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만의 ‘파랑’을 찾아서 - G는 파랑 [도서]

글 입력 2023.11.1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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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는 파랑을 읽고 바쁜 일상을 핑계로 오랜 시간 방치해둔 일기를 다시 펼쳤다.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올해를 다시 기록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음악을 소재로 하는 책이었지만, 담겨있는 음악보다도 그 음악들을 빌려 전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 더욱 마음이 갔다. 거창하기보다는 소소하고 특별한 듯 보이면서도 결국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제야 비로소 진정으로 음악을 즐기는 방법을 배운 나는 매일의 일상에 제 나름의 배경음악을 입혀보고자 한다.

 

하루 끝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하기 위해, 음악을 통해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먼지 쌓인 노트를 다시 펼친 이유이다.

 

 

IMG_2092.JPG

 

 

어렸을 때 저의 꿈은 ‘이야기가 많은 삶을 살기’였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솔직하게 표현하고, 사랑하는 음악이 생기면 시원하게 뛰어들다 보니 책이 될 만큼의 이야기가 모였습니다.  (중략)  글을 쓸수록 기록과 기억의 힘을 느낍니다. 기쁘고 슬픈 이야기를 살아내고 기록한 나에게, 그리고 그 기억을 감상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합니다.

 

207p. 맺으며 中

 

 

 

가사 없는 음악을 감상하는 법


 

가사와 멜로디 중 무엇을 더 신경 쓰는 편인가?

 

내 맘에 착 붙는 곡은 결국 이 둘을 포함해 모든 구성요소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경우이겠지만, 굳이 한 가지를 꼽는다면 가사에 더 집중하는 편인 것 같다.

 

대개 첫인상을 좌우하는 건 곡이 지닌 멜로디이지만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찾아 듣는 곡은 가사가 인상적인 곡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별히 가사가 마음에 드는 곡들은 앨범 소개를 찾아 가사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인지, 내가 느낀 것과 작사가의 의도가 맞닿아 있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을 즐기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가사일지라도 멜로디가 취향에 맞지 않는 곡은 플레이리스트 어딘가를 떠돌다가 결국 음원 사이트가 제공하는 용량을 이기지 못하고 정리 당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멜로디보다는 확실히 가사를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음악이란 무엇인가’ 고민했습니다. 거창하고 멋지게 대답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음악이란 듣기 좋은 소리입니다. 그뿐입니다. 여러분만의 듣기 좋은 소리를 찾기를 바랍니다.

 

15p. 음악 감상법 中

 

 

음악 취향을 넓히고자 하는 욕구에도 불구하고 돌고 돌아 결국 익숙한 장르와 귀 익은 음악들을 찾게 된다. 특히 가사가 없는 음악들은 교양을 쌓고자 하는 의지와는 달리 좀처럼 친해지기가 어렵다. 여전히 클래식 음악을 일상적으로 향유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가사의 도움 없이 곡이 지니는 메시지와 의미를 직관적으로 느끼는 방식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중이다.

 

음악 에세이는 처음이라, 게다가 여전히 낯설기만 한 클래식과 재즈 장르인지라, 피아니스트는 음악을 어떻게 감상하는지가 궁금한 한편 이해하기 어려우면 어쩌지 하는 긴장이 들었다.

 

하지만 전문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음악과 관련된 일화와 개인적인 감상을 소개하는 책을 읽으며,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일상에서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 하나를 익히게 됐다. 장르가 클래식과 재즈였을 뿐, 음악을 즐기는 방식에는 특별한 규정이나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어쩌면 이제는 가사 없는 음악을 즐길 준비가 된 것도 같다.

 

늘 그랬듯 의미에 대한 집착과 정답을 향한 강박 때문에 음악을 음악 자체로 즐기기보다 그 안에서 특정한 무언가를 포착하고 창작자의 의도를 읽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얽매여왔던 건지도 모르겠다. 구체적인 가사가 존재하는 곡들과는 달리 감각, 분위기, 느낌 등 추상에 의존해야 하는 음악들은 ‘정답’을 의식하는 순간 어려워졌다.

 

 

무지를 인정하기 겁나서 무시를 선택했던 순간들이 부끄러웠습니다. 현대 음악을 계속 바흐, 모차르트와 비교하며 감히 평가했던 것이 바로 현대음악을 즐기지 못했던 이유였습니다.  (중략)  다만 현대 음악은 너무나 다양하고 넓은데 하나의 소리로 정의하고 미워했던 시간들이 기억났고, 그 실수를 인정하니 이런 음악도 보이는구나 하는 벅참을 느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고 순수하게 감상하고 좋아할 수 있는 법을 배웠습니다.

 

113-114p. 현대음악 中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일 수 있지만 감상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라는걸, 그래서 특정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G는 파랑에 담긴 한 피아니스트의 솔직한 이야기들은 전한다.

 

그냥 느껴지는 대로 떠오르는 그대로 솔직한 감상을 적어보는 것.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가사 없는 음악도 충분히 내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만의 '파랑'을 찾아


 

어떤 이유나 의미를 붙이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십 대 중반이 되어 내린 결론은 결국,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거다.

 

굳이 이유를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때론 찾은 그 이유들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나서 붙인 변명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를 붙임으로써 좋아하는 마음이 더욱 명료해졌을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 이유가 없었더라도 좋아했을 확률이 높은 것들이다.

 

‘파랑’을 좋아하는 것처럼, 이유를 붙이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별 이유 없이 그냥 좋은 것들 말이다.

 

좋아하는 것들과는 달리 싫어하는 것들에는 핑계가 많았다.

 

벌레와 귀신처럼 ‘두렵다’는 간단한 서술만으로도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이유들도 있지만,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다는 많은 이유들은 사실 나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그럴싸한 탈을 쓴 핑계들이기도 했다. 실은 지독한 편견과 괜한 고정관념 때문에 시도도 전에 싫은 것들이 돼버린 이유 없는 '불호'들이다.

 

한 해를 마무리할 시점에 와 돌이켜보니 그저 단조롭게 지나간 줄만 알았던 일상 속에도 여러 새로움이 존재했다. 생각보다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많이 했던 것이었다.

 

어렵고 낯설다는 이유로, 때로는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피해왔던 경험들은 대체로 생각보다 괜찮았고, 때론 이제껏 알지 못했다는 것이 후회가 될 정도로 좋았다. 이유 없이 그냥 좋은 것들과는 달리 이유 없이 싫은 것들은 결코 삶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다.

 

G는 파랑에 수록된 곡들 중 쳇 베이커의 ‘올모스트 블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재즈는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스쳐 지나왔던 이름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이번 기회에 듣지 않았다면 이 역시 이유 없이 싫어했을지 모를 '좋은 것'이었을 테다.

 

이유 없이 좋아하는 ‘파랑’ 때문에 구미에 당겼던 책의 제목에서 파랑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했다. 청량한 이미지 때문에 파랑을 좋아하지만, 파랑의 영어 이름인 ‘블루’의 또 다른 뜻은 ‘우울’을 나타내기도 한다.

 

굳이 내 것으로까지 수용하고 싶지 않았던 그 음울한 이면을 ‘올모스트 블루’를 통해 조금은 좋아할 수 있게 된 듯하다. 그냥 음악의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는 별스럽지 않은 이유로 말이다.

 

 

그래도 그중에 가장 좋아하는 색은 파란색이었습니다. 파란색은 내가 칠한 것보다 더 깊은 느낌이 들어서 테두리 바깥으로 조금 삐져나와도 괜찮았습니다. 색이 밖으로 흘러나와도 물이 조금 넘치거나 구름이 개어 하늘이 더 커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에게 G는 파란색입니다. G장조가 중심이 되는 곡에서는 다채로운 파랑이 들립니다.

 

34p. G는 파랑 中

 

 

나의 취향을 ‘파랑’이라고 정의해 보고 싶다. 결국 나를 형성하는,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의 모임이 ‘파랑’이라는 색으로 묘사됐으면 좋겠다.

 

파랑이 지니는 다양한 모습처럼 다채로운 취향을 지닌 사람이 되기를, 이유 없이 싫은 것들보다는 이유 없이 좋은 것들이 훨씬 많은 삶을 살기를.


나만의 ‘파랑’을 찾아 오늘의 G 건반을 눌러본다.

 

 

 

김소형.jpeg

 

 

[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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