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로 하나될 미래를 꿈꾸며 -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영화]

두 오스카 수상자의 인종차별 논란을 돌아보다
글 입력 2024.03.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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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인 2024년 3월 11일 오전에는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여러 채널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한 작품이 개봉하기까지 스크린 앞뒤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낸 영화인들의 노고를 기리고 그들의 결실을 축하하는 중요한 날이기에 이와 같은 시상식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큰 이벤트이다.

 

그러나 수많은 영화인이 모이는 자리이자 전 세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시상식인 만큼 아카데미는 열리기만 하면 언제나 크고 작은 이슈를 남기는 듯하다.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당시 호스트였던 엘렌 드제너러스가 생방송 도중 피자를 주문해 배우들과 나눠 먹은 것은 하나의 유쾌한 일화가 되었으나, 2017년 시상자였던 워렌 비티에게 여우주연상 수상자 봉투가 잘못 전달되어 최우수 작품상에 《문라이트》 대신 《라라랜드》가 잘못 호명되었던 일이나 2022년 윌 스미스가 자기 가족을 농담의 소재로 삼은 크리스 락에게 다가가 뺨을 때리는 장면이 고스란히 송출된 일은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가벼운 사건은 아니었다.

 

물론 이렇게 시끌벅적하고 다양한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벌어지는 것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매력이기도 하다. 아무 돌발상황도 일어나지 않고 정해진 대로만 진행되는 아카데미를 상상해 보라.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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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24년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어김없이 잡음이 들려왔는데, 남우조연상과 여우주연상 시상에서 나란히 논란이 일어났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로 남우조연상을 받게 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지난해 남우조연상 수상자인 키 호이 콴의 악수 요청을 무시했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로 두 번째 오스카를 가져가게 된 엠마 스톤이 지난해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양자경이 건네는 트로피를 그 옆에 선 제니퍼 로렌스 쪽으로 끌고 가 마치 그에게서 트로피를 받는 듯한 상황을 연출했다는 것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엠마 스톤이 백인이 아닌 배우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인종차별을 저질렀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이들을 지지하는 몇몇 팬들은 ‘상을 받는 자리이니 긴장해서 그런 거다’, ‘엠마 스톤과 제니퍼 로렌스가 절친한 사이라서 더 그렇게 행동했을 거다’, 시상식이 끝나고 난 뒤 서로 인사도 나누고 포토월에서 다정히 사진도 찍었으니 된 거 아니냐’ 등등의 이유를 대며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백번 양보해서 두 배우에게 인종차별의 의도가 없었고 모든 것이 시청자의 오해였다고 하더라도, 전년도 수상자들을 대하는 데 있어 그들이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공공연하게 보여준 태도는 확실히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올해부터 갑자기 시상 방식을 바꾸어 해당 부문의 이전 수상자들 여럿을 동시에 시상자로 참여하게 한 것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 차라리 전년도 수상자가 유일한 시상자였다면 호명을 받은 배우가 무대에 올라와 긴장했다는 핑계로 단 한 명뿐인 시상자를 무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무대 위에 누가 올라와 있든지 지난해 수상자가 시상자가 되어 이번 해 수상자를 발표하고 그에게 트로피를 넘겨주는 것은 아카데미의 오랜 관습이다. 지난해 수상자는 자신의 뒤를 이어 상을 받게 된 수상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이번 해 수상자는 자신에게 트로피를 건네는 지난해 수상자에게 존경을 표하며 상호 예의를 갖추는 행위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무대 위에서 다른 수상자들과는 일일이 손을 맞잡고 포옹하면서도 작년도 수상자와는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두 배우의 행동은 전혀 상식적이지도, 프로답지도 않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갑작스레 시상 방식을 변경한 것마저도 지난해 시상식에서 아시안 수상자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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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압도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기생충》, 《미나리》, 《노매드랜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아시아권 출신 영화인들이 계속해서 아카데미의 주요 상을 가져가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먼 이국땅에서 우리 문화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아카데미가 여전히 비백인 영화인들에게는 그다지 열려 있지 않은 것만 같아 아쉽다. 언제쯤 우리는 영화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인종과 문화를 넘어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을지, 과연 그런 날이 올 수는 있을지 묻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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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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