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영화]

글 입력 2023.03.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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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곳곳에서 ‘얼굴 없는 천사’의 이야기가 들려오곤 한다. 얼굴 없는 천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큰돈을 기부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데, 사회의 인정 없이도 선행을 이어갈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여기 아멜리 풀랭도 파리의 얼굴 없는 천사나 다름없다. 그는 엉뚱하고 귀여운 방식으로 남몰래 사람들을 돕는다. 그렇게 아멜리가 지나간 자리마다 행복이 퍼져 나가지만, 정작 그 자신은 여전히 불행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2001년 작 <아멜리에(Le Fabuleux Destin d'Amélie Poulain)>는 이런 아멜리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찾아 드넓은 세상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과정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다.

 

 

 

다이애나와 마더 테레사



아멜리가 사는 세계는 그의 비좁은 방 안이다. 아멜리의 외롭고 고독한 삶에는 어렸을 때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이 영향을 미쳤다. 아멜리는 자신에게 심장병이 있다고 믿는 아버지로 인해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아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자신을 집에 가두어버린 아버지 밑에서 폐쇄적인 사람으로 자라난다. 어린 시절 세상과 친해질 기회를 얻지 못한 아멜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처럼 쉽게 삶의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상상의 세계에 갇힌 채 살아가는 몽상가다.

 

어느 날 아멜리가 욕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물 상자는 그가 세상을 향해 한 발 내딛는 계기가 된다.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사망했다는 뉴스에 놀라 떨어뜨린 화장품 뚜껑을 주우려던 아멜리는 타일 안쪽의 공간에서 40년 전 한 소년이 숨겨 놓은 보물 상자를 발견한다. 수소문 끝에 주인을 찾아 상자를 몰래 전해주었을 때, 상자를 보며 지난 50년의 인생을 회고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아멜리는 다른 이를 돕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얼굴 없는 천사의 자선 활동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시각장애인에게는 길거리의 풍경을 설명해주고, 남편에게 상처받은 이웃에게는 남편의 이름으로 고백 편지를 만들어 보낸다. 아멜리의 도움으로 전 애인에게 집착하던 남자와 불만투성이였던 여자가 서로 사랑에 빠지고, 어눌하다고 사장에게 매번 무시만 당하던 채소 가게 직원은 복수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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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는 삶의 의미와 존재 이유를 타인을 돕는 것으로부터 찾으려 하면서 제2의 다이애나, 제2의 마더 테레사가 되기를 꿈꾼다.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세상을 떠난 뒤, 자선사업과 봉사활동을 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던 그의 역할을 위임받기라도 한 듯 아멜리는 주변의 불행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몰두한다. 아멜리는 하물며 사람들을 돕는 데 인생을 바친 마더 테레사에 자신을 투영하며 자신의 숭고한 죽음을 애도하는 거대한 인파의 모습을 상상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과연 이들이 누구보다도 행복한 인생을 살았을까? 생각해보면 다이애나는 평생을 왕실의 억압과 대중의 끝없는 관심 속에 갇혀 살았고, 마더 테레사는 오랫동안 병을 앓았다. 물론 그들의 인생을 함부로, 또 멋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삶에서 행한 헌신과 희생으로 여전히 수많은 사람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그들이 사실 자신의 인생에서 정말 행복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타인을 돕는 행위를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아멜리의 믿음은 너무나도 이상적이다. 자신의 도움으로 행복을 얻은 사람들을 보며 항상 함께 기뻐했던 아멜리는 고작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는 손님의 말 한마디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아름답고 생기 넘치던 아멜리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아멜리의 도움으로 30년 만에 남편의 편지를 받고 행복해하는 마들렌의 모습마저도 더는 그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타인의 기쁨으로 자신의 행복을 든든히 채운 줄 알았지만, 사랑에 실패하자 다시 자신을 방안에 가두어버린 아멜리. 결국 영화는 이런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온전히 타인만을 위해 살아갈 수는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행복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영화는 아멜리가 사랑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멜리는 지하철역의 사진 부스에 사람들이 버리고 간 사진 조각을 모으는 니노 캥캉푸아에게 사랑에 빠진다. 니노와의 사랑을 꿈꾸는 아멜리는 그가 잃어버린 사진첩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작전을 세운다. 그의 자전거에 메모를 붙여놓는가 하면 그가 몽마르트르 언덕을 내려다보는 사이에 자신의 사진이 든 사진첩을 두고 사라지기도 하고, 그가 찾고 있는 미스테리한 남자의 정체를 알려주기도 하며 나중에는 그가 자신이 일하는 풍차 카페에까지 찾아오게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니노는 베일에 감추어진 의문의 여성 아멜리를 정말로 마음에 품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니노에게 헌신적이었던 아멜리는 정작 그가 풍차 카페에 나타나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못한다. 심지어 니노가 자기 집에 찾아왔을 때도 문을 열어주지 못한다. 사랑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아멜리는 마치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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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행복은 언제나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놓여 있지만, 그것이 가만히 서 있는 나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행복이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에 먼저 다가가야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멜리의 비밀 작전을 통해 행복해질 기회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삶에서 일어난 이상하고 기적 같은 일들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면, 그들은 결코 행복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온 마음으로 믿고 다음 단계를 향해 스스로 나아갔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간 아멜리의 아버지를 떠올려 보라. 그는 아끼던 인형이 온갖 나라를 여행하며 사진을 보내오는 기이한 일을 겪으면서 세계여행이라는 자신의 오랜 꿈을 떠올리고 결국에는 수십 년을 갇혀 있던 집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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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눈앞에서 놓칠 위기에 처한 아멜리를 돕는 것은 다름 아닌 방구석 화가 뒤파옐이다. 뼈가 남들보다 약해서 평생을 집안에서 보내야 했던 그는 자기처럼 작은 세상에 갇혀 사는 이웃 소녀인 아멜리가 행복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나의 친애하는 아멜리. 넌 유리인간이 아니야. 직접 부딪히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 지금 이 기회를 놓쳐 버리면 시간이 흐르면서 네 심장은 내 앙상한 몰골처럼 말라버려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 거야. 그러니까 당장 가서 남자를 붙잡아.”

 

 

아멜리의 침실 텔레비전에 연결되어 있던 뒤파옐의 비디오테이프는 아멜리가 자신을 가두고 있던 방문을 활짝 열어 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니노를 마주하게 한다. 정말로 행복은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항상 아멜리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아멜리는 물수제비를 던져 물의 표면을 깨뜨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정작 자기만의 외롭고 고독한 세계를 깨뜨리고 세상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알을 깨고 나와 사랑이라는 충만한 행복을 얻게 된 그는 이제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금붕어가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어항이라는 좁디좁은 세상에서 탈출하려 했는지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알 속에 있을 때는 자신을 둘러싼 벽이 두껍고 견고해서 절대 깨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막상 알을 깨고 밖으로 나와 보면 나를 가두고 있던 그 껍질의 두께는 아주 얇은 한 장의 막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이 순간을 아멜리는 그 누구보다도 절실히 경험했으리라.

 

아멜리가 자신의 사랑에 푹 빠져있는 동안에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뒤파옐은 물잔을 든 소녀의 표정을 끝으로 르누아르의 그림을 완성한 뒤 20년 만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보물 상자의 주인은 몇 년째 소식이 끊긴 딸을 용기 내어 찾아가 사랑하는 손자에게 닭고기를 먹여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세상의 행복은 한 명의 지휘자가 홀로 만들어낸 합창 같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나’가 스스로 찾은 행복의 총합이기에, 우리는 결국 모두 각자의 행복을 찾아 떠나야 한다. 아멜리가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고 사랑을 향해 전진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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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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