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2개국 40도시, 나의 2022 유럽 기행 여행 결산 (3) 에피소드편 [여행]

글 입력 2023.01.30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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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과유불급.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말.


여행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종강 이후 약 두 달 정도의 기간 동안, 유럽 내 가고 싶었던 모든 곳을 어떻게든 여행 다니고자 했고, 이는 화를 불렀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여행이 기행(奇行)이 되어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지나간 일. 지금은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되었기에, 부정적인 감정을 덜어내고 에피소드편이라고 이름 짓고자 한다. 힘들었던,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꽤나 재밌게 느껴지는 일화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잠은 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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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온 후, 약 일주일간 집 밖을 아예 나서지 않았다. 핸드폰에 기록된 8월 일정을 확인하니 그럴 만도 했다. 8월 동안 7개국을 다녀왔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프랑스, 영국, 그리고 한국까지. 도시로 따지면 캘린더에 기록된 것 이상이다.


내가 살던 지역 뷔르츠부르크에는 공항과 국제선 기차가 없었기에 모든 일정 전후로 프랑크푸르트가 끼어 있었고, 몽생미셸 투어에는 에트르타 - 옹플레르 - 몽생미셸이 포함되어 있기에 한국을 제외하더라도 15곳의 도시에 머물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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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었던 도시를 모조리 방문하겠다 마음먹은 탓에 경비와 시간을 아끼고자 편안한 잠을 포기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로, 마드리드에서 리스본으로 이동할 때, 그리고 런던에서 에든버러를 넘어가고, 에든버러에서 런던으로 돌아올 때도 야간 버스를 탔다. 마드리드에서 리스본으로 이동할 때에는 문 바로 옆이었던 내 좌석만 의자가 젖혀지지 않았는데, 이 이유로 잠들지 않아 몽롱한 상태로 리스본을 구경했다.


갈 수 있는 곳을 모조리 가겠다는 마음으로 계획한 여행은 체력적 한계와 정신적 한계를 가져왔다. 3개월 예약해 숙소와 비행기 편을 취소할 수 없던 파리와 런던 여행에서는 '이렇게까지 여행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치기도 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와 미련이 없다. 못 잔 잠도 집에 돌아와 충분히 보충했다.

 

 


현금은 없고 카드는 먹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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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의 기차 ICE를 타고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 동역에서 오르세 미술관으로 가기 위해 대중교통 티켓을 구매해야 했다. 카드로 티켓을 구매하려고 했으나 모바일 월렛에 저장한 NFC 태그형 카드가 인식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카드도 인식되지 않았다. 기기의 문제인가 싶어 창구에 가 직원에게서 티켓을 구매하려고 했으나 역시나 두 가지 카드 모두 인식되지 않았다.


현금 결제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현금을 인출해 오지 않았기에 곤란해졌다. 현지 실물 카드가 없었기에 역에서 현금을 인출할 방법도 없었다. 매표 기기 앞에서 소요한 시간 약 30분, 그리고 창구에 도달하기 위해 기다린 시간 약 30분. 약 한 시간을 소요했음에도 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걱정스러웠고 난처했다. 오르세를 가기 위해 파리를 왔고, 오늘이 아니라면 더 이상 오르세를 볼 날짜가 없는데 미술관을 세 시간도 못 보게 생겼다. 외국인들에게 돈을 빌려야 하나 고민하던 중, 땅에 떨어진 돈을 발견했다. 멀리 떨어진 상태로 돈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았지만 그런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떨어진 돈에 조금씩 다가가 꽤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여전히 돈을 가져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바로 현금을 주워 그 돈으로 대중교통 티켓을 샀다. 프랑스에도 점유물 이탈죄가 존재할까 겁을 먹으며 돈을 주웠으나 소액의 돈이었고 외국인 여행자에게 큰 도움을 주었으니, 부디 그 돈의 이전 소유자가 가볍게 아쉬워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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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오르세 박물관을 방문했다.

 

 

 

눈물 젖은 루브르



유럽에서 가장 서러웠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한국 귀국 직전 경비를 아껴보겠다고 저렴하게 예약했던 한인 민박에서 베드 버그에 물렸다. 베드 버그는 유럽의 침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벌레로, 물린 자국이 혈관을 따라 일렬로 나열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파리에서의 첫째 날, 오르세를 관람하고 와 아무도 없는 숙소에서 푹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베르사유로 향했다.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을 관람하는 둘째 날, 몸 전체가 간지러웠고 그때까지만 해도 모기에 많이 물린 줄 알았다. 하지만 일정을 모두 마친 두 번째 날 밤, 침대에서 아주 빨간빛을 띠는 베드 버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어디에 베드버그가 있어 언제 나를 물지 모른다는 생각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아침이 밝았고 숙소 측과 이야기한 후 숙소비 전액 환불과 약 값을 받아냈다. 하지만 팔, 다리, 배, 얼굴, 어느 한 군데 빠짐없이 가렵고 빨개진 상태를 보니 서러움이 가장 컸다.

 

숙소 밖에서 훌쩍이며 울며 몸을 긁다가 울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 파리에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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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를 바른 이후로 기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곧장 루브르로 향했다. 루브르에서 온몸을 긁으며 최대한 많은 작품을 보기 위해 돌아다녔다. 작품을 감상하는 와중에도 몸이 간지럽고 소름이 돋는 상황이 속상해 눈물 흘리기도 했지만, 그날 보았던 니케상, 비너스가 아직도 생생한 걸 보니 그 와중에도 집중은 잘 했던 것 같다.


놀랍게도 파리에서 머문지 반년 정도가 지난 현재에도, 베드 버그에 물린 자국이 몸 전체에 남아 있다. 그래도 통각과 잔흔으로 파리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또 하나의 특이한 경험을 쌓았다 생각해 본다.

 

 

 

Paris in the rain


 

고난이라고 하기엔 가벼운 일종의 번외 편이다. 이 에피소드의 배경은 8월이 아닌 4월의 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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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v의 Paris in the rain이라는 노래를 아는가. 살짝 흐려 세상에 필터 한 겹이 씌워진 듯한 날, 이 노래를 틀어놓고 창밖에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면 그렇게 감성에 젖을 수가 없다. 낭만의 도시, 파리에 대한 로망을 안은 채 파리에 도착했다. 오를리 공항에 도착해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아주 늦은 밤. 다음날을 기약하며 잠에 들었다.


다음날, 눈을 뜨니 비가 내렸다. 그냥 비는 아니었고, 폭우였다. 일정 내내 흐리고 비가 내렸다. 쏟아지는 비에 땅은 질척거렸고, 운동화는 물론 발까지 축축하게 젖었다. 야외 일정을 계획해 왔으나 소화하기엔 무리라고 판단해 모든 일정을 실내로 바꾸었다.


그래도 기존에 결제해 두었던 바토무슈 유람선은 탑승하기로 했다. 하지만 날이 너무 흐린 탓에 유람선에서 에펠탑이 보이지도 않았다. 계획했던 일정은 모두 엉망이 되었고 아쉬움과 고단함이 진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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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마지막 일정, 디즈니랜드에 가는 날은 화창했고 맑은 하늘 아래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 중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재미있는 것도 같다. Paris in the rain, 비 오는 날의 파리. 그보다는 폭우 속의 파리... 언제 경험하겠는가 싶다. 사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쉽게 겪지 못할 경험이자 이제는 웃으며 돌이킬 수 있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

 

욕심으로 꽉꽉 눌러 담은 여행이었다. 지치기도 했지만 고생한 만큼 얻은 게 많았다. 나름 힘들었던 시간 속 인내력을 길렀다. 또한 원하지 않는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그 상황에서 내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지를 고민할 수 있었다. 빠듯한 일정을 결국 다 소화한 나는, 어쩌면 나는 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일 것이라는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유럽에서 머문 6개월 동안 가고 싶던 곳을 다 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도 미련도 없다. 과유불급이라고 생각했지만 배운 게 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마무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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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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