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글 입력 2023.07.10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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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의 작가는 10대 후반에 떠난 어학연수를 시작으로 20년 넘게 머물며 거주지가 된 프랑스 외에 '이탈리아'를 품고 있다. 오래전 엄마와 함께 떠난 이탈리아 여행이 계기가 되어 작가에게 떠올리기만 해도 좋아서 입꼬리가 올라가고, 그곳에 갈 수 있는 언젠가를 생각하면 당장의 고된 시간도 그럭저럭 견딜 만해질 정도로 특별한 나라가 되었다.

 

이탈리아에 대한 애정이 많은 만큼, 작가는 프랑스에 거주하며 기회가 생길 때면 이탈리아를 방문했다. 그러나 이탈리에서 작가는 늘 구경꾼이자 관광객이었으며, 완벽한 타인이자 외부인이었다. 통하지 않으면 관계를 가로막는 '언어'라는 유리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탈리아어 공부를 시작한다. 일상의 쓸모도, 직업적 메리트도 없지만 마음의, 열정의, 즐거움의 외국어를 배우며 스스로 주도하는 삶의 영역을 더 넓게 키우기 위해서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작가의 이탈리아어 학습기를 읽으며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어와 관련된 기억이 떠올랐다. 작가처럼 이탈리아와 연관된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이탈리아어로 고통받았던 기억이다.


과거 한 이탈리아 업체의 콘텐츠 제작 업무를 맡았을 때였다. 콘텐츠 제작을 위해 회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여 관련 자료를 받아보았는데, 영문 자료인 줄 알았던 자료들이 모두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었다. 영문 자료를 요청하였으나 영문으로 준비된 자료가 마땅치 않아 마지막 보루로 번역기를 사용해 이탈리아어를 영어로 번역하고, 그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여 콘텐츠를 제작했었다. (이탈리아어를 바로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보다 영어로 번역하는 게 더 이해하기 좋았다.) 제작한 콘텐츠 전체가 업체쪽 컨펌이 되어 무사히 발행된 것을 보면 이 무식한 방법이 통하긴 했었던 것 같다.


당시 언어의 한계에 계속 부딪혀 답답한 마음에 '내가 진짜 이탈리아어 배우고 만다'라는 생각이 한 가득했다. 회화는 안 되더라도 대략적인 글의 내용이라도 파악하고 싶어 진지하게 회사에 이탈리아 교육을 요청하려 했지만, 업무에 치여 퇴근도 간신히 하며 잠도 부족하던 시절이라 실행에 옮겨지진 못했다.


그리고 작가의 이탈리아어 학습기를 읽으며 '이럴 거면 내가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말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무모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게 그렇게 간단하고 빠르게 되는 일이 아닐뿐더러 이탈리아어 문법의 세계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이다.

 

 
상대에게 "무슨 일을 합니까?"라고 묻는다는 것은 fare(하다)의 동사변형, 즉 나/너/그, 그녀/우리/너희들/그들이라는 주어에 따라 여섯 가지의 동사변형(Faccio, fai, fa, facciamo, fate, fanno)을 다 이해하고 숙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위의 글만으로도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사변경과 단어를 알아야 하는지 감조차 오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겁도 없이 단기간에 새 언어를 배워 일할 생각을 했다니. 당시엔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커 언어를 배워서라도 그 스트레스로부터 빠져나오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나 보다.

 

당시 이탈리아어 공부를 마음먹게했던(실행하지는 못했지만) 동기가 업무 스트레스 해소였던 나와는 달리 '좋아서' 이탈리아어 공부를 시작한 작가의 언어 여정은 동기에 따른 결과가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용기를 내어 문화원에 찾아가고, 일상의 틈을 내어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볼로냐로 일주일간 어학연수를 떠나기까지 한 작가의 이탈리아어 여정은 책을 읽는 동안 지속하여 언어 공부에 대한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부여해 주었다.

 

책에서 느낀 긍적적 동기부여에는 이탈리아어가 작가에게 내면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도 한 몫했다. 알파벳도 읽을 줄 모르던 작가는 1년이란 시간에 걸쳐 이탈리아어로 메일까지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없던 신뢰가 생겼고, 더 많은 일들이 가능하다고 여기게 되며, 결론적으로 스스로를 조금 좋아하게 됐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즐거움이 커지며 많은 관계에서 자유로워지기도 했다. 닮고 싶은 어떤 세계에 닿기 위해 시작한 공부가 작가의 삶의 지향점에 더 가까워지도록 이끈 것이다.


누군가에는 그저 언어 공부일 수 있고, 언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를 메리트 없이 긴 시간만 투자하는 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언어를 배우는 시간동안 작가의 세계는 계속하여 커져 나갔다.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에 솔직하게 반응하고 행동함으로써 작가는 알지 못했던 더 넓게 아름다운 세계를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업무적인 케이스 외에도 언어(주로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이 많았다.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에 거부감도 없었다. 그러나 항상 필수적으로 언어를 배워야 했던 상황은 점점 언어에 대한 피로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책을 통해 작가가 선사한 '좋아서 하는 외국어 공부의 맛'은 언어공부가 피로감만이 아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즐거움'이 목적인 외국어 학습은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다. 작가는 이탈리아어가 한 없이 무거웠던 한 주에서의 탈출이자, 온갖 쓸모로 무장한 프랑스어로부터의 도피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작가의 경험은 내가 느낄 '좋아서 하는 외국어 공부의 맛'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내가 느낄 그 맛도 쓸모로 자유롭고 달콤하며, 나의 세계가 넓혀나가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기를 바라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김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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