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들의 ‘희망의 궁전’으로 – 뮤지컬 딜쿠샤 [공연]

뮤지컬 <딜쿠샤>가 조명한 ‘희망의 궁전’ 100년의 역사와 ‘집’에 담긴 연대의 가치
글 입력 2023.12.2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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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2길 17, 인왕산 언덕 위 은행나무 옆. 그곳에는 붉은 벽돌로 된 낡은 집, ‘딜쿠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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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을 뜻하는 이 양옥은, 1923년 일제강점기 당시 미국에서 온 ‘엘버트 테일러’씨 부부가 지은 오래된 건물이다.

 

미국 신문 기자였던 엘버트 테일러는,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서와 제암리 학살사건 등을 외신으로 최초 보도하며 우리의 항일 독립운동을 지지한 인물이다.

 

1942년 일제에 의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그는 본국으로 추방되어 결국 살아생전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내내 딜쿠샤를 그리워했던 그는, 추방 후 몇 년 뒤 사망하여 생전 그의 뜻에 따라 유해만이 한국에 안치되었다.

 

엘버트가 죽어서라도 꼭 돌아오고 싶었던 이 집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우리 역사의 비극적 사건들을 거쳐, 국가의 고속 성장과 도시의 급격한 팽창 속에서 다난했던 시간들을 버텨내며 누군가의 고향이자 피난처, 연대의 장이자 따스한 보금자리가 되어왔다.

 

테일러 씨 부부 이후 가난하고 갈 곳 없는 이들이 머물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던 딜쿠샤는 세월의 풍파 속에서 훼손되어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었지만, 최근 그 가치가 조명되어 국가등록문화재 제678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고증 연구를 통해 복원 공사를 진행한 끝에, 2021년 3·1절을 기념하여 일반 대중들에게 개방되었다.

 

올해로 딱 만 100살이 된 딜쿠샤는, 2023년 12월 현재 기준으로, 동명의 뮤지컬이 공연되는 국립 정동극장으로부터 도보로 약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공연을 계기로 이 집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될 관객들에게 ‘딜쿠샤’의 존재는 너와 나의 경계를 넘어 ‘우리’의 집을 떠올리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국립정동극장] 딜쿠샤_포스터(12.7-30).jpg

 

 

실제 역사적 배경에 가상의 이야기를 더해 만들어진 뮤지컬 ‘딜쿠샤’는 2013년도 방영된 다큐멘터리 ‘KBS 다큐 공감-희망의 궁전 딜쿠샤’를 접한 양준모 예술감독이 기획한 작품이다. 실제 다큐멘터리를 집필했던 김세미 작가가 대본 작업을 맡았다.

 

통상적인 무대와는 달리 음악 세션이 무대 위 정중앙에 배치되어, 관중들이 실시간으로 연주 실황을 관람할 수 있는 구조로 공연된다. 또한 모든 배우들이 입·퇴장을 반복하지 않고 무대 가장자리를 빙 둘러싼 의자에 착석한 상태에서 조명을 활용해 극을 진행시키는 독특한 연출을 선보인다.

 

가슴을 울리는 음악들이 감동을 더하는 본 공연은 노래·춤·연기를 융합한 공연 양식을 뜻하는 ‘뮤지컬’의 사전적 의미와 장르적 특성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마침 내가 관람한 날에는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어 공연 후에 작품을 만든 감독 및 배우들의 이야기를 보다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실제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던 당시 스태프들 역시 공연장을 방문하여 자리에 의미를 더했다. 

 

그리고 본 극의 주연인 ‘브루스’ 역의 모티브가 된 실제 ‘브루스 테일러’의 딸이자 딜쿠샤를 지은 ‘엘버트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 테일러’씨가 미국에서 찾아와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뼛속까지 시린 듯한 올겨울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한 온기가 그리워지는 시점에,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집이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묵직한 감동으로 가슴을 데워준 ‘딜쿠샤’를 만날 수 있었던 건 분명 큰 행운이었다.

 

 

 

“그곳으로 나 돌아가리, 항상 나를 기다리는 그 집으로...”


 

본 공연은 미국의 한 바닷가 마을에 사는 노인 ‘브루스 테일러’와 인왕산 언덕 위 은행나무 옆 붉은 벽돌집 ‘딜쿠샤’에 사는 노인 ‘금자’씨가 편지를 주고받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각자의 삶의 여정 속에서 딜쿠샤와 남다른 인연을 맺어온 두 노인이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그 집에 얽힌 추억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립정동극장] 2023 뮤지컬 딜쿠샤_공연사진 (2).jpg

 

 

자신의 부모님이 지은 딜쿠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 시절과 성장기를 보내고 청년이 되었던 브루스 씨에게 그 집이란, 어린 시절 마음껏 뛰어놀던 행복이 깃든 추억의 장소로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 온기를 잊을 수 없는 고향이다. 

 

 

[국립정동극장] 2023 뮤지컬 딜쿠샤_공연사진 (1).jpg

 

 

독립운동을 위해 떠난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혹독한 시대와 처절한 가난 속에서 자식을 부양해야 했던 금자 씨의 어머니는 이웃에 사는 인자한 외국인 부부 테일러 씨 내외 덕분에 소일거리를 얻어 생계를 꾸려간다. 

 

태초부터 한 가정의 보금자리임과 동시에 시대의 탄압 속에 가난한 이들이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던 딜쿠샤는, 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힘없고 약한 이들이 머무르며 희망찬 미래를 꿈꾸었던, 이 집을 지은 메리 테일러 씨가 붙인 이름 그대로, ‘희망의 궁전’이 되어왔다.

 

나무에 올라 마당에서 뛰어노는 금발머리 소년의 행복을 훔쳐보며 딜쿠샤에 대한 동경을 품었던 가난한 어린 소녀 금자 씨는, 역사의 소용돌이와 인생의 굴곡 속에 평생을 함께 하며 갖은 위기로부터 이 집을 지켜낸 뒤, 사람들이 다 떠난 낡은 집에 홀로 남은 노인이 되었다.

 

 

[국립정동극장] 2023 뮤지컬 딜쿠샤_공연사진 (6).jpg

 

 

아주 오래전 딜쿠샤에서 잠시 스쳤을 어린 소년과 소녀가 노인이 되어 집으로 연결된 연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고, 결국 먼 곳으로부터 고향을 찾아온 브루스와 홀로 딜쿠샤를 지켜온 금자가 만나 인사를 나누며 극은 마무리된다.

 

공연이 마무리될 즘에 참지 못한 눈물이 쏟아졌다. 누가 보면 무슨 일이라도 난 것 마냥 흐르던 눈물을 공연이 끝난 뒤에야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다. 끝내 만난 브루스와 금자가 대사 없이 인사를 주고받는 장면이 진행되던 때 고요한 장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지금 와 돌이켜봐도 왜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그 이유를 나조차도 모르겠다. 

 

사실상 가장 큰 위기가 화재에 불과하다는 양준모 감독의 말대로, 브루스와 금자가 만나는 하이라이트 장면 외에는 본 공연은 사실 그리 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100년이라는 세월 속에 이 집을 거쳐갔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 되는 극은 뚜렷한 메시지나 주장을 피력하기보다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과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를 닮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은 특별하지 않아서 더 감동적이었다. 비록 혹독한 시대에 고된 나날을 버티고 있지만, 시련에 좌절하기보다는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버텨내는 그들의 이야기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아도 큰 공감과 충분한 위로가 됐다.

 

 

 

“당신들에게도 희망의 궁전이 있습니까?”


 

집이란 무엇인가? 하루 끝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안식의 공간. 그리운 추억과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는 나의 고향. 떠나더라도 결국엔 돌아올 곳.

 

각자가 느끼는 감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단순히 머문다고 해서 집이 되는 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집’이라 불릴 공간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줘야 한다. 

 

어딘가에 전시된 누군가의 화려한 집을 동경하고 때론 나의 처지와 비교할 때도 있지만, 사실 아주 소박하고 그리 좋지 않아도 긴장을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는 온전한 공간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때로는 세상에 배신 당하고 어쩌면 내 편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만 같을 때,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분명한 축복이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너무나 당연했던 존재였지만 사실 많은 노력과 힘이 필요하다는 걸 배우는 중이기도 하다. 

 

여전히 부모님의 품에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채 서울 땅에 내 한 몸 누일 공간을 찾아 전전하는 신세이니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집’의 의미가 재테크의 수단이자 부를 증식하는 방법이라 하지만, 부동산 가격보다는 전세 사기의 위험이 가까운 게 나의 현실이고, 집이란 사실 생존의 문제이다. 

 

처음에는 집이라는 공간이 환기하는 따스한 감정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에 와서는 ‘딜쿠샤’가 지닌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딜쿠샤는 한 가정이 소유한 공간이기도 했지만, 이후에 갈 곳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연대의 장이기도 했다. 비록 한강이 보이던 탁 트인 전망은 산턱보다 높은 빌딩에 가려졌지만, 낡은 건물에 좁은 공간을 겨우 누리며 살던 가난한 이들은 딜쿠샤의 품 안에서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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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의 집을 떠올리게 하는 ‘딜쿠샤’는 한국 사회에서 집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를 곱씹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고작’을 의미하는 ‘겨우’일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집은 어렵게 힘들여 ‘겨우’ 얻어내는 소중한 공간이 아닌가. 고작 내 집 하나 마련하기가 이렇게 힘든 세상이 아닌가.

 

고작이라고 말하기엔 누군가는 여름에 좀 더 시원하고 겨울에 좀 더 따뜻해지는 게 간절하고, 사실 지금 이 정도도 절박한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에게는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구원된 피난처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집에 담긴 희망을 빼앗겨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딜쿠샤가 필요한 것 같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되는 연대의 공간이 말이다. 

 

가끔은 타인의 비극에 무뎌지는 스스로가 무섭다. 그 당사자들은 분명 지옥을 겪고 있는 중일 텐데, 하루에도 수십 건씩 쌓인다는 이유만으로 바쁜 일상에 쉽게 외면하게 된다. 여전히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지만,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뎌져서는 안 될 슬픔에 익숙해진다. 

 

전세 사기가 악질인 이유는 생존을 위협하고 희망을 기만하기 때문이다. 고작일 수 없는 그 의미를 알면서도, 고작 그 하나가 간절한 이들을 짓밟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추억도 가지는 의미도 조금씩 다르겠지만, 집이 소중하다는 건 우리 모두가 지닌 공통의 마음일 것이다.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각자의 집은 ‘우리’의 집으로 수렴된다.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집이기에 누구나 다 아는 그 마음을 이용한 범죄가 만연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공유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집’의 의미가 ‘희망’이 되기 위해서, 집을 빼앗긴 이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다시 희망을 되찾을 수 있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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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파 경보가 내린 추운 겨울, 누군가의 안위가 걱정되는 날씨에 ‘희망의 궁전’이라는 그 집의 의미를 생각한다. 100년 동안 제 자리를 지켜온 그 집이 지닌 상징적 의미처럼, 우리 사회의 집의 의미가 진심으로 ‘희망의 궁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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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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