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떠나요, 혼자서 [여행]

(혼)여행 예찬
글 입력 2022.09.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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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두 번의 퇴사를 했다.

 

지난 1월에는 첫 직장에서, 이후에는 좋은 기회가 닿아 대체인력으로 일했던 곳에서의 계약 만료로 두 번째 퇴사. 퇴사를 앞둘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퇴사 후 혼자 떠나게 될 여행지의 숙소를 고르는 일이었다.

 

국경을 넘어 해외로도 혼자 여행을 다녀오는 주변의 친구들과 세상의 수많은 프로 혼 여행러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홀로 야금야금 국내여행을 다니면서 느꼈던 점이 있다.

 

바로 나 스스로가 나 자신에게 많이 너그러워지게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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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낯선 곳에서 자주 불안함을 느낀다. 매번 무언가를 능숙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 낯선 곳은 그런 내게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자꾸만 생겨나는 곳이었다.

 

지루한 일상을 떠나는 행위는 좋아하지만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 헤매게 될 때에 나를 덮쳐오는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나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계획을 아주 철저하게 세우는 방법을 택했다.

 

늘 명확한 목적지가 필요했다.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 있는지, 그곳을 향하여 맞게 가고 있는 건지, 내 발걸음의 끝에 도착하게 되는 곳이 정해져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이런 성격 탓에 누구와 함께 여행을 가게 되어도, 나는 여행 계획을 짜는 역할을 자처했다.

 

여기까지는 다 좋은데, 문제는 내가 이렇게 세운 여행 계획에 있어 (혼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마치 이 여행의 흥망성쇠가 나의 계획에 달려 있다는 착각에 빠져버리는 거다.

 

혹여라도 계획과 달리 일정이 중간에 틀어지거나 어긋나게 된다면? 모든 책임이 이 계획을 짠 나에게 있다는 생각에 자주 괴로워했다. 나 때문에, 함께 여행을 간 가족, 친구들의 시간까지 낭비해버린 기분이랄까.

 

하지만 나 홀로 떠나는 여행은 (스스로 자처해 뒤집어쓰던) 이 막중한 책임감과 계획이 틀어졌을 때의 머쓱함이, 오로지 '나'에게 만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조금 나아진다.

 

사실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났을 때에는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 혹시 길을 잃을까 봐 미리 지도상의 길 찾기는 물론 해당 도로 뷰까지 섭렵했지만 당시에는 없었던 공사가 생겨 미리 알아온 지도상의 길로는 갈 수가 없다든지, 영업일과 브레이크 타임, 인스타그램으로 휴무일까지 알아보고 야심 차게 도착했던 어느 목적지에서는 [개인 사정으로 오늘 하루 영업을 쉽니다]라는 종이가 붙여져 있는 상황이 꼭 생겼다.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여행을 갔을 때에 이와 같은 상황을 마주할 때면 '그럴 수도 있다'며 나를 다독여주곤 했지만, 혼자 떠난 여행에서는 이 다독임마저 나의 몫이 된다. 처음에는 늘 그래 왔듯 자책으로 귀결되곤 했는데, (혼자 떠난) 이 여행에서는 '나만 괜찮으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라는 마음을 한 번 먹고 나니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 자신을 추스리기 훨씬 쉬워졌다.

 

목적지를 잠시 잃었던 발걸음 속에서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을 의식적으로 상기시키다 보면, 정말 괜찮아진다. 그럴 땐 다시 잽싸게 지도 어플을 켜서 그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으면 된다. (아직까지 이런 상황에서 잠시 멈춰 주변의 경치를 즐기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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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발견하게 되면, 뒤의 일정을 취소하고 그곳에서 시간을 더 보내는 여유도 생겼다.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을,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시간을 할애해도 신경써야 할 사람이 아무도 없고, 오롯이 나만의 취향으로 가득 담은 플레이리스트를 연달아 재생해도 된다. 이런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지점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가는 것만 같다.

 

홀로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나를 좀 더 아끼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선 누구보다도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순간들로 여행을 가득 채우게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혼자 떠나온 강릉의 어느 숙소 책상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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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강릉 시내의 한 서점에 다녀왔다. 창가 블라인드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결을 밑줄 삼아 책을 읽었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내일은 택시 기사님이 추천해주신 뷰 맛집 카페에 가야지.

 

나는 평생 낯선 곳에서 내가 모르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일을 싫어하는 줄만 알았는데, 이제 낯선 곳을 갈 때면 내가 먼저 그곳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살아왔던 것 같다.

 

혼자 떠나온 이 여행의 순간을 앞으로도 자주 꺼내어 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과의 왁자지껄한 여행도 좋지만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이 여행도 내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나는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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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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