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디지털과 소통해 보기 - 미구엘 슈발리에, 디지털 뷰티 시즌2

0과 1 그 너머를 보다
글 입력 2023.08.2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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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아트의 거장 미구엘 슈발리에.


“한계 없는 가능성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기술의 본질은 여전히 나를 끌어당긴다.”


미구엘 슈발리에는 디지털 예술의 선구자이자 프랑스의 대표적인 미디어아트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자연과 기술의 관계,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네트워크와 정보 흐름에 대한 관찰 등에 대한 주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1980년대 이후부터 그는 오직 컴퓨터에만 집중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는데 특히 LED/LCD 화면, 3D 프린팅 조형물, 홀로그램 등으로 투영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바로 그의 작품을 지금 종로구에 위치한 “아라아트센터”에서 2024년 2월 11일까지 진행되는 [미구엘 슈발리에: 디지털 뷰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라아트센터는 특히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개방되어 있는 구조를 통해 굉장히 거대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옛날부터 기하학적인 예술을 좋아하곤 했다. 직선과 원, 다각형으로 이루어진 일정한 형태가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면 나는 그것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만다. 디지털이 만들어낸 기하학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포스터는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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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의 첫 작품은 지하 1층부터 시작하는 <그물망 복합체>이다. 3개의 면이 디지털 화면으로 채워진 *재너러티브 인터랙티브 VR 작품이다.


*<재너러티브 아트>란 예술가가 시스템을 사용하여 어떤 예술 행위를 하는 것으로 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자동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랙티브>는 관람객에게 예술가가 슬며시 미끼를 던짐으로써 이것에 호기심을 나타내는 관람객의 숨겨진 내면의 욕망을 밖으로 도출하는 과정이다.

*< VR(가상현실) >은 특정한 장소나 상황을 3차원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하여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작품을 설명하는 단어들은 꽤나 생소하면서 어딘가 이해가 되면서도 잘 와닿지 않는다. 사실 전시에 처음 입장한 순간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크기의 3면의 디지털 화면이 무엇보다 다채로운 색감으로 나의 세계를 가득 채워버리기 때문이다. 찰나에 이뤄지는 몰입. 잠시 현실을 잊고 가상 세계 속에서 한발 내딛는 순간 디지털 화면이 나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그때 떠올랐던 하나의 단어 ‘소통’. 그리고 AI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 ‘her’. 나는 아마 이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디지털과 소통을 해 본듯 했다. 고작 행동과 반응만으로도 내가 소통이라고 느끼는 점은 문득 어떤 생각에 빠지는 지점이기도 했다.


나의 행동에 반응이 온다는 것. 인간은 그것만으로도 사랑을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그물망 복합체의 벽>. 평면의 벽에 형광실을 이리저리 연결해놓은 작품이었다. 또한 1층부터 쭉 내려와 있는 그물망 작품은 일종의 디지털 네트워크를 표현한 것이다. 연계되어 있다는 것,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것을 실제로 마구 얽힌 그물망을 통해서 인식했을 때 디지털의 복잡성을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인터랙티브 작품들이 이어졌다. <리퀴드 픽셀>과 <세상의 기원>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이 지점부터 나는 디지털과 소통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보았다. 내 행위에 대한 반응들이 모두 비슷한 형태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서 독자의 상상력이 발휘되지만 확실히 그건 미끼 정도에 그치는 듯했다. 단순한 호기심 잠깐의 설렘. 나에게 그 이상의 의미가 오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겠거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이고 흥미로운 작품들인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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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3층과 4층에 걸쳐있는 50-60년대 옵아트에 영감을 받아 재현한 14m 높이의 <디지털 무아레>와 바닥 전체에 펼쳐져 있는 <매직 카페트>는 같은 공간에 전시된 작품으로 앞선 작품들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전시의 꽃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작품들이기에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며 전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첫 번째 작품은 <그물망 복합체>의 3면이 왼쪽, 정면, 오른쪽이었다면 이 두 작품의 만남은 정면, 오른쪽, 그리고 바닥이라는 것에 차이가 있었다. 생각보다 몰입도는 첫 번째 작품이 더 높았지만 움직이는 바닥은 역시 항상 신선한 무언가임에 틀림없다.


그 위에 선다면 우리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동료 작가 패트릭 트레셋과 협업 작품으로 다섯 개의 팔을 가진 드로잉 로봇의 퍼포먼스로 그림을 그려내는 ‘어트랙터 댄스’를 볼 수 있으며 얼굴인식 기능이 있는 감시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방문객의 초상화를 그려내는 ‘기계의 눈’이라는 작품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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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은 정확하게 0과 1이라는 수치로 표시가 가능하다. 애매모호하지 않고 정확한 것이 장점인 것이다. 단점이 있다면 아날로그시계는 바늘을 통해 5시 5분과 5시 6분 사이의 시간을 가리킬 수 있지만 디지털시계는 오직 5시 5분과 6분만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5분과 6분 사이가 없는 디지털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미 너무 정확하기에 자세히 보거나 뜯어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까. 


미구엘 슈발리에의 작품들은 내게 디지털을 가깝게 보게 했다.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을 3차원으로 보는 순간. 비로소 내가 이런 것들에 둘러싸여서 살아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디지털 세계에 살면서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디지털 그 자체. 그것은 내가 세계를 느끼는 데에 있어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디지털이 가지고 있는 차가움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0과 1이라는 수치 그 너머를 잠시나마 볼 수 있는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디지털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디지털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전시 [미구엘 슈발리에: 디지털 뷰티]였다. 

 

 

[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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