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따라 듣는 '겨울나그네'의 넘버들

글 입력 2024.01.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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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그네] 포스터 (제공-에이콤).jpg

 

 

뮤지컬 <겨울나그네>가 오는 2월 25일까지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이번 공연은 1997년 초연, 2005년 재연에 이어 18년 만에 돌아온 삼연으로, 초연과 재연 때의 내용과 넘버를 다듬어 완성되었다. 원작인 최인호 작가의 소설 속에서 사람들을 설레게 하고 또 눈물짓게 만든 장면들은 음악을 만나 무대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네 인물의 감정선 역시 음악과 어우러져 더욱 선명해졌다.


2024년 뮤지컬 <겨울나그네>에는 어떤 장면과 음악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을까. 오케스트라가 함께해 더욱 아름다운 <겨울나그네>의 넘버들 여섯 곡을 소개한다.

 

 

*

<겨울나그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건 한복판에서 시작하다: ‘나이아가라’, ‘믿을 수 없어’



[겨울나그네] 공연사진7 (제공-에이콤).jpg

 

 

부서져 가 / 그토록 꿈꾸던 아주 작은 행복들이 /

그저 그대와 손잡고 함께 걷는 일 그저 웃으며 마주 보는 일 /

이제 그대의 이름조차 부를 수 없는 걸까

 

 

<겨울나그네> 초연은 민우를 추억하는 현태의 독백으로 조용히 시작한다. 이와 달리 삼연에 해당하는 이번 공연은 ‘나이아가라’와 ‘믿을 수 없어’와 같이 좀 더 비장하고 화려한 곡으로 공연의 문을 열며 ‘사건의 한복판’에서 시작하는 방식을 택한다. 두 곡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 보이던 무대의 쓸쓸한 풍경, 그리고 첫 암전 직후 흘러나오던 오케스트라의 부드러운 선율과 대비되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민우나 다혜가 아니라 제니의 자기소개로 시작해, 클럽 나이아가라에 피를 흘리며 뛰어 들어오는 민우의 모습은 충분히 극적이다. 제니와 민우는 어떤 인물이며, 민우가 의식을 잃기 직전 중얼거리는 ‘정다혜’는 누구일까. 그 답을 찾으려면 관객은 1막을 끝까지 감상해야 한다. 공연의 문을 연 ‘나이아가라’와 ‘믿을 수 없어’는 1막 끝에서 리프레이즈되는데, 상황을 알고 들으면 또 다르게 들리는 넘버이다. 

 

 

 

두 사람 사이에 싹트는 사랑: ‘사랑일까’



 

 

사랑이 이런 걸까/가슴이 터질 듯한 이 순간/

나를 둘러싼 세상이 찬란하게 달라진 것 같아

 

 

민우가 우연히 다혜와 부딪힌 후 다혜의 수첩을 줍고, 그걸 돌려주기 위해 수첩에 적힌 주소를 따라 다혜의 집 앞에 와서 부르는 넘버다. 앞선 넘버들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나이아가라’, ‘믿을 수 없어’) 이 공연의 시대적 배경인 1980년대 새학기의 캠퍼스를 간략하게나마 보여주는 역할(‘풍기문란’, ‘캠퍼스의 새봄’)이었다면 민우와 다혜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사랑일까’는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을 보여준다.


비극적으로 끝나는 작품의 특성상 <겨울나그네>의 많은 넘버가 애절하고 비장한 분위기인데, ‘사랑일까’는 비교적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곡이다. 현태에게 떠밀려 집 앞까지 찾아 왔지만, 그 앞에서 계속 망설이고 수첩을 돌려주며 데이트 신청을 한 다음에도 부끄러워하는 민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수첩을 돌려받고 민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에게 설레하는 다혜의 풋풋한 모습도 나온다. 후반부의 두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지는 장면이다.

 

 

 

운명의 갈림길에 선 민우의 고뇌: ‘어디가 바닥일까’



 

 

또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해 / 예전의 난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

모든 게 변한걸/ 정해진 운명의 길인데 / 사랑을 행복을 바랐나 /

그래 비웃고 손가락질해 / 나를 욕하고 내몰아쳐라

 

 

민우의 행복한 시절은 아버지의 죽음과 사업 실패, 그리고 갑자기 알게 된 출생의 비밀로 끝이 나버린다. ‘어디가 바닥일까’는 민우가 처음 사람을 친 후 잠깐 교도소에 갔다가 출소한 다음 부르는 넘버로, 본격적으로 민우의 운명이 갈리는 시점을 알려준다. '어디가 바닥일까' 이전에 나오는 넘버 ‘사람을 쳤다’가 하루아침에 바뀐 민우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면, ‘어디가 바닥일까’는 그렇게 바뀐 처지 속에서 민우가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렇게 민우가 찾아낸 길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앙상블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서 괴롭고 혼란스러워하기만 하던 ‘사람을 쳤다’와 달리, 이번 넘버에서는 민우의 의지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신을 ‘비웃고 손가락질’하라며, 이렇게 살 수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 살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비극적인 넘버지만, 이전까지 유약하기만 했던 민우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순서이기도 하다.  

 

 

 

이뤄질 수 없는 짝사랑: ‘뒤돌아봐요’




 

한 사람 / 오직 그대가 내 마음을 / 흔들어대고 밀어내 / 미치게 해 /

차라리 그댈 보내고 / 살았다면 행복할까 /

아냐 아파도 / 난 그대를 기다리고 싶어

 


민우가 자신의 운명에 괴로워하는 동안,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 역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다혜는 함께 한 약속이 무색하게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린 민우를 그리워하고, 그런 다혜와 함께 민우를 기다리고 찾아다니던 현태에게는 서서히 다른 감정이 싹튼다. 바로 다혜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혜가 어떤 심정인지 알고, 민우와도 절친한 사이이기에 섣불리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없다. 그 애절한 심정이 담긴 넘버가 ‘뒤돌아봐요’다. 


아무리 좋아해도 그저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내용의 이 넘버는 조용하게 시작해 후반으로 갈수록 감성이 짙어진다. ‘난 그대를 기다리고 싶어’라는 가사로 드러나던 현태의 소극적인 모습은 후반부 민우와 함께 부르는 ‘어긋난 시간’에서 ‘그녀의 사랑해’로 변화하는데, 그 변화를 감상하는 것도 <겨울나그네>를 보는 재미다.

 

 

 

뜻하지 않은 만남: ‘어긋난 사랑’



[겨울나그네] 한재아 공연사진8 (제공-에이콤).jpg

 

 

왜 이렇게 바보 같은 걸까 / 내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아 /

그댈 위해 한 걸음 물러나 / 이제는 보내야 하나 봐 /

기다림조차도 행복이었나 봐

 

 

끝없을 것 같은 다혜의 기다림에도 끝이 온다. 민우가 자신을 떠나 다른 세계에 발 담그는 동안 제니와 살림을 차렸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열심히 기다리던 다혜도 제니와 아기 앞에서 이제는 민우를 놓아줘야 할 때라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기다림이 다혜의 의지였듯이, 떠나가는 것도 어쩔 수 없어서 쫓기듯 가는 것이 아닌 다혜의 적극적인 의지로 읽힌다.


이 넘버는 다혜와 제니가 함께 부르는 넘버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갈등이 폭발할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은 원망하고 분노하기보다 서로를 연민하고 더 나아가 이 상황 자체를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다혜가 ‘이젠 안녕’을 되뇌는 동안 제니는 민우와 영원히 함께할 것을 다짐한다. 정서와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다른 방향을 향하는 두 사람의 다짐이 인상적인 넘버다. 

 

 

 

남겨진 자들의 노래: ‘레퀴엠’



 

 

흘러간다 세상은 / 멈추지 않고 변해간다 /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 모두 끝난다

지나간 날 힘듦도 / 슬픔도 모두 끝이 난다 /

우린 매일 이별하며 살아간다 / 마음에 남아

 

 

뮤지컬 <겨울나그네>의 마지막 넘버로, 민우가 짧은 생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민우에 대해 노래한다. 어두운 조명에 종이비가 떨어지는 연출은 눈 내리는 겨울밤을 떠올리게 만든다. 민우는 비록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민우를 각자의 방식대로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다혜에게는 순수했던 첫사랑, 현태에게는 미래를 같이 이야기하던 절친한 동생, 제니에게는 손에 잡힐 듯 말 듯 하다가 끝내 사라진 사람, 로라킴에게는 동생에 이어 먼저 떠나보내야만 했던 조카였을 것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마친 뒤 다 함께 부르는 후렴구는 비단 민우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삶이란 끝이 정해져 있는 여행.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은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누구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으니 각자의 길을 찾을 뿐이다. 남겨진 사람들 역시 민우를 가슴에 묻고 자신의 삶을 꿋꿋이 살아갈 것이라고 암시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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