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잉홈프로젝트 Going Home Project: Symphonic Dance

글 입력 2023.08.0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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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우리나라 클래식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던 고잉홈 프로젝트가 올해에도 돌아왔다. 작년에 있었던 공연 소식을 접하긴 했으나 도저히 일정을 맞출 수가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었는데, 올해 공연 소식을 접한 순간 어떻게든 일정을 맞춰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8월 초에 열리는 고잉홈 프로젝트의 일정을 확인하고 미리 준비했다. 이번에도 놓치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올해 공연은 8월 1일부터 3일까지 열렸다. 첫 날인 8월 1일에는 신세계라는 타이틀이 걸렸기에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을 포함하여 거슈윈의 랩소디인 블루, 레너드 번스타인의 심포닉 댄스가 무대에 올랐다. 둘째 날이었던 8월 2일은 볼레로: 더 갈라 라는 부제 하에 다양한 작품들의 부분 부분을 모아 관객들에게 다양하게 들려주는 형태로 무대가 꾸며졌다. 아마 첫째 날과 둘째 날의 무대도 관객들의 호응이 대단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간 공연은 8월 1일, 2일의 무대가 아니었다. 바로 8월 3일, 심포닉 댄스가 내가 찾은 올해의 고잉홈 프로젝트 무대였다. 첫 날이나 둘째 날이 좀 더 집중받을 것이 분명했지만, 나는 세 번째 무대에 속절없이 끌렸다.


 



< PROGRAM >


이사크 두나옙스키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 서곡

I. Dunayevsky Overture to the movie "Children of Captain Grant"


나이젤 웨스트레이크 "스피릿 오브 더 와일드"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

N. Westlake "Spirit of the Wild", Concerto for Oboe

I. Crotchel=96- Cadenza

II. Crotchet=96

III. Tranquillo (Crotchet=48)-Liberamente-Crotchel=96

IV. Agitato (Crotchet=96)

오보에 | 함경


INTERMISSION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심포닉 댄스, 작품번호 45

S. Rachmaninoff Symphonic Dances. Op.45

I. Non Allegro

II. Andante con moto. Tempo di Valse

III. Lento assai-Allegro vivace

지휘 | 발렌틴 우류핀

 




우선 고잉홈 프로젝트의 마지막 공연은 프로그램이 추가되었다. 원래 당초의 계획으로는 나이젤 웨스트레이크의 작품과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만 연주될 예정이었는데, 공연 당일에 리플렛을 확인해보니 이사크 두나옙스키의 작품이 추가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름만 봐도 러시아 사람인 걸 알 수야 있었지만 처음 보는 음악가였다. 공연이 다 끝난 후에 찾아보니, 그는 소련 시절의 저명한 영화 음악가이자 지휘자였다고 한다. 이번에 연주된 두나옙스키의 작품은 영화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의 서곡이었다.


강렬한 큰 북의 두드림과 심벌즈의 사용, 그리고 금관의 웅장한 소리로 포문을 연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 서곡은 짤막한 분량 속에 다이내믹이 녹아 있었다. 대편성 오케스트라로 들어서 그런지 휘몰아치듯 객석을 사로잡는 그 소리가 더욱 풍부하게 느껴졌다. 실내악, 그것도 현악과 피아노 위주로 다녔던 나에게 간만에 듣는 관악 파트와 타악기부의 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자극적이었다. 아무래도 오케스트라에 있어 각 파트가 모두 중요하지만, 관악 파트가 곡 전반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할 역할을 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인 것 같다. 이번에도 너무 자연스럽게, 관악 파트로 시선이 자꾸 쏠렸다. 마지막에 짧고 굵은 음으로 끝맺어지는 그 순간까지, 곡의 극적인 분위기가 생생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


이어진 1부의 두 번째 곡은 나이젤 웨스트레이크의 스피릿 오브 더 와일드였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는 초연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만큼 독특한 작품인 것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무대를 통해 실제로 들어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그런데 작품의 배경만 특이한 게 아니라 편성도 굉장히 남달랐다. 첫 곡이 끝나는 순간, 금관은 호른 빼고 모든 악기가 다 빠졌고 목관은 모조리 다 빠져나갔다. 현악도 규모가 매우 줄어들었다. 이에 반해 건반 악기는 타악기 포함 세 개가 있었고, 타악기부는 모두 재석한 상태였다. 굉장히 독특하지 않은가.


그냥 혼자서 생각해보기엔, 아마도 오보에 협주곡이다보니 오보에의 음색을 더욱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 편성을 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관 파트의 소리가 솔리스트의 소리만 빼고 다 없어진 셈이 되면, 유일한 목관 소리인 솔리스트의 오보에 소리가 더욱 도드라질 수밖에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음악이 시작되니 오보이스트 함경에게 확실히 집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선 나이젤 웨스트레이크의 작품은 시작부터 카덴차여서 놀랐다. 긴 호흡으로 무수히 많은 음을 연주해야 했는데 오보이스트 함경은 그 긴 흐름을 주저없이 잘 짚어나갔다. 차라리 강렬하게 소리를 내뱉는 형태라면 연주하는 입장에서 더 편할 텐데 소리를 부드럽게 그리고 너무 크지는 않게 내야 해서 연주하기에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것을 너무나 유려하게 해냈기에 시종일관 눈부신 연주였다. 1악장 말미에 거의 된소리가 섞일 정도로 오보에를 강하게 부는 대목이 있었는데, 내가 함경의 입장이었따면 그 순간에 속시원했을 것 같다는 우스운 생각이 잠시 들었다.


아무래도 나이젤 웨스트레이크가 영화 음악 작업을 많이 했었기 때문인지, 음향 효과들이 전반적으로 영화 음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현대음악답게 예측가능한 조성으로 흘러가는 음악이 아니라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한 소리들이 전개되었는데, 그 사이사이 타악기를 사용하는 방식이나 음향의 강약을 조절하는 게 영화 음악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듯하다. 비범하고 인상적인 곡이었다. 전반적인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유기적인 것도 그렇고, 함경이 전하는 그 다이나믹한 오보에는 정말 탁월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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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온전히,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닉 댄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웨스트레이크 작품의 소규모 편성에서 다시금 대규모 편성으로 확장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새삼 첫 곡 때의 구성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라흐마니노프를 할 때에 보니 정말 대편성이 아닐 수가 없는 구성이었다. 피콜로도 들어와 있고, 매번 보기는 어려웠던 잉글리쉬 호른이나 콘트라 바순도 보였다. 심지어 심포닉 댄스에는 색소폰까지 들어와 있으니까 편성이 얼마나 크고 다채로운지에 대해 더 말해 무엇할까. 모든 연주자들이 무대 위에 나선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차올랐다.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교향악 작품인 심포닉 댄스의 1악장 주제는 사실 심플하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는 이 명료한 주제를 다양하고 자유롭게 발전시켜서 풀어낸다. 그 비범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놀라운 게 바로 이 1악장이다. 마치 정오의 활기찬 에너지가 생동하는 듯한 이 악장을, 오케스트라는 풍성하게 극대화시켰다. 1악장의 기본 베이스인 위풍당당한 선율을 관악 파트에서 힘 있는 소리로 내세우고, 이를 뒷받침하는 현악부의 선율이 어우러지면서 1악장 논 알레그로는 아름답게 피어났다. 1악장의 묘미 중 하나인 알토 색소폰은 브랜든 최가 맡아서 연주해 주었는데, 그 풍부한 소리로 1악장이 더욱 살아나서 인상적이었다.


뒤잇는 2악장은 왈츠 빠르기로 연주하라는 지시어가 붙어 있는 악장이다. 도입부에서부터 관악이 강렬한 멜로디를 연주하고 현악이 왈츠 리듬을 연주하는 그 대비가 매우 즐거웠다. 왈츠의 느낌은 살아있되, 뻔한 왈츠로 흐르지 않는 흐름은 어떤 의미에선 라벨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와는 또 다른 라흐마니노프만의 색채가 한껏 담겨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1악장보다도 더 즐길 수 있는 악장이기도 했다. 뻔한 듯 뻔하지 않은 매력적인 악장의 느낌을 잘 살려 전해주는 발렌틴 우류핀과 고잉홈프로젝트 오케스트라 역시 가히 발군이었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닉 댄스가 절대 잊혀지지 않을 역작으로 손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3악장에 있다. 3악장은 렌토에서 알레그로의 대비가 매우 극적으로 일어난다. 여기에는 라흐마니노프가 그레고리안 성가 Dies Irae의 선율을 차용하면서 교향악에서 성가의 음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안배한 패시지가 있다. 실제로 이번 무대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전율이 돋았던 순간이 바로 이 대목에서였다. 극과 극을 오가는 다이내믹을, 발렌틴 우류핀은 섬세하고도 절묘하게 몰아갔고 고잉홈프로젝트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이를 아주 면밀하게 풀어냈다. 그랬기에 대미를 장식하는 그 순간까지, 객석은 최고의 몰입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고잉홈프로젝트 오케스트라 단원 개개인의 뛰어난 역량과 발렌틴 우류핀의 섬세한 지휘로 인해 라흐마니노프 인생 최대의 역작인 심포닉 댄스가 그야말로 경이롭게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뻔하게 느낄 수도 있는 라흐마니노프만의 낭만과 그의 노골적인 클라이막스를, 이번 고잉홈프로젝트의 무대에선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알면서도 압도되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해일처럼 순식간에 덮어오는 그 경탄의 순간에 감동받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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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웠던 라흐마니노프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정말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연주였기에 객석의 그 누구도 화답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관객들이 뜨겁게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지휘자 발렌틴 우류핀에게 호응하자, 커튼콜을 마무리하는 듯하던 발렌틴 우류핀은 다시금 무대로 나와 관객들 앞에 섰다.


그가 한국말로 인사할 때에는 객석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후 우류핀은 관객들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넸는데, 그가 한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지휘자도 독주자도 없고, 우리는 그저 음악가일 뿐이다'라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앵콜로 지휘자였던 발렌틴 우류핀이 클라리넷을 맡으면서 클라리넷과 피콜로, 플루트에 하프만 더하여 짧고 아름다운 작품을 연주해주었다. Anatoly Lyadov의  The Music Box Op.32였다. 모두가 그저 뮤지션일 뿐인 무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Going home) 본연의 소리를 들려주는 그 짧은 순간이 너무나 황홀했다. 그 눈부신 환희에 가슴 한 켠이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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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잉홈프로젝트의 마지막 무대밖에 갈 수 없었지만, 마지막 무대라도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내년에는 고잉홈프로젝트가 어떤 프로그램 구성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줄까.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아티스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우리가 쉽게 들을 수 없는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들려주면 좋겠다. 이번 공연 일정 중에서 개인적으로 그래서 가장 끌렸던 게 마지막 날의 심포닉 댄스 무대였으니, 내년에는 이를 뛰어넘는 무대를 준비해주리라 믿는다.


지휘자 혹은 독주자.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음악가로서 종횡무진하는 수많은 연주자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내년 고잉홈프로젝트를 기다려야겠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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