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바다가 주는 설렘 -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 [도서]

글 입력 2023.09.0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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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사람을 만나면 대체 이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런 궁금증은 새로운 예술가를 알게 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인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작가에 대해 조사할 때 그의 성격이나 개인적인 삶에 많은 비중을 둔다.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작가의 작품보다는 삶 위주로 내용이 전개된다. 그가 바닷가에서 태어났고, 그의 주변 친구들은 어땠고, 그가 거쳐온 직업들은 무엇이었는지 하나씩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요소들이 그의 성격과 작품에 미친 영향을 잘 보여준다.

 

 

[표1]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jpg

 

 

그가 바닷가에서 태어나 바다를 배경으로 유년기를 보냈다는 사실은 뒤피의 작품 소재뿐 아니라, 특유의 목가적이고 평온한 화풍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바다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며 매일 다른 색과 깊이를 보여준다. 여름 휴가의 목적지가 되기도 하고, 레가타 경기장으로도 쓰이며, 겨울에는 조용하고 잔잔한 모습으로 위로를 건넨다. 성장 배경은 한 인간이 가지게 되는 감각과 취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뒤피가 식료품 검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대해 남긴 이런 말에서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배들의 갑판 위해서 늘 살았다. 이는 화가에게는 이상적인 교육이다. 난 화물창에서 새어나오는 온갓 향기를 들이마셨다. 나는 냄새로 그 배가 텍사스에서 왔는지 인도에서 왔는지 혹은 아조레스에서 왔는지 알았고 이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 했다."]


그가 그린 바다 그림들 속에는 공통적으로 화기애애함이 있다. 늘 어딘가로 이동하는 물의 속성 때문에 여행을 할 때의 기대감을 주기 때문일까? 아무도 없는 해변의 모습이라도, 어두운 바다의 색채 속에서도 뭔가모를 시끌벅적함과 기분 좋은 부대낌이 느껴진다.

 

1933년 '레가타의 귀환'이라는 작품은 가로로 긴 작품인데, 도빌에서 레가타를 즐기는 사람들과 보트를 그린 그림이다. 이 작품이 특히나 설렘을 안겨주는 것은 레가타는 일년 중 특정 계절에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날이 추우면 보트 경기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온이 충분히 따뜻해지고 바람이 적당히 불어야만 가능한 게임이다.

 

즉, 레가타의 귀환이라는 것은 따뜻한 날들이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봄을 지나 본격적으로 날씨가 좋아지기 시작함을 뜻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활동이 많아지고, 모든 생명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계절에 오랜만에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왔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을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이러한 설렘이 요트를 밀어주는 바람을 타고 나에게까지 전해진다.

 

뒤피가 가졌던 여러가지 직업 중 눈길을 끄는 또다른 면은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모습이었다. 옛날 화가들은 패션 디자이너나 삽화가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에드워드 호퍼도 삽화가로 한동안 일했었으며, 앤디 워홀도 패션 삽화 및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일한 경력이 있다. 이러한 워홀의 작업은 현재 런던의 Fashion and Textile Museum에서 전시 중이다.

 

폴 푸아레는 뒤피와 함께 일했던 시절, 그의 작업에 대해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기록을 남긴 바 있다. 뒤피는 이 시절에도 낙천적인 그의 천성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꽃과 식물들이 함께 어우러진 패턴은 자연에 대한 찬사와 향수를 동시에 드러내며 뒤피가 어떠한 감성을 가진 사람인지 단번에 보여준다. 그는 삶과 살아있음 자체를 너무나 사랑했던 이었음에 틀림없다.

 

주변 예술가들이 뒤피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결이 비슷하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그의 작품은 즐거움 그 자체다"라고 했고 피카소는 "그의 그림은 항상 나를 행복하게 한다"고 했으며, 뒤피 자신도 밝은 것을 추구했다고 하니 자타공인 행복한 화가였던 것 같다.

 

그의 탁 트이고도 따뜻한 그림을 보고 있자니 나 또한 가을 바다를 보러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강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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