

나는 여전히 불필요한 감정을 잘라내지 못하고, 좋지 못한 일을 모두 이겨내지도 못한다.

 

타인이 쑤셔 넣는 상처에 비틀거리는 데다 내 못난 모습에 가라앉기도 한다. 답을 알고 있는 질문에 눈을 감았다 뜨며 나 혼자 뒤처지지 않을지 불안해한다.


불안은 꽤 고약하다. 어느 하나를 붙잡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떠나보내면, 또 다른 불안이 기다렸다는 듯 찾아와 정돈된 일상을 헤집어 놓으니 말이다. 제 할 말만 내 머리에 꽂아 넣고 사라지는 이를 나는 아주 오래된 악우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의 내면마저도 잘 아는 불청객.


그렇지만 나는 지독한 존재에 맥없이 바스러질 마음이 없다. 어차피 내가 원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지 않던가.

 

내가 살아있는 이상 영원히 없앨 수 없다면 익숙해지면 그만이다. 내가 바라보고 싶지 않은 모습마저 눈을 가리지 않고서 가만히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오늘도 거울 속의 나를 마주하며 눈빛이 죽지 않았는지를 확인한다.

 

 

 

이유빈.jpg

 

 

[이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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