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생을 사랑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아요! - 앙리 마티스, LOVE & JAZZ

사랑할 수 없어도 사랑했던 앙리 마티스의 작품과 함께
글 입력 2023.08.1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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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 메인포스터_벡터ver..jpg

 

 

20세기 근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노년기 여러 번의 수술과 건강 악화로 시집을 위한 작은 크기의 그림을 그리거나 가위와 종이를 이용한 콜라주 형식의 컷 아웃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현대인들에게도 친숙한 <재즈>와 로사리오 성당의 디자인, 벽화 등이 마티스의 노년기를 대표하는 주요 작업들이며, 기존의 회화나 조각과는 다른 예술형식을 탄생시켰다고 일컬어진다.

 

이번 앙리 마티스 특별전은 내년 서거 70주년에 앞서 그의 인생 후반부와 변화한 작품 세계를 조망하고 현재까지도 미치고 있는 예술적인 영향력에 대해 짚어보기 위한 자리로, 판화, 아트북, 포스터 등 15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또 앙리 마티스의 직계 후손인 장 매튜 마티스가 세운 ‘메종 마티스(Maison Matisse)’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현대작가들과 협업으로 만들어낸 마티스 헌정 에디션, 소품들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고 있다.

 

 

 

#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볼품없을까.”

 

불만이 가득한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보면 위와 같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큰 사고를 당해서? 내가 원하는 만큼의 목표치를 이루지 못해서?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마치 요즘에는 서로 누가 더 불행한가를 겨루는 듯한 양상이 보인다. 더 불쌍한 사람에게 더 큰 동정이 주어지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 동정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더 불쌍하게 보이게 만들고 싶은 것일까?

 

여기 또 다른 불행한 작가, 앙리 마티스가 있다. 그는 여러 번의 수술과 건강 악화로 인해 힘든 노년기를 보냈다. 그의 병은 십이지장암, 그리고 70살에 그의 아내 아멜리와도 헤어진 후 고독한 노년기를 보내게 된 것이다. 아마 그도 그의 인생이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예술가들은 그들의 심리 상태를 캔버스에 그대로 표현하기에 앙리 마티스의 노년기 그림도 당연히 어둡고 우울할 것이라 예상한 후, 전시회장에 들어섰다. 그러나 내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

 

 

3-3. 가면이 있는 대형 장식.jpg

 

  

그의 작품 <가면이 있는 대형 장식>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그가 십이지장암 수술을 여러 차례 받은 후 그린 그림이다. 가위와 종이를 활용한 ‘컷 아웃’ 방식을 주로 사용했던 앙리 마티스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멕시코를 배경으로 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가 떠올랐다. 영화 <코코>에서는 죽은 자들을 위한 축제에서 위 그림과 비슷한 모양을 가진 종이를 만들어 그날을 기념한다. 즉, 앙리 마티스의 <가면이 있는 대형 장식>도 무언가를 기리기 위해 직접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두 차례나 힘겨운 수술을 받고 난 후였지만, 앙리는 여러 색깔의 네잎클로버를 캔버스 위에 피웠다. 네잎클로버는 본디 초록색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에는 다양한 색깔의 네잎클로버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는 마치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가 누군가에게는 다른 색깔과 의미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바로 수술을 받고,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는 앙리 마티스일지라도 그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세상의 조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대형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내 방안에 걸어두고, 부정적인 생각이 스칠 때마다 나만의 네잎클로버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인생의 조도를 결정하는 것도 결국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인 불행은 없다. 자신이 그리고 남이 만드는 불행이 가득한 시선이 있을 뿐이다. 앙리 마티스는 그 깊은 뜻을 조그마한 종이 끝에 포장한 것이다.

 

 

2-2. 이카루스.jpg

 

 

앙리 마티스가 현재까지도 저명한 작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특별히 그의 작품은 당시 유행했던 회화와 조각의 선로를 따라가지 않았다. 이 점 또한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예술의 종착점을 직접 개척한 모습이 드러난다.

 

이 전시를 보기 전 앙리 마티스의 <이카루스>를 떠올렸다. 관람객들마다 <이카루스>를 해석하는 방향은 정말 다양하다. 춤을 추는 모습 같기도,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 같기도 한 검은 형체는 앙리 마티스의 거침없고 자유로운 화풍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티스는 아마도 일생을 살아가면서 <이카루스>같은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다양하게 비치고 싶고, 그 현상이 주는 평안함과 규칙 속에서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능력은 현명함이 아니라, 아마도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정확히 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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