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옛이야기 속 가려진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 팜 파탈; 가려져 버린

글 입력 2023.09.0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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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오래된 이야기는 그만큼 오래된 사람들의 가치관을 담고 있다. 세계 각국의 신화나 전설, 민담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인물상과 서사구조는 우리가 오랫동안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 왔는지를 말해준다. 때때로 그런 이야기는 오래됐다는 이유로 진리 혹은 진실처럼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가 옛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역설적으로 이야기는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현재의 우리와 공명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할 때, 비로소 옛이야기는 다시 한번 수명을 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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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산울림 고전극장의 마지막 주자, <팜 파탈; 가려져 버린>은 신화 속 '치명적인' 네 여성의 이야기를 파헤치며 현재와의 연결고리를 찾고자 한다. 수메르 신화의 '인안나', 유대 신화의 '릴리트',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와 '펜테실레이아'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가상의 프로그램인 <히든 죄수>에 소환된다. <히든 죄수>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선입견 속에서 죄수라는 낙인이 찍힌 이들에게 직접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현재의 기준으로 판결을 다시 내려보는 프로그램이다.


인안나와 릴리트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은 자신의 죄 앞에서 당당한 모습이다. 미와 풍요, 전쟁의 여신으로 수많은 도시와 국가에서 숭배되어 온 인안나는 '남편과 시누이 살해죄'를 언급하며 자신이 그들을 죽음의 세상으로 추방한 건 맞지만, 그건 자신을 배신한 두 사람에게 합당한 벌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유디트의 '도의적 살인죄'는 남편인 아담의 심기를 거슬러 이혼당한 데서 시작한다. 둘이 이혼한 후 아담이 이브를 만나 원죄가 생겨났으니 결국 릴리트가 원죄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물론 유디트도 자신의 죄 앞에서 떳떳하다.


두 사람에게 부여된 죄목은 예부터 사람들은 권력을 갖고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는 여성을 두려워했으며, 이들을 벌하려 했다는 걸 알려준다. 따지고 보면 인안나가 내린 벌은 그녀가 신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다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또 유디트를 수용하지 못하고 내친 것은 결국 아담이니 원죄의 원인은 아담에게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인안나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존재로 숭배받아 왔고, 유디트는 최초의 인간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일단 여성으로 묘사된 이상, 여성성이라 여겨지는 속성을 벗어났을 때 어떤 비난을 받았을지는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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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메두사의 발언 차례가 되자 분위기가 전환된다. 메두사는 원래 아테네 신전 사제였던 자신이 어떻게 아테네의 저주를 받아 괴물이 되었는지 들려준다. 실제 여러 자료 속에서 메두사의 이야기는 신화가 으레 그러하듯 메두사가 아테네 신전에서 포세이돈과 사랑을 나눴다거나 포세이돈의 눈에 들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될 때가 많다. 여기서는 메두사의 이야기를 성폭력 피해자의 서사로 그려내며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과의 연결을 시도한다.


마지막 순서는 아마조네스의 왕, 펜테실레이아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이 왕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전쟁을 업으로 삼았다. 혼인 관계가 아니라 왕국 외부 남성과의 일시적인 관계를 통해 대를 이었고, 아들이 태어나면 버렸다. 그래서인지 펜테실레이아에게는 '대량학살죄'라는 죄목이 있다. 펜테실레이아는 덤덤하다. 여성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게 특이할 뿐, 아마조네스의 생활방식은 시대를 고려하면 특별히 더 비윤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조네스에는 남자가 없기에, 아마조네스의 여자들은 자신의 왕국에서 여자가 아닌 사람의 기본값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펜테실레이아는 자신이 사람으로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마조네스뿐임을 깨닫늗다. 아킬레우스와의 전투 끝에 전사했지만, 펜테실레이아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아킬레우스가 그 시체를 희롱하기 때문이다. 아마조네스 바깥에서 '전사'는 누구든 희롱할 수 있는 '여자'로 전락한다.

 

앞서 인안나와 유디트가 여성성을 벗어난 여성이 어떻게 죄인이 되었는지 보여줬다면, 메두사와 펜테실레이아는 여성이 성폭력 피해자가 될 때 사회가 그 여성에게 어떤 멍에를 씌우는지 보여준다. 이들의 이야기를 비롯한 많은 옛이야기 속에서 여성이 겪는 성폭력은 무언가에 대한 형벌로 그려지고 심지어는 그 자체로 죄 취급을 받는다. 이러한 이야기가 그저 옛이야기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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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나칠 만큼 명쾌하다. 토크쇼라는 형식을 빌려 각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전개 방식 역시 직접적이다. 특히 메두사와 펜테실레이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강연을 하듯이 인안나와 유디트가 하나하나 문제를 짚어주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이 연극이 연극으로서 유효한 이유는 이렇게 대놓고 말하고 외쳐야만 알아듣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연극을 보며 마음속에 떠오른 '아직도 이런 얘기를 해야 하나'라는 물음은 극장을 나와 마주치는 수많은 헤드라인 앞에서 '여전히 한참 멀었다'는 답으로 돌아온다. 사실은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무기력해질 때도 있다. 까마득한 신화 속에서 읽어내는 여성혐오가 오늘날의 여성혐오와도 통한다는 것이 씁쓸하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묻게 되는 순간이다.

 

다행히 극은 희망적으로 마무리된다. 수메르의 고대 여신인 '남무'가 심판관으로 등장해 어수선한 장내를 정리하고, 네 명의 여성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다. 남무는 죄인으로 여겨지던 이 여성들이 앞으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그래도 지금보다 긍정적인 미래를 전망한다. 오래 살아남은 이야기는 그렇게 또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연극이 희망적으로 끝났으니 나도 희망을 안고 공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던 장면을 언급하며 글을 마친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조용히 덤덤하게 이야기하던 메두사가 주변의 응원에 힘입어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마침내 내게는 죄가 없다고 크게 외치는 장면이다. 이때 나머지 여성들도 네 잘못이 아니라며 함께 소리쳐준다.

 

모든 것이 시공간을 초월해 쉽게 연결되는 시대에 연극은 여전히 한정된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극장에서 마주치는 순간은 다른 것보다 늘 기억에 오랫동안 강렬하게 남는다. 네겐 죄가 없다고 모든 배우가 함께 외칠 때 극장 전체를 에워싸던 에너지가 있었다. 그 순간 관객과 배우 모두 메두사의 이야기에 공명했다. 무기력해질 때마다 그 기억을 곱씹을 것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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