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저 오늘 떠나요, 계획은 없어요. [음악]

2018.5월에 발매된 볼빨간사춘기의 <여행>
글 입력 2023.05.1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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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쌀쌀했던 날씨가 지나고 따뜻함 속 녹색 빛이 만연한 5월이 왔다. 이때가 되면 항상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막상 떠나기에는 애매한 달이기도 할뿐더러 늘 해야 하는 일이 쌓여 있으므로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달래고자 오늘도 휴대전화를 켜고 노래로 대신해본다.


 

저 오늘 떠나요 공항으로 

핸드폰 꺼 놔요 제발 날 찾진 말아줘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도 어쩔 수 없어 나

가볍게 손을 흔들며 bye bye-

 


제목부터 명시적인 볼빨간사춘기의 <여행>은 말 그대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에 관한 노래이다. 다만 이 여행은 엄청난 즉흥성을 띠는데, 이는 가사의 시작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화자는 ‘저 오늘 떠나요’라고 말한다. 보통의 여행은 목적지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기까지 꽤 많은 시간 투자를 하게 된다.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 역시 며칠 전에 미리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핸드폰 꺼 놔요, 제발 날 찾진 말아줘.’라는 말 대신 ‘그래도 연락되니까 언제든지 연락해’라는 말이 통상적이다.


하지만 이 가사에는 이런 일반성을 띠는 문장들은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도 어쩔 수 없어. 가볍게 손을 흔들며 bye bye.’라는 문장은 여행을 만류하는 누군가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나타낸다. 주변의 시선보다는 본인 마음의 상태를 더 중요시해 즉흥적인 결정을 한 것 같은 자유로움이다. 


이때의 화자는 당장에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획에 없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보인다. 뒤이은 가사에서도 드러나지만, 이리저리 치이고 망가질 때쯤 지쳤다는 것을 인지하고 떠나는 여행은 현실의 일상에 어떠한 미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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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에 발매된 볼빨간사춘기의 <여행>은 많은 인기를 얻었고 아직까지 대중이 찾는 노래 중 하나이다. 


이 곡이 인기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대리만족'이다. 노래의 가사처럼 일상에서 해야 할 일을 모조리 뒤로하고 주위 사람의 말을 무시한 채 떠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시 되돌아왔을 때 뒷감당이 두려울 뿐만 아니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곡은 일상에서 우리가 의무적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모두 내려놓고 떠남으로써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심어주었다. 노래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특징은 ‘즉흥성’이다. 이러한 특성은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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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에 떠날 것을 결정하다 보니 제대로 된 계획도 없기에 드넓은 도로 위에서 이들이 선택한 것은 히치하이킹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히치하이킹에 순조롭게 성공한다. 그리고 이들이 탄 자동차 안에는 많은 사람이 타고 있다. 처음 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알고 지낸 사이인 것처럼 함께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부르며 웃는다. 

 

보통의 여행이라면 히치하이킹을 상상할 수 없을뿐더러 한다고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또한, 처음 만난 사람과 이렇게 빨리 친해지기도 참 쉽지 않다. 이 곡은 모든 상황을 최악이 아닌 최선의 방향으로 설정했다. 그렇기에 즉흥적으로 떠나는 여행의 이미지는 모두가 한 번쯤 상상할 법했던 이상적인 순간들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Take me to new world anywhere 어디든

답답한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Shining light light 빛나는 my youth

자유롭게 fly fly 나 숨을 셔

 

 

여행의 목적지는 거창하지 않다. 답답한 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 곳이다. 뮤비 속 이들은 푸른 초원 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집에 숙소를 잡았다. 그곳에서 부르는 노래와 만난 사람들도 모두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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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여행이 일상성을 띠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일상의 단조로움을 특별한 순간으로 바꿔주기에 자신도 특별해질 수 있다. 비슷한 옷차림이 아닌 화려한 옷, 매일 먹던 음식이 아닌 특별한 음식, 처음 만난 사람과는 낯을 가리며 데면데면한 것이 아닌 금세 친해질 수 있는 친근함. 전부 일회성을 띠는 여행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래 가사 속 인물이 하는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공항으로 가기까지의 결정은 다소 섣부르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도, 그 여행은 일상처럼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 모든 여행은 계획 속에서만 진행되지 않는다. 때로는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충동적으로 떠나는 행동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것을 제쳐놓고 어디로든 떠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떠나고 싶은 마음과 지친 일상으로 인해 너무 고민이 들 때면 한 번쯤 용기를 내볼 것을 권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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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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