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떠나요, 혼자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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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두 번의 퇴사를 했다.
지난 1월에는 첫 직장에서, 이후에는 좋은 기회가 닿아 대체인력으로 일했던 곳에서의 계약 만료로 두 번째 퇴사. 퇴사를 앞둘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퇴사 후 혼자 떠나게 될 여행지의 숙소를 고르는 일이었다.
국경을 넘어 해외로도 혼자 여행을 다녀오는 주변의 친구들과 세상의 수많은 프로 혼 여행러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홀로 야금야금 국내여행을 다니면서 느꼈던 점이 있다.
바로 나 스스로가 나 자신에게 많이 너그러워지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낯선 곳에서 자주 불안함을 느낀다. 매번 무언가를 능숙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 낯선 곳은 그런 내게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자꾸만 생겨나는 곳이었다.
지루한 일상을 떠나는 행위는 좋아하지만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 헤매게 될 때에 나를 덮쳐오는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나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계획을 아주 철저하게 세우는 방법을 택했다.
늘 명확한 목적지가 필요했다.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 있는지, 그곳을 향하여 맞게 가고 있는 건지, 내 발걸음의 끝에 도착하게 되는 곳이 정해져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이런 성격 탓에 누구와 함께 여행을 가게 되어도, 나는 여행 계획을 짜는 역할을 자처했다.
여기까지는 다 좋은데, 문제는 내가 이렇게 세운 여행 계획에 있어 (혼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마치 이 여행의 흥망성쇠가 나의 계획에 달려 있다는 착각에 빠져버리는 거다.
혹여라도 계획과 달리 일정이 중간에 틀어지거나 어긋나게 된다면? 모든 책임이 이 계획을 짠 나에게 있다는 생각에 자주 괴로워했다. 나 때문에, 함께 여행을 간 가족, 친구들의 시간까지 낭비해버린 기분이랄까.
하지만 나 홀로 떠나는 여행은 (스스로 자처해 뒤집어쓰던) 이 막중한 책임감과 계획이 틀어졌을 때의 머쓱함이, 오로지 '나'에게 만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조금 나아진다.
사실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났을 때에는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 혹시 길을 잃을까 봐 미리 지도상의 길 찾기는 물론 해당 도로 뷰까지 섭렵했지만 당시에는 없었던 공사가 생겨 미리 알아온 지도상의 길로는 갈 수가 없다든지, 영업일과 브레이크 타임, 인스타그램으로 휴무일까지 알아보고 야심 차게 도착했던 어느 목적지에서는 [개인 사정으로 오늘 하루 영업을 쉽니다]라는 종이가 붙여져 있는 상황이 꼭 생겼다.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여행을 갔을 때에 이와 같은 상황을 마주할 때면 '그럴 수도 있다'며 나를 다독여주곤 했지만, 혼자 떠난 여행에서는 이 다독임마저 나의 몫이 된다. 처음에는 늘 그래 왔듯 자책으로 귀결되곤 했는데, (혼자 떠난) 이 여행에서는 '나만 괜찮으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라는 마음을 한 번 먹고 나니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 자신을 추스리기 훨씬 쉬워졌다.
목적지를 잠시 잃었던 발걸음 속에서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을 의식적으로 상기시키다 보면, 정말 괜찮아진다. 그럴 땐 다시 잽싸게 지도 어플을 켜서 그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으면 된다. (아직까지 이런 상황에서 잠시 멈춰 주변의 경치를 즐기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발견하게 되면, 뒤의 일정을 취소하고 그곳에서 시간을 더 보내는 여유도 생겼다.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을,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시간을 할애해도 신경써야 할 사람이 아무도 없고, 오롯이 나만의 취향으로 가득 담은 플레이리스트를 연달아 재생해도 된다. 이런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지점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가는 것만 같다.
홀로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나를 좀 더 아끼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선 누구보다도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순간들로 여행을 가득 채우게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혼자 떠나온 강릉의 어느 숙소 책상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강릉 시내의 한 서점에 다녀왔다. 창가 블라인드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결을 밑줄 삼아 책을 읽었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내일은 택시 기사님이 추천해주신 뷰 맛집 카페에 가야지.
나는 평생 낯선 곳에서 내가 모르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일을 싫어하는 줄만 알았는데, 이제 낯선 곳을 갈 때면 내가 먼저 그곳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살아왔던 것 같다.
혼자 떠나온 이 여행의 순간을 앞으로도 자주 꺼내어 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과의 왁자지껄한 여행도 좋지만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이 여행도 내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나는 잘 안다.
[백소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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