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G에게

든든한 사랑을 담아, H로부터
글 입력 2023.07.0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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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에게

 

스물둘이었다. 온몸이 부서져라, 여행을 다녀도 지칠 줄 몰랐던 시기는 아마 그때가 유일할 것이다. 그리고 이 여행의 시작과 끝엔 언제나 단짝 G양이 있었다. G양은 나보다 삼 년 먼저 태어났으나, 같은 달엔 내가 하루 먼저 빨리 나왔다. 생일이 고작 하루 차이라는 걸 아는 순간, 필연적으로 우리 둘은 서로의 생일을 잊어버릴 일은 없으리라, 바로 붙은 날짜처럼 서로의 단짝이 되어버릴 거라, 이미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처음 만난 G양은 웃을 때마다 양 볼의 보조개가 쏙 들어갔는데, 그럴 때마다 보여준 상큼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보조개만큼 단정한 포니테일 머리를 묶고, 편한 옷을 즐겨 입던 그녀의 모습은 하이틴 영화에 나올법한 주인공처럼 보였다. 덜컥 교환학생을 지원하고, 처음으로 집을 떠나, 미국행 비행기를 탔던, 모든 게 어색하던 나의 모습과는 분명히 달라 보였다.


밝던 G의 모습은 지난날 나의 암울했던 모습과도 대조되었다. 밤마다 눈물이 나서 몰래 숨죽여 울던 때 나의 모습과 말이다. 아침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점점 힘이 들어, 이젠 ‘나’로 살기 싫다는 생각까지 다 달았을 때, 나는 결국 도피의 목적으로 교환학생에 지원했다. 늪에서 나오려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빠져드는 것처럼, 나의 걱정은 어지러운 늪과 같았다. 이런 늪 속에 있던 나에게 그녀는 노를 젓고 운전하는 선장과 같은 존재였다.


내가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던 아주 간단한 방법은 G와 함께 웃는 것이었다. 그녀와 있으면 나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입을 가리고 호호거리는 웃음도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웃음이 정말로 팡팡 터져 나와 입을 가릴 틈도 없었기 때문이다. 웃느라 배와 얼굴 근육이 아플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는 아무런 걱정 없던 때로 돌아가 맘껏 웃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밝게 웃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돌아볼 정도로, 진심으로 행복해서 웃음이 났다.


그녀의 웃음은 전염성이 있었고, 그녀의 입담은 그녀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아무리 사소한 주제일지라도, 늘 뒷이야기가 궁금하도록 얘기를 곧잘 했다. 실제 상황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해 주던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귀와 눈을 동원해 열심히 들었다. 심지어 이미 했던 이야기도 다시 들을 만큼, 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가까운 친구가 되어갔다. 마치 학교 운동장에서 처음 본 친구와 어느새 두꺼비집을 같이 만들던 시기처럼 자연스럽게 말이다.


우리가 잠깐 살았던 캘리포니아 샌버나디노 주는 그 넓은 학교 운동장과 같았다. 영화 <트루먼 쇼>에 나오는 하늘처럼, 미세먼지 하나 없는 하늘 아래, 우리는 연신 “그림 같아, 사실 여기 드라마 세트장 아닐까?”를 지겹지도 않게 여러 번 말했다. 거짓말같이 그림 같고, 걷고 또 걷기엔 지칠 만큼 한적한 환경 속, 나는 ‘심심함’을 아주 오랜만에, 온몸으로 편안히 느꼈다.


그 한적함 동안에 또 타지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그런 생활에도 그녀는 역시 나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요리를 아주 잘했던 그녀 덕분에 외국 학생들에게 지원해 주는 교내 무료 장터가 열린다는 정보도 알았고, 생활비까지 톡톡히 아낄 수 있었다. 냄비에 밥을 지어 먹는 방법, 고추장으로도 찌개를 만드는 방법, 심심한 파스타를 독특하게 먹을 수 있는 법까지. 심지어는 엄마처럼, 자신이 잠시 없을 동안 내가 챙겨 먹을 수 있게 요리까지 해주고 가는, 사람이 그녀였다.


또 ‘여행’에 있어서는 어땠는가, 그녀처럼 여행을 알차게 보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곳곳 장소의 특색, 여행의 동선까지 세심히 계획을 짜고, G가 지루해하고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까지 늘 포함해 주던 그 세심함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의 여행이었다. 일주일의 달콤한 봄방학 동안, 우리는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이 보이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신남을 삼키지 못하고 말했다.


“이거 꿈 아니지?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우리는 그날 작은 케이크에 생일의 커다란 행복을 실었고, 행복으로 배부른 식사를 했다. 그때 전해준 내 마음이 빼곡히 담긴 편지를 읽고, 그녀는 울었다. 잘 울지 않는다던 그녀는 고맙다며 여러 번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게 G양은 나의 ‘언니’가 되었다. 언니와 나는 처음엔 다소 다른 성격 같았으나 웃음 코드와 음식 취향이 비슷했고, 무엇보다 마음의 결이 비슷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서로에게 함부로 험한 말을 내뱉는 사이는 되지는 말자고, 친구 사이의 기준을 줄곧 얘기했던 우리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데 인색함이 없었던 까닭에, 힘든 일이 있어도 다정한 언어로 잘 풀어 내왔다. 그래서 내게 언니는 사랑과 우정이 뭔지 보여준 친구이자, 늘 시절 인연을 생각하던 나의 고정된 마음의 문을 열어준 인생 선배이다.


언니와 여행을 다니며, 코끝이 시려 왔던 샌프란시스코의 비 내리는 저녁도, 더워서 숨쉬기 힘들었던 라스베이거스의 한여름도, 바람에 얼굴을 파묻었던 시카고의 늦은 오후에도, 여행의 고단함은커녕, 낭만과 행복의 추억으로만 가득가득하다. 배가 아프도록 웃는 법을, 해맑게 웃던 법을 다시 알려준 그녀에게, 난 영원한 감사를 보낼 것이다.


 

- 든든한 사랑을 담아, H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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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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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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